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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헌선생의 의지의 투병과 조국사랑 그 헌신적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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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2-19

▲ 2018년 2월 17일 설날에 권오헌 선생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17일 설명절을 맞이하여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고 있는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댁을 방문하였다. 

수유리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은 작은 빌라에는 책과 그간 쓴 친필원고로 가득 차 있는데 후배들과 동지들, 여러 단체에서 보내준 귀한 약수며, 온갖 과일들도 집안 여기저기에 쌓여있었다. 

어떤 동지는 고깃국을 계속 고아다가 대주며 원기 회복을 위해 애를 써주고 있다고 했다.

 

취재를 하는 중에도 권오헌 선생을 존경하는 후배들이 새해 인사를 드리러 왔는데 꿀이며, 김이며 몸에 좋은 음식들을 싸들고 와 잘 드셔야 한다고, 건강하셔야 한다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신신당부를 하고 갔다. 

 

▲ 설날 권오헌 선생이 후배들에게 받은 꿀 선물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권오헌 선생은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해내외 동포들이 많다며 자신의 요즘 근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한지 1년이 되어가고 있다. 약을 복용하며 본격적으로 치료한 것은 7개월여 되었다. 

현재까지 치료가 잘 먹히고 있다. 

주치의는 얼마 전 검사를 해보니 암세포가 잘 억제되고 있다며 하루 한 번 먹던 약을 이틀에 한 번으로 줄여도 되겠다고 했다.

그렇게 했더니 지금은 머리숱이 늘었다. 약이 독해 머리가 많이 빠졌는데 약을 줄이니 덜 빠지고 있는 것이다. 

의사는 콩음식, 어류 등 좋은 단백질음식과 신선한 야채 과일을 잘 먹는 것이 중요하고 충분하게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말을 늘 강조하고 있다. 

지금 호전되는 병세에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운동도 하고 생활도 규칙적으로 잘 하면서 암과 싸워 꼭 이겨낼 것이다.”

 

권오헌 선생은 평생 잠을 너댓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고 한다. 낮에는 여기저기 활동을 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밤에 책도 읽고 글도 쓰다보니 그 이상 잘 수가 없었다고 했다. 부족한 잠은 이동하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쪽잠으로 풀었다.

암 투병하는 요즘도 중요한 행사는 빠짐없이 다니고 있다. 주변에서 제발 치료에 전념할 것을 당부해도 여전히 발걸음은 늘 현장을 향하고 있다.

대신 밤에 글을 쓰는 일은 끊어서 충분한 자고 매일 두시간 정도 북한산 등산도 하고 있다고 한다.

 

▲ 젊은시절 권오헌 선생     ©권오헌

권오헌 선생이 살아온 삶을 종합해보면 한마디로 ‘직업적 혁명가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하루, 한 시간도 혁명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모든 사색과 움직임은 조국의 자주와 평화적 통일의 길을 개척하는 데로 오롯이 다 투입한 인생이었다.

 

권오헌 선생은 그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게 된 것도 연애할 시간을 내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사실 연애 자체에도 시간이 들고, 자녀를 낳아키우고 양가 부모와 친진들에게 도리를 다하자면 이것도 만만치 않은 시간과 열정이 든다.

 

그래도 결혼은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권오헌 선생이 암투병을 하는데도 곁에서 간병을 해줄 아내나 자녀들이 없다는 사실에 더욱 가슴이 저렸다. 또 다른 분단의 고통이다. 정말 이런 고통 이제는 끝장낼 때도 되었다.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아 이런 열정을 사업에 투자했다면 큰 회사도 능히 만들 수 있는 권오헌 선생이었다. 

일생 중에 창해일속 극히 작은 시간을 내어 불도저, 포크레인 등 중장비 임대업과 부동산투자(오해가 없기를... 생활하기 위해 집을 살 때 투자가치가 있는 곳에 집을 선택할 안목이 있었다는 말임)를 통해 자신의 경제생활을 스스로 개척해온 것만 봐도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결혼을 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왜 못했겠는가.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조국을 위해 청춘도 사랑도 다 받친 것이다.

 

권오헌 선생처럼 많은 책을 본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소설이 아닌 사회 논평과 관련해서 권오헌 선생처럼 많은 양의 글을 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상계, 한겨레신문, 통일뉴스 등에 투고한 글만해도 그 양이 만만치 않다. 낮에는 현장을 돌며 활동을 하고 밤에 잠을 줄여서 그렇게 많은 독서를 하고 글을 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단 1분 1초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모두 쏟아부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 권오헌 회장의 문집 '민주화와 통일의 여정에서 만나는 권오헌의 실천적 삶', 극히 일부의 대표적인 원고를 모아 만든 책만 세권 분량이었다.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권오헌 선생 집은 책과 원고로 가득차 있다. 보수대에서 중요한 책들은 다 가졌갔지만 여전히 당대에 회자되었던 많은 책들이 챚꽂이에 꽂혀 있었다.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권오헌 선생의 삶에 대해 대담을 요청했는데 권오헌 선생은 그런 이야기는 다른 언론사에다 한 게 있으니 참고하라며 이야기를 계속 남북관계발전 방도와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들이 나아갈 길에 대한 쪽으로 끌고 갔다.(후속 기사에서 다룰 예정)

그만큼 권오헌 선생은 조국의 자주와 평화적 통일에 사무쳐있는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존엄높은 통일조국을 건설하여 후대들에게 자랑스런 조국을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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