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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락 선생의 뜻을 기린 ‘형명재단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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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11-28

 

▲ 형명재단의 창립을 알리는 선전물 [사진제공-형명재단 창립준비위]     © 자주시보

 

1129일 낮 12시 대구공익활동지원센터 <바람>에서 형명재단 창립보고회가 열린다.

 

형명재단은 이형락 선생(활동 시 가명 이권)의 뜻을 기리기 위한 재단이다. 박정희 정권시절 조작된 남조선해방전략당2015년 대법원 판결로 무죄 판결을 받고, 유족들이 국가에서 받은 배상금으로 만든 장학재단이다.

 

이형락 선생은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10대의 나이에 사회주의 사상에 눈을 떴으며, 해방 이후 서울의 민주학생 활동을 하다 1950년 서울시경에 체포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탈옥하고 남로당 종로구 당원, 체신부 인쇄공장 지도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형락 선생은 1959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에 관여했으며 4.19혁명 당시 대구로 가서 경북노동조합협의회 통계부장으로 활동했다.

 

특히 이형락 선생은 이 땅의 가난과 모순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이 각성하고, 그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를 변혁시켜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동자 중심의 전위정당을 만들기 위한 많은 노력들을 기울였다.

 

▲ 이형락 선생과 한기명 선생 [사진제공-형명재단 창립준비위]     © 자주시보

 

19641차 인혁당 사건 시기에는 다행히 검거를 피했으나 1968730일 통혁당 관련자 검거할 때 붙잡혀 갖은 고문을 당하는 속에서 조작된 남조선해방전략당의 지역 조직책으로 사형 구형을 받았다. 그러나 2심 때 10년형 선고받고 10년간 대전교도소에서 영어의 생활했다.

 

이형락 선생은 197896일 만기, 출소했으나 공안세력들에 의해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를 받아왔다.

 

결국 이형락 선생은 모진 고문과 매질의 후유증과 트라우마, 제대로 교육도 못시키고, 불구가 되기도 한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 등으로 결국 1985624일 쉰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유명을 달리했다. 현재는 경북 경산의 천주교묘원인 장미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이형락 선생은 자제들과 가족들에게 늘 사람도리에 대해 말했으며, 자상하고 인간애가 깊어, 동냥 온 거지나 넝마주이도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존중되어야 한다고 자식들에게 온몸으로, 삶으로 가르쳐왔다.

 

이형락 선생은 한기명(현 범민련남측본부 대구경북지역 의장)1957년 결혼하여 슬하에 다섯 딸을 두고 있다.

 

▲ 남조선해방전략당이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고 이형락 선생의 묘소를 찾은 한기명선생과 자제들 [사진제공-형명재단 창립준비위]     © 자주시보

 

한편,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은 1968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진보경제학자이었던 권재혁 등 12명에게 "국가 전복·공산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단체 남조선해방전략당을 구성하고 내란을 예비음모했다"고 하는 간첩사건으로 조작된 공안사건이다.

 

29일 창립되는 형명재단은 평등 세상을 위해 희생된 분들의 자손과 현재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위한 장학, 후원사업, 통일과 민주화, 평등세상을 위한 프로그램 지원사업등을 진행 할 예정이다.

 

아래는 형명재단 창립선언문 전문이다.

 

------------아래-----------------------------------------

 

 

<형명재단 창립선언문>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버지를 빼앗기고도 두려움에 떨기만 했던 어린 자식들이 이미 중년의, 노년의 나이에 접어드는 긴 세월이 지난 후에야, 온 집안을 풍비박산 내었던 소위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2014년에야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일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민족이 하나되어 자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부패한 권력에 의한 죽음이 없는 세상,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가 없는 평등한 세상! 그러한 사회를 만들고자 갖은 탄압과 옥고에도 젊은 시절을 버티며 열심히 살아오셨던, 참으로 따뜻했던 우리들의 아버지.

 

자식들에 대한 사랑만큼 세상을 따뜻하고 평화롭게 만들고자 했던 그 길에서, 가장 먼저 노동자들의 각성과 조직화의 필요성을 절감하시고 전국적노동자조직 건설을 위해 노력하시다가 박정희의 야욕에 간첩으로, 소위 남조선해방전략당이란 이름으로 각색되어 몸과 정신을 모두 파괴당하셨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30년을 무덤에서조차 소리내어 울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에게 사람 사는 법을 알려주신 아버지! 사람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주신 아버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그 애틋한 마음을 모아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아비의 삶을, 아버지의 뜻을 다시금 펼쳐보려 첫발을 내딛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떠나고 없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땅의 통일을 위해 애쓰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루고자 했던 평등세상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아버지 어머니의 함자에서 한 자씩 따서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형명재단(亨命財團)은 이땅의통일과 민주화, 평등세상을 위해 희생된 분들과 그 자손들을 위한 장학사업과 활동하는 활동가들을 지원하고 함께 하고자 합니다.

 

작게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들의 염원이지만, 아버지처럼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통일 민주 노동 평화 활동가들의 뜻과 그 삶들을 추모하고 그 희생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걸음이 비록 느리고 서툴게 가더라도 지켜봐 주십시오.

 

형명재단이 잘 운영되어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평생을 올곧고 선하게 살다가 55년 짧은 생을 마감하신 아버지를 기리는 딸들의 효도라 믿으며 형명재단 잘 가꾸어나가겠습니다.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봐 주시고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181129일 형명재단창립발기인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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