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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 가꿔가기 58] 북의 유행이 모두 한국 드라마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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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12-23

 

12월 19일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조선(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똘뜨”가 인기 있다고 보도했다. 필자도 좀 아는 개념이므로 흥미를 느꼈다. 

보도에 의하면 조선 지방도시 주민들 사이에서 똘뜨가 유행인데 러시아어 토르트의 북한식 발음이고 영어로는 케이크에 해당된단다. 공기밥만한 돌뜨에 초가 꽂혀있다는데 그런 법식과 생일 축하노래 부르기를 한국 드라마에서 찾았다. 

 

“이런 생일축하 문화는 한국 드라마를 통해 전파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초 간부·돈주들이 해외에서 사온 똘뜨로 자녀들 생일파티를 챙기면서 시작됐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빵 터졌다. 북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났거나 일어난다는 카더라 통신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게 한국 드라마다. 다른 건 모르겠다만, 똘뜨는 위에서 말한 2000년대 초보다 전에 이미 북에서 유행했었다. 

2003년 평양출판사가 내놓은 책자 《김정일장군일화집》에는 “똘뜨는 우리 식이 아니다”는 일화가 실려 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주체88(1999)년 3월 10일이였다.

**** ***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사업을 협의하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금 생일상을 차릴 때 똘뜨를 상에 놓는데 이것은 우리 식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과줄이나 과일 같은 것으로 생일상을 차렸습니다.≫

사실 조상전래의 풍속이 그러하였다.

예로부터 우리 인민은 아들딸들을 축복해주는 첫돌생일과 로인들의 환갑을 비롯한 생일에는 상을 특별히 잘 차려주었다.

차리는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었으나 어린이의 돌상에는 대체로 과일과 과줄을 기본으로 국수와 떡, 쌀, 실, 학용품, 놀이감 등을 놓았고 로인들의 큰 생일상에는 과일과 당과류 그리고 송편, 절편, 인절미 같은 떡과 산적, 편육에 이르는 여러가지 음식들을 성의를 다해 올려놓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현대에 와서 첫돌생일과 예순돐, 일흔돐, 백돐 등 생일을 맞거나 결혼식을 하는 집들에서 상을 차릴 때 서양식의 축탑인 똘뜨를 올려놓았고 그것이 점차 류행으로 번져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우리 민족풍습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하나의 멋이며 허례허식이였다.

그이께서는 이것을 깨우쳐주시면서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우리 사람들은 똘뜨라는 말조차 잘 모릅니다.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 식이 아닌것을 찾아보고 고쳐야 합니다.≫

우리 인민들이 알지도 못하는 똘뜨같은것을 장려하지 말고 생활에서 민족적인것을 적극 찾아내여 살려야 한다는 가르치심이였다.

이때로부터 일부 사람들 속에서 생일상에 놓여지던 남의 식 똘뜨는 자취를 감추게 되였다.“ 

 

필자는 그 대목을 보면서 똘뜨가 뭔지 대충 짐작은 하면서도 확실하게 알기 위해 사전들까지 뒤적거렸다. 하여 똘뜨는 러시아어 “торт”의 음역임을 알게 되었다. 똘뜨라고 부른다는 자체가 러시아 측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중국에서는 줄곧 “딴가오(蛋糕)”라고 불렀는데 조선족들은 한어발음대로 부르거나 “단설기”라고 표기하다가 한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케익”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조선족 집거지역에 가보면 간판에 “蛋糕”와 “케익”을 병기한 가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북 사람들이 정말 남 드라마의 영향을 받아 생일에 그런 물건을 차려놓는 걸 배웠다면 드라마에서 말하는 대로 “케이크”나 “케익”이라고 부르면 되지, 불편하게 “똘뜨”라고 부를 필요가 있을까? 

중국에서 생일날 케익에 촛불을 꽂아 켜는 바람은 198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20년 가량 세차게 불다가 이제는 꽤나 시들해졌다. 남은 성의를 표시한답시고 큼직한 케익을 주문하여 가져다줬는데 촛농이 케익 위에 떨어져 위생적이 못되고 또 맛이 단조로운 케익을 다 먹는 게 여간한 고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청 큰 케익을 받았다가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버리면서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일케익(중국어로 썽르딴가오生日蛋糕) 장사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면 중국의 생일케익 바람은 어떻게 불게 되었는가? 영화나 드라마로 외국인들이 그러는 걸 보기는 했으나 그런 영상자료가 결정적인 역할을 논 건 아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켄터키 치킨과 맥도날드가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 후반에 중국 대륙에 진출한 켄터키 치킨과 그보다 늦게 들어온 맥도날드가 손님을 끄는 수단으로 생일 쇠는 어린 고객에게 무료로 케익을 선물하고 왕관을 씌워주며 종업원들이 축하노래를 불러주었던 것이다. 마침 중국 식량 여유가 늘어나면서 음식의 다양화를 추구하던 사람들에게 케익은 새로운 종목으로 되면서 전문 혹은 비전문으로 케익을 다루는 가게들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위에서 말했듯이 생일케익이 한 물 갔다. 

 

조선에서 과연 똘뜨가 인기를 끌고 유행된다면 우선 밀가루가 남아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케익 제조에 필요한 부가원자재들도 자체 생산이나 수입이 가능함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이 굉장히 어렵던 20세기 말에 김정일 위원장은 필수음식이 아닌 사치한 똘뜨가 외국숭배와도 관계된다고 판단하여 반대했을 수 있겠는데, 이제 와서 살림이 넉넉해졌기에 식료품이 널리 퍼질 수 있다고 시각을 바꿔 보면 좋은 일이다. 북 백성들이 쫄쫄 굶고 군인들도 배불리 먹지 못한다는 소식들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물론 똘뜨 유행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른다. 사람들이 단맛에 혹하다가 싫증내기까지 결코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음을 필자는 중국의 사례를 통하여 잘 안다. 

조선이 똘뜨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이제 김정은 위원장이 누군가에게 생일상을 보내주었다는 보도에 나온 사진에 케익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면 알 수 있겠다. 혹시 조선식으로 변화발전한 똘뜨가 나올 수도 있다.

 

이번 미국 방송의 보도와 한국 언론들이 덧붙인 해석을 접하면서 필자는 북에서 일어난다는 모든 변화(정말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게 다수)의 뿌리를 남에서 찾는 이를테면 “한국기원설”을 다시 음미하게 되었다. 비슷한 사고방식은 한국에 다녀온 조선족들에게서도 늘 발견할 수 있다. 중국에서 고속도로를 뚫고 해상다리를 만들고 광케이블을 깔고 휴대폰을 보급하는 등 무슨 일을 하든지 일부 한국 경력 조선족들은 한국을 배워서 그런다고 단언해버린다. 물론 한국이 중국보다 일찍 한 일들도 있고 조선족 집거지역의 일부 변화는 확실히 한국에서 배워서 이룬 것들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런 건 아니다. 또한 그런 사람들은 한국이 누구에게 배워서 어떤 일들을 했느냐는데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한국은 누구에게 배웠느냐고 물으면 입을 딱 벌리고 말문이 막혀버린다. 

 

근, 현대에 들어와 한국이 세계를 앞질러 한 일이 뭐고 세계 최초로 내놓은 물건이 뭐냐는 물음에 확실한 답이 몇 개나 있을까? 근년의 한류를 비롯하여 얼마 되지 않는가. 한국은 부지런히 남 따라잡기에 열중했고 학생치고는 꽤나 높은 성적을 따냈다. 케익을 보더라도 전통적으로 밀가루음식을 별로 먹지 않던 한국인들이라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미국산 밀가루를 들여오면서 밀가루 먹기를 권장했고 심지어 일주일에 밀가루를 꼭 먹어야 되는 날까지 정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한국인들의 밀가루 섭취량이 쌀 섭취량을 초과하면서 밀가루음식들이 차차 늘어났고 케익도 퍼진 것이다. 따져보면 한국에서의 케익 유행이 고작 수십 년이고 생일축하문화는 미국에서 배워온 것이고 한국 특색이 별로 없다. 그리고 이제 수십 년 지나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가장 어려운 시절엔 풀죽을 먹으면서 버텨왔다고 자인하는 북 사람들이 원인이야 어떠하든지 똘뜨 같은 비필수식품을 즐긴다면 반가운 일이다. 단 거기에 “한드 영향”을 운운하면서 “한국기원설”을 들먹인다면 천박함이나 드러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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