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미국, 푸에블로호가 무엇이기에 반환 바라나?

가 -가 +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
기사입력 2019-02-17

 

▲ 대동강에 전시되어 있는 미국 푸에블로호   ©자주시보

 

북한이 푸에블로호를 반환하면 미국과의 신뢰 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 

123일 딕 체니 전 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지냈던 로버트 웰스가 폭스뉴스에 실은 기고문 내용이다.

 

227, 28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푸에블로호를 보내주길 바란다는 꽤 정중한 요청이다.

 

이 주장은 꽤 기대감을 모으고 있는 듯하다. KBS25“‘반세기억류된 미국 푸에블로호..2차 회담 통해 돌려받나?”라는 보도를 냈고 노컷뉴스는 14치욕 안긴 푸에블로호나포 사건, 반세기만에 반환되나라는 기사를 실었다.

 

푸에블로호가 무엇이기에 이러는 걸까?

 

나포된 미국 첩보함, 푸에블로호

 

푸에블로호 사건은 1968년에 일어났다. 미군은 123일 북한 영해에 태평양 사령부 소속 첩보함 푸에블로호를 들여놓고 첩보활동을 하였다. 공해상이면 모를까 북한 영해를 침범했으니 북한은 당연히 반발했다.

 

사실 그때까지 다른 나라들은 미국이 영해에 침범해도 묵인했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 아닌가. 미국은 당연히 그래도 되는 양 푸에블로호를 북한으로 침투시켰고 북한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 오라는 임무까지 주었다.

 

그러나 북한은 수차례의 경고에도 푸에블로호가 영해에서 벗어나지 않자 경비정을 출동시켰다. 푸에블로호는 당시 깃발을 달고 있지 않았다. 영해 침범이 문제 될 경우 국적을 밝히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이 쫓아오자 급하게 미국 국기를 올렸다. 자신이 미국 소속이란 것을 알고 물러가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푸에블로호를 나포했다.

 

미국은 상상도 못 해본 일에 충격을 받고 항공모함 3척과 전함 25, 각종 전투기 및 폭격기 등 200대를 한반도로 출동시켰다. 당시 주한미군은 수백발의 핵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해두기도 했다. 미국은 북한이 겁을 먹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제국주의자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 것이라며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였다.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김일성 주석은 비밀에 붙여오던 지상대해상로케트와 지상대공중로케트를 공개하여”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북한 주민들은 전시태세로 돌입했다. 미군은 북한군이 사거리가 80KM를 넘는 지대함미사일, 지대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을 줄 모른 채 항공모함을 원산항에서 24KM쯤까지 붙여놓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미국이 선택할 차례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전쟁인가, 협상인가.

 

사과는 하지만 진심은 아니라고 말하게 해달라

 

미국은 126일 공군 작전을 계획했지만 취소했다. 린든 존슨 당시 미 대통령이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에게 그 이유에 대해 물었다.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강대한 적의 병력이 있다”, “(대통령은) 북한이 1950년 포대를 움직여 DMZ를 관통한 것을 상기해야 할 것”, “나는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다고 보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한마디로 북한이 강하고 전쟁을 하게 될까 두렵다는 말이다.

 

차기 국방장관 내정자였던 클라크 클리포드는 나는 배와 83명의 승무원에 대해 마음 속 깊이 미안하다. 그러나 나는 한국전쟁을 재발시킬 가치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미국은 북한과 협상에 돌입했다. 북한은 협상에서 푸에블로호는 영해 상에서 간첩 행위를 했고 이는 정전 협정 위반이라고 항의했다. 미국은 푸에블로호가 영해를 침범했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북한이 공해상에 있는 푸에블로호를 불법적으로 나포했다는 주장이었다.

 

무엇이 사실일까? 푸에블로호 승무원이 송환된 이후 미국은 해군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했다. 조사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는 기밀에 붙여지다 30년 후에 공개되었다. 보고서에는 푸에블로호가 북한의 영해를 11번 침입했다고 적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푸에블로호에서 입수한 미 태평양함대 명령서에 따르면, 미 태평양함대는 푸에블로호에게 영해를 침범했을 때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 알아오라는 임무를 주었다.

 

북한은 미국에게 3A시인을 요구했다. 3A시인이란 미국이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는 것을 시인(ADMINT)하고 공식 사죄(APOLOGIZE), 이와 같은 일을 재범하지 않겠다는 걸 보장(ASSURE)하라는 것이다.

 

11개월에 걸친 북한과 미국은 협상에서 북한은 초지일관 똑같은 주장을 했다. 미국은 북한과 타협하기 위해 점차 양보하는 양상 이어졌다. 그리고 19681223일 긴 협상 끝에 미국은 북한이 처음부터 요구했던 대로 공식 사과문을 제출한다.

 

미국이 북한에 제출한 사과문은 이렇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앞

 

미합중국 정부는 196812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해에서 조선 인민군 해군함정들의 자위적 조치에 의하여 나포된 미국 함선 푸에블로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해에 여러 차례 불법 침입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중요한 군사적 및 국가적 기밀을 탐지하는 정탐행위를 하였다는 이 함선의 승무원들의 자백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대표가 제시한 해당한 증거 문건들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

미국 함선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해에 침입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엄중한 정탐행위를 한 데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지고 이에 엄숙히 사죄하며,

앞으로 다시는 어떠한 미국 함선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해에 침범하지 않도록 할 것을 확고히 담보하는 바입니다.

이와 아울러 미합중국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에 의하여 몰수된 미국 함선 푸에블로호의 이전 승무원들이 자기들 죄행을 솔직히 고백하고 관용성을 베풀어줄 것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청원한 사실을 고려하여 이들 승무원들을 관대히 처분해줄 것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간절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본 문건에 서명하는 동시에 하기인은 푸에블로호의 승무원 82명과 시체 한 구를 인수함을 인정합니다.

 

미 합중국 정부를 대표하여

미 육군소장 길버트 H. 우드워드

19681223

 

NORTH KOREAN DOCUMENT SIGNED BY U.S. AT PANMUNJOM

TO THE GOVERNMENT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CKNOWLEDGING THE VALIDITY OF THE CONFESSION OF THE CREW OF THE USS PUEBLO AND OF THE DOCUMENTS OF EVIDENCE PRODUCED BY THE REPRESENTATIVE OF THE GOVERNMENT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TO THE EFFECT THAT THE SHIP, WHICH WAS SEIZED BY THE SELF DEFENSE MEASURES OF THE NAVAL VESSELS OF THE KOREAN PEOPLE’S ARMY IN THE TERRITORIAL WATERS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ON JANUARY 23,1968. HAD ILLEGALLY INTRUDED INTO THE TERRITORIAL WATERS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SHOULDERS FULL RESPONSIBILITY AND SOLEMNLY APOLOGIZES FOR THE GRAVE ACTS OF ESPIONAGE COMMITTED BY THE U.S.SHIP AGAINST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FTER HAVING INTRUDED INTO THE TERRITORIAL WATERS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ND GIVE FIRM ASSURANCE THAT NO U.S. SHIPS WILL INTRUDED AGAIN IN THE FUTURE INTO THE TERRITORIAL WATERS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MEANWHILE,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EARNESTLY REQUESTS THE GOVERNMENT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TO DEAL LENIENTLY WITH THE FORMER CREW MEMBERS OF THE USS PUEBLO CONFISCATED BY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SIDE,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FACT THAT THESE CREW MEMBERS HAVE CONFESSED HONESTLY TO THEIR CRIMES AND PETITIONED THE GOVERNMENT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OR LENIENCY.

SIMULTANEOUSLY WITH THE SINGING OF THIS DOCUMENT, THE UNDERSIGNED ACKNOWLEDGES RECEIPT OF 82 FORMER CREW MEMBERS OF THE PUEBLO AND ONE CORPSE.

 

ON BEHALF OF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GILBERT H. WOODWARD, MAJOR GENERAL, USA

(DEPT. OF STATE PRESS RELEASES 280,218, DEC. 22, 1968: 60 DEPT. OF STATE BULLETIN 1,2 (1969))

 

▲ 푸에블로호 미군 수병들이 나포되어 북에 끌려가는 모습과 영해를 침범하여 간첩행위를 했음을 인정한 미군들의 자필 진술서     ©자주시보

 

미국은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북한은 미국의 요청대로 승무원을 모두 송환시켰다. , 푸에블로호는 돌려주지 않았다.

 

미국은 사과문에 서명을 하며 북한에 특별한 요청을 하나했다. 당시 상황을 미국의 소리 방송은 이렇게 묘사했다. “(우드워드 장군) 서명 전에 구두로 미국은, 지금 서명하는 사과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발표를 하고 싶소!” 어떻게든 체면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요구가 아닐 수 없었다.

 

북한은 1866년 미국이 조선을 침범하여 수교를 요구했던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에서 평양 민중들에 의해 불타버린 바로 그 장소에 푸에블로호를 가져다 전시해놓았었다. 푸에블로호는 나포되었을 때 동해인 원산에 있었다. 그런데 1998년 별안간 푸에블로호가 원산에서 사라져서 평양 대동강에 나타났다.

 

한때, 푸에블로호가 어떻게 동해에서 서해 쪽으로 옮겨졌는지 추측이 난무했다. 배를 분해해서 재조립했다는 설도 있었으나, 북한 매체 조선의 소리2012123일 푸에블로호를 바다를 통해 옮겨왔다고 밝혔다.

 

푸에블로호는 북미대결 승리의 상징처럼 되었다. 북한은 푸에블로호를 평양 보통강 구역에 있는 전승기념관 야외전시장에 전시해놓았다.

 

강준만에 의하면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가 훗날 미 해군 4성 장군을 만나 푸에블로호 이야기를 꺼내자 그 장군이 그 빌어먹을 배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화를 벌컥 냈다고 한다. 푸에블로호는 미국에게 손톱 밑 가시 같은 존재인 것이다.

 

문제는 미국은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사과문에서 재발 방지를 약속했음에도 유사한 사건을 일으켜 북한과 대결을 벌였다. 바로 다음해인 1969년 전자정찰기 EC-121와 헬리콥터 OH-23G를 들여보냈다가 격추당했다.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1976) 때도 전쟁위기가 닥쳐왔다.

 

그때마다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것처럼 항공모함이나 폭격기들을 한반도로 전개했다. 그러나 번번이 결정적인 때에 군사행동을 포기했다. 미국은 같은 잘못을 매번 반복했다.

 

미국은 북한을 얕봤다. 미국은 전쟁을 벌일 생각도 해보지 않고 무력을 무턱대고 밀어 넣었다. 북한이 알아서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북한은 언제나 미국의 위협에 굴복할 생각이 없었다. 전쟁을 걸면 전쟁을 한단 결심이었고 정부와 정당, 군대와 주민이 똘똘 뭉쳤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는데 북한은 미국의 예상보다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은 피해를 우려했고 전쟁을 결심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푸에블로호 사건에서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심해야 할 것이다. 북미대화를 결국 대결의 방법으로 끝을 낼 것인가 아니면 화해의 방법으로 끝을 낼 것인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최신기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자주시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