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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이창기의 시, 윤동주의 올곧음과 김남주의 낙천성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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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20-01-03

 

▲ 이창기 기자의 유고시집 『님을 따라(도서출판 615)』가 출간되었다.[사진제공-도서출판 615]     ©김영란 기자

 

지난 12월 초 이창기 기자의 유고시집 님을 따라(도서출판 615)가 출간되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는 추천사를 통해 그의 시 정신은 윤동주처럼 단아한 데다 정갈하고 올곧으며, 민족 주체성을 향한 열정의 투지는 김남주처럼 황토에 깊숙이 뿌리 내린 투박함과 낙천성이 스며있으면서도 견고한 불굴성을 지니고 있다. 이창기의 시는 저 멀리 일제 식민 탄압에 저항했던 카프 문학의 투혼을 부활시켜 분단시대의 반외세 민족 주체성을 소환하려는 기상나팔처럼 힘차다라고 이창기 기자의 시 정신에 대해 평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의 추천사 전문을 아래에 게재한다.

 

---------------------------아래--------------------------

 

한 통일 투사 시인의 참사랑 찾기

 

임헌영(문학평론가)

 

1. 윤동주의 시 정신에 김남주의 투지

 

한 시인이, “시인이 되지 않고는 꿈을 꿀 수 없다는 진정 순수했던 한 시인이 한국 시단에서 스러지는 별처럼 2018년에 사라졌지만 정작 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던가를 미처 알지도 못했다.

 

무작정 시가 좋아 시 만 쓰면 배부른 시인이 되자라고 다짐했던 그가 쓰고 자 했던 시는 화조월석 풍류나 읊조리는 한량이 아니라/외국시 흉내 내다 종시 모를 언어유희가 아니라, “이 좌절과 절망의 땅에서 아픈 시대의 상처 많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날”(‘시인이 되자’)을 앞당기려고 동지들과 하나 되고자 들꽃처럼 피어났다 사그라져 간 미학적 순교의 언어였다. 나는 그에게 우리 시대의 가장 치열했던 민족해방 투사 시인의 한 사람이었다고 감히 말하겠다.

 

씻으리/정히 씻으리/속된 마음/비겁한 심장 정히 씻으리!//던지리/후여 던지리/욕된 목숨/천한 삶을 후여 던지리!//그리하여/내 한 점 살점도/다아 바치고/그뉘 알아주지 않아도!//남기리/하나 남겨 백골이 되어도/지하에서도 영광으로 춤추리니//조국아! 미치도록 그리운/! 자주통일 조국아!(‘서시전문)

 

윤동주의 서시에 화답이라도 하려는 듯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럼 없는 분단시대의 소박한 투사의 맹서 로 읽혀져도 좋을 이 시를 뒷받침해주는 이창기 시인의 삶의 자세는 너무나 투명했다.

 

그의 시 정신은 윤동주처럼 단아한 데다 정갈하고 올곧으며, 민족 주체성을 향한 열정의 투지는 김남주처럼 황토에 깊숙이 뿌리 내린 투박함과 낙천성이 스며있으면서도 견고한 불굴성을 지니고 있다.

 

이창기의 시는 저 멀리 일제 식민 탄압에 저항했던 카프 문학의 투혼을 부활시켜 분단시대의 반외세 민족 주체성을 소환하려는 기상나팔처럼 힘차다.

 

이 시인은 이 혼돈의 시대에 오로지 민족혼을 일깨우려는 나팔수로 살고자 세속적인 욕망들 - “재물 탐욕 하는 자 매국노 되고/지위 탐욕하는 자 당쟁꾼 되고/값있는 이름 떨치려는 사람 영웅이 되려는 따위의 자아를 버리고, “양심의 명령 따라/온몸 내던지는 사람/무명전사”(‘무명전사의 미소’) 되기가 단 하나의 소망이었다는 점에서 김남주의 후예로 손색이 없다.

 

이창기의 인생관은 살면 얼마나 산다고/잘 살면 또 얼마나 잘산다고/한 몸 치닥거리 안락 쫓아/훗날 아무 기억할 것도 없는/맹숭한 삶을 살다가랴면서, “하루살이도 한순간 불꽃으로 뛰어든다/두견이도 이 밤을 피울음 애타게 노래하거늘 어찌 시인으로 돌이켜 부끄럽지 않을/돌이켜 마음 뿌듯할 그 길”(‘살면 얼마나 잘 산다고’)을 가리라고 작심하는 데서 형성된다. 여기서 그 길이란 진실과 양심(‘진실’)으로, 그건 옳으면 가고/해야 할 일이라면/목숨을 던진다./(....)/단 하루를 살아도/민족을 위해/인간의 존엄을 위해!”(‘단순한 삶’)라는 말로 축약된다.

 

너무나 교훈적인 명령조로 이뤄진 단순성에 어리둥절할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를 감안하면 공감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 이창기(1968.3.2.-2018.11.18.)의 고향은 전남 목포다. 영산강의 영혼에서 노래했듯이 그곳은 뼈아픈 전란의 그 시기/말 잘하고 똑똑한 사람들이야/ 이유도 없이 트럭에 실려와/여기 비명도 없이 묻혔답니다.//영산강은 말없이 흘러가지만/눈 감고 강심에 귀 기울이면/아우성으로 피어나는 총소리/튕겨나는 미국산 탄환 껍질을 풍문으로 들으며 자랐을 터였다.

 

그는 광주 인성고교 졸업(1987) 후 고려대 산림자원학과(1988-1996)에 다니며 고대 농악대로 활동 하는 한편 전위적인 문학계간지 노둣돌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심산문학상, 효원문학상, 임수경 통일문학 상 등을 수상한 경력에다 홍치산이란 필명으로 시작활동을 했다.

 

그 결실이 시집 바보 과대표(두리미디어, 1993)10분 사랑(두리미디어, 1996)으로 남아 있는데, 1990년대 학생운동의 풍속도를 그린 수작들로 이뤄져 있다.

 

졸업 후 자주민보를 발행(2000)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2001)됐지만 출옥 후 월간 우리로 체제를 바꿔 민족 주체성에 입각한 잡지를 창간 (2002), 이를 인터넷 자주민보로 전환(2005) 발간하다가 두 번째 국가보안법으로 투옥(2012), 16개 월 후 석방됐다. 이로써 제4회 민족언론상(2014, 미주 민족통신 제정)을 수상했으나 이내 자주민보는 폐간 조치(2015)당했으나 바로 자주시보로 개제 발간, 활동 중 지병으로 작고했다.

 

동지였던 아내 김일심은 늦은 밤 남편의 노트북 자 판 두드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던 날들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그 밤에 썼던 기사나 시들을 나중에 읽고는 뒤늦은 후회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남편이 바빠서 시를 못 쓰는 줄 알았는데 수첩이나 노트의 작은 귀퉁이에 적어둔 손글씨를 발견하면 반가움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기쁜 날, 슬픈 날, 많은 날을 시인 홍치산으로 살고 있었습니다라고 절절하게 회고하며, 자신은 홍치산 선배를 지켜보는 후배였고 마지막을 눈물로 보내야 했던 가족이었다는 말에 자긍심이 묻어난다. “시로 노래해준 장면들이 심장으로 읽힙니다. 시간을 달려 과거의 그날로 데리고 갑니다. 그날의 햇살과 향기도 전해오는 느낌입니다.”(김일심, <시집을 발간하며>)라는 말에 새삼 인생무상을 느낀다.

 

2. 쑥처럼, 민들레처럼 피어나는 사랑

 

이렇게 쓰고 보니 이 시인은 태생이 선험적인 역사의 식의 소유자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천진한 대지의 소년이었음을 시 나는 운동권이 아니었다에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그는 교내 식당의 부실한 반찬을 들고 식당 주인에게 따졌으며, 새벽길 청소부 아저씨에게 담배 한 대 권해 드리고/리어커에 종이 박스 폐품 찾는 할머니 고물상까지 끌어 다 주었는가 하면 한 노파의 도망간 며느리 얘기 다 들어주고서야/영양실조로 죽은 손주 얘기에/눈물 감춰 닦으며/분노로 이 글거리는 눈빛으로 밤하늘을 우러르던 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로지 운동만이 가장 아름답다고/오로지 변혁만이 가장 인간적이라고/믿어 버렸기에/아직 진짜 운동권이 못되지만/진짜가 되기 위해그리고 진실과 사랑이 정의와 따뜻한 정이 잔인하게 짓밟히는/이 세계 최후 분단국가를/ 끝장내기 위해서/하여 바보 같은 사람들이/사랑과 미소로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알짜 운동권으로 편입했다고 그 과정을 진솔하게 실토한다.

 

이런 자신의 변모를 노래한 시가 생각해보라이다.

 

지금껏 살면서 남을 위해/남는 것이 아닌/자신의 삶을 떼 준 적이 있는지를/자신의 피를 바친 적이 있는지를/아니 피는 아니더라도 손해 보며 무엇을 준 적이 있는지./(...)/그 많은 불면의 밤/시기와 질투로 모대기면서/남을 위해/타인의 고통에 마음 아파/단 한 시간이라도 뒤척이며/잠 못 든 적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라’)

 

안도현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를 연상케 하는 이 자기희생의 축제 행위는 이창기 시인으로 하여금 살튀기는 경쟁사회 피끓는 청년으로/팔씨름 족구 조그마한 것에서도/패배를 인정한다는 것은 수치임을 너무나 명백히 알면서도 져주고 바보 같더라도/모두에게 편한 사람이 되는 것/그렇게 평생을 돈을 모으는 수전노가 아니라/평생을 사람을 모으는 애국자 되자!”(‘져주자’)는 결심으로 선회한다.

 

패배란 무엇인가. 시인은 이를 바보처럼 사는 자기희생으로 승화시켜준다. “이기지 못하면 잡아 막히는 세상이라지만/나는 누구나의 봉이요 밥이 되고 싶소라는 시인의 소망은 만인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 수 있는/바보가 되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파한다. 그래서 바보 같은 삶은 곧 혁명을 실천하는 삶임을 깨닫게 된 과정을 이렇게 노래해준다.

 

단 한 사람도 진실로 사랑할 줄 모르던 내가/인간에 대한 사랑이 뭔지 배웠으니/! 이 엄청난 조국의 선물이여!/ 만인을 사랑할 마음 주셨으니!/! 조국이여!/! 혁명이여! (‘나 바보처럼 살려오’)

 

마침내 시인은 나 자신이 바보처럼 패배함으로써 얻게 된 이웃 사랑에서 조국의 종개념을 넘어 혁명이란 유개념에까지 이르게 된 환희를 찬양한다.

 

그렇게 되자 그는 자기희생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강철 같은 규율과 자기 감시가 절실한가를 깨닫는 시점에 이른다. 김남주의 시 전사를 연상할 정도의 냉철한 자기비판을 강조하는 시 비판은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다. “약한 쇠야 너무 강하게 다지면 형체 없어지지만/이미 식민 땅 성스런 임무 알아버린 몸이야/무쇠 망치 두들겨 맞아야 강쇠가 되듯한다며 무시로 달겨들어 나의 영혼 오염됨을 막 고자 무자비한 자기비판 관료주의 박살내리라고 다짐하는 시인의 투지!

 

대체 이 시인은 무엇을 위하여 이토록 그 혁명의 투혼을 단련시키고자 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분단 조국 통일을 위한 민족 주체성의 확립이다.

 

시인은 민족 주체성을 정치구호에서 찾지 않고 우주 삼라만상을 통해 발굴해 낸다. 어떤 외세에도 굴하지 않는 민족의 투혼은 내일이면 태양이 솟듯이 들판에 망초와 제비꽃과 질경이와 강아지풀, 씀바귀, 억새꽃, 잔디처럼, 산속의 맹호가 포효하듯이 어떤 악조건에서도 지칠 줄 모르고 무성하게 자라난다고 아름답게 노래하는데 그중 가작은 필시 민들레 저항일 것이다.

 

새순 하나 따면/세 개 네 개 새순 돋아/쑥쑥 잘도 자라는 쑥//딸 테면 더 따보라며/고개 빳빳하게 들고/더 높이 쑥쑥 자라나는 쑥//새순 딸 때마다/하나가 열이 되고 백이 되어/온통 덮어버리는 겁 없는 쑥! (‘’)

  

베고 또 베고 또 베어내도/바로 잎과 꽃망울 쑥 피워 올리는/민들레/‘벨 테면 베라’/(...)/뿌리 뽑아도/땅 갈아엎어 도/막을 수 없는/민들레의 저항//‘어디, 벨 테면 베라!’ (‘민들레 저항’)

 

그래서 우리 민족은 밟힐수록/뿌리 굵어지는 민들레/쓸수록/지혜 깊어가는 머리/칠수록/뼛속 강해지는 주먹/나눌수록/정 돈독해지는 가슴/하여,/수천년/굵어지고 깊어지고 강해지고/돈독해진/우리 민족//그리하여 이제,/강인한 기상/따뜻한 빛/싱그런 향기로/온 세상 뒤덮어 갈/민들레 우리 민족/생명의 민족”(‘민들레 민족’)이 아닌가.

 

그러나 과연 우리 민족이 이처럼 강인했던 가에 대한 자책과 회한을 이 시인은 잊지 않고 지적해 준다.

 

자동차와 손전화기, 선박과 기계로 세계 시장 말아 쥐면서도/어찌 여전히 사대주의에 쩔어/뼈 속까지 친미, 친일 조잘거리며 굽실거린단 말인가라 고 자탄하며 시인은 , 일이야 겉으론 혈맹이니 하지만/속으론 간 쓸개도 없는 족속이라며/같은 민족끼리 싸움질이라며/얼마나 얕잡아 보겠는가”(‘언제까지’) 라는 게 분단 남녘의 실상임을 일깨워준다.

 

3. 더 많은 화제를 만들기 위하여

 

시인은 부족한 필력과 부족한 시간 그냥 열심히 살고도 싶었지만 밤을 모대겨 쓰면서 참삶이 무엇인지를 서서히 깨닫게 되고 나아가 시를 쓰는 문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 역사가 내려준 의무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시를 쓰는 문제는 구국의 실천과 더불어 또 하나의 의무”(작가 후기)임을 이 시인은 선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이런 명제 앞에서 문학이란 그런 게 아니라느니 어쩌니 하는 잡음은 접어두기로 하자.

 

. 일 제국주의의 음습한 그림자가 드리운 이 분단 남녘의 열혈 청년의 절규가 설사 귀에 거슬릴지라도 이 시를 읽는 동안만이라도 순수하게 받아들이자.

 

이 시대, 언론조차도 기자가 아닌 기레기들이 온갖 풍문만 날조해 내는 시대에 문학은 그 기레기들의 풍문을 모방이라도 하는 듯이 얌전해져 버린 시대에 이창기는 참 언론 활동에 온몸 바쳐 실천하는 것으로는 모자라 용기 있는 진정한 민족 주체성에 입각한 평화통일시를 두견이 울음처럼 토해냈다.

 

그의 시에는 투쟁만이 아니라 지극히 서정미 넘치는 연애시와 부모님을 기리며 불효를 탄하는 참회시, 그리고 주옥같은 자연 서정시편들도 있으며 동지들을 다룬 풍자적인 생활시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진정 바라마지 않았던 분단 민족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주력했던 시 세계만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다뤘을 뿐이다.

 

이 시집 출간을 계기로 시인의 동지들이 그에 대하여 더 많은 일화와 시 해석을 위한 삽화들을 발굴하여 공개해 주기를 바란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어버이를 둔 그의 가족들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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