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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을 당장 무조건 멈춰 세우고 보자

인권, 평화를 입에 달고 다니는 나토가 전쟁에 부채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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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노 재미동포
기사입력 2023-05-21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구촌의 경제, 외교, 안보, 등 전 분야를 매섭게 강타했다. 이 전쟁으로 세계가 극렬하게 분열, 대립하고 심지어 핵전쟁에 대한 우려가 날이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다. 여기서 지금 당장 가장 절박한 건 더 이상 우크라 전쟁에 따른 사상자를 방치할 수 없는 순간에 당도했다는 사실이다. 

 

 

이미 4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는데 매일 수백,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의 사상자도 수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누가 옳고 그르다, 정의다 불의다’를 따질 때가 아니다. 전 세계가, 특히 나토는 가장 먼저 무조건 싸움을 뜯어말리고 대화를 촉구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걸핏하면 인권과 자유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사랑, 평화의 사도인 양 우쭐대는 선진국들이 우크라 청년들의 처절한 희생을 외면하고 되레 무기를 대주고 더 싸우라고 한다. 적어도 선진국이라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싸우지 않도록 사전에 분위기 조성을 했어야 옳다. 그리고 어떤 형태의 경제 제재와 전쟁도 세계 경제와 평화를 좀먹는 장애물이기에 무조건  결사 반대하는 모범을 보였어야 옳다. 아니, 서양의 눈에는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억울한 우크라 젋은이들의 희생은 인권 사항이 아니라서 방치하는 건가. 남의 전쟁에 무기를 대주고 전쟁을 부채질하는 나토는 도덕적으로 썩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크라의 국토는 피로 물든 폐허가 됐고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다. 국민이 죽고 부상 당하고, 해외로 떠나거나 사라져 나라 구실을 전혀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도자라는 젤렌스키가 나토의 주술에 걸려 미국과 영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얼마나 머저리면 제 나라에서 미·러가 대리전을 치를까. 결국 죽어 나가는 건 우크라이나 사람이고 피의 고귀한 대가를 챙기는 건 죽음의 상인들이다. 이들은 삽시간에 떼돈을 벌어 그 피 묻은 돈을 주체할 수 없다고 한다. 오죽하면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따먹는다’는 말이 제격이라는 유행어가 나돌까.

 

이 미·러 대리전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간단명료하게 집약된 표현으로는 나토의 동진 확장과 러시아의 안보 우려가 충돌해 전쟁으로 번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2014년, 합법적 선거로 당선된 야누코비치가 미·영이 배후에 있는 쿠데타로 축출되고 미·영의 추총자가 권좌에 올려지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즉시 크림반도의 압도적 다수인 러시아계는 투표를 통해 러시아와의 병합을 만장일치로 결정했고, 이어서 푸틴은 크림을 완전 병합해 러시아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이에 고무된 러시아계가 대부분인 동부 돈바스 지역의 두 주가 우크라이나에서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결국 우크라는 내전과 대학살로 번져갔다.

 

내전이 격화되자 2014~2015년 두 차례 독일과 프랑스까지 참여한 ‘민스크 협정’이라는 평화안이 발효됐다. 우크라는 이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지난 8년간 러시아계를 무려 1만 5,000명 이상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이 학살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세력은 미·영 특수부대가 양성한 신나치 (한반도가 해방된 뒤 등장한 서북청년단과 흡사)다. 나토 확장에 환장한 미·영이 주도하는 나토는 ‘민스크 협정’을 정면으로 외면하고 우크라군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우크라를 나토 준회원 자격으로 나토의 다국적 군사훈련에까지 참가시켰다. 2021년 12월, 푸틴은 나토에 러시아의 안보 우려 해소에 적극 호응할 것을 촉구하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나토의 무시 대응 전략에 실망한 푸틴은 끝내 작년 2월 24일, ‘특수작전’이란 이름으로 전쟁을 개시했다. 전쟁 초, 세 번이나 러·우 평화회담이 민스크에서 개최됐다. 마침내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주선해 이스탄불에서 네 번째 ‘러·우 평화회담’이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러·우 지도자의 서명만 남았다. 러·우 협상 대표들은 처음으로 대만족을 표하면서 샴페인을 터뜨렸다. 전 세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웬걸, 바로 다음 날 합의 서명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젤렌스키가 “러시아를 믿을 수 없다”라면서 졸지에 이를 걷어차고 말았다. 젤렌스키가 판을 뒤집은 배후에 미영이 있었다는 게 금세 드러났다. 

 

젤렌스키가 내던진 이 합의는 ‘민스크 협정’의 재확인 수준이고 우크라이나의 영구중립이 강조됐을 뿐이다. 이 합의를 깨버린 나토는 허깨비에 불과한 상머저리 젤렌스키를 전쟁으로 깊숙이 몰아넣는 비양심적 작태를 버젓이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영구중립이 되면 지정학적으로 매우 유리한 천혜의 혜택을 백분 활용해 동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경제적 번영을 쉽게 성취할 수 있다. 그런데 나토의 주술에 걸려든 젤렌스키는 이 결정적 평화, 번영의 기회를 걷어차고 지옥을 택한 것이다. 결국에 우크라 영토는 붉은 피로 물든 폐허가 됐고 살아남은 백성들은 죽음의 계곡에서 신음하고 있다. 

 

나토가 우크라 전쟁 배양의 잉태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걸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죄 없는 젊은 청년들의 헛된 죽음을 막아 나서는 데 앞장서는 것이 도리다. 

 

지난달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우크라 종전 평화를 위한 중재에 나섰다. 때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지구촌을 이끌어 가는 G2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그는 오랜 사우디·이란 적대관계의 정상화 중재에 기여한 공로를 평가받고 있다. 이어서 예멘, 시리아에서도 평화의 종소리가 들리고 있다. 심지어 아프리카에서까지 평화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시 주석의 러·우 평화 중재안을 바이든과 젤렌스키는 거부했다. 평화 중재안이 일반적으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푸틴은 수용할 뜻을 내비친 것 같다. 한편, 5월 13일에 진행된 프란치스코 교황과 젤렌스키 간 회담에서 젤렌스키는 교황의 휴전 제안을 거부하고 말았다. 거기에 더해 무례하게도 “희생자와 침략자는 같지 않다”라고 하면서 러시아의 범죄를 규탄하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가 진정으로 휴전 평화에 관심이 있다면 교황의 역할을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게 옳다. 이미 교황은 미·쿠바 관계 정상화에 크게 기여한 공로가 인정돼서 평화의 사도라 불리고 있다. 

 

교황은 긴장과 대결이 한반도가 분단된 원흉이라며 남북 화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해내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교황의 국제적 감각은 매우 정확할 뿐 아니라 지역 내지 세계 평화와 직결되는 일이라면 지체 없이 행동으로 옮긴다. 나토의 동진 확장이 전쟁으로 연결됐다는 교황의 판단은 정확한 진단이다. 이에 기초한 그의 평화안이 무시됐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중국의 리후이 특사가 평화 중재 임무를 띠고 우크라의 쿨레바 외무장관과 지난 17일 회담했다. 시 주석의 중재안은 우선적으로 전쟁을 멈추고 대화로 문제를 풀자는 것이다. 아니, 싸움을 먼저 말리고 봐야지 뭐가 더 중한가.

 

나토는 작년 9월, 미국의 ‘노르트스트림 송유관 폭파’에 눈을 감고 모른 척하고 있다. 바이든의 눈치나 살피면서 전쟁에 부채질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게 웬 떡이냐”라면서 시 주석의 평화 제안에 올라타야 한다. 시 주석이 내놓은 평화 중재의 핵심은 ‘영토 보전의 권리는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다른 안보 우려는 철저히 심각하게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크라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는 이미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해 중국으로부터 쓰라린 경제 보복을 경험한 바 있다. 

 

지난 1962년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위기와 관련 ‘핵전정 불사’를 선언한 바 있다. 최근 특히 중러가 예의주시하며 우려하는 것은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한국이 미국의 MD(미사일 방어) 체계에 편입되는 것, 그리고 최첨단 무기를 앞세운 한미 또는 한·미·일 합동훈련이다. 중·러는 특히 ‘워싱턴 선언’이 약속한 전략무기의 한반도 상시 배치를 우려한다고 했다. 무력 행사에 앞서 경제 보복을 이미 만지작거리는 것만 같다.

 

우크라 전쟁은 우리에게 값진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나토의 주술에 빠진 젤렌스키는 제 땅에서 대리전을 치르고 국토는 폐허로, 국민은 생지옥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다. 이제 핏물로 가득한 우크라 땅에 남을 사람은 양가죽을 뒤집어쓴 인간 백정 젤렌스키뿐이다. 

 

남녘땅에도 한미동맹이라는 주술에 심취돼 다 퍼주고 빈껍데기만 움켜쥐고 그저 감지덕지 하며 전쟁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리는 인간이 있다. 현재 전쟁을 증오하고 평화를 사랑해야 할 독일도 되레 전쟁광이 됐다. 전범국이었던 독일이 일본과 같이 제국주의 재무장의 꿈을 꾸는 것일까? 

 

결론은 종전이다. 우선 더 이상 죽는 걸 막아야 될 게 아닌가. 그리고 이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다음 차례는 우리 한반도에서 미·중 대리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게 중론이다. 작금의 군사 외교적 주변 환경이 말해주고 있다. 유일한 살길인 자주·평화·통일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주적, 괴멸, 파괴, 참수 소리만 난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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