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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통일애국인사 서상호 선생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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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기사입력 2023-06-12

사월혁명회 주된 대외 활동 중 하나가 월례발표회인데, 코로나19로 개최되지 못하다 보니 그간 참석하셨던 원로 통일인사께 정기적으로 안부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분들 중에 사월혁명 공간에 함께 하였던 동지들의 모임이 사월혁명회라며 적극 참석하셨던 분이 서상호 선생이다.

 

▲ 일인시위를 하는 서상호 선생.     

 

선생께 전화를 드리면, 항상 온화한 목소리로 ‘한 동지’라며 반겨주시던 선생이, 지난 1월 노환으로 쓰러져 요양병원에서 투병하시다 6월 10일 오후 3시 30분 별세하셨다. 향년 89세

 

서상호 선생 추모의 밤이 “나의 직업은 통일운동가 / 국민주권연대장”으로 11일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동두천시 예드림장례식장에서 엄수되었다.

 

서상호 선생은 1934년 갑술년 개띠로 밀양출생이다.

 

민족민주운동에서 ‘34년 개띠’는 헌신적 운동가들이 많이 나왔다. 작고한 한승헌 전 감사원장은 권력과 세상을 향해 짖던 ‘맹견(猛犬)들’이라며 ‘맹견주의’라고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말씀으로 후진들을 고무시켰다.

 

아마 일제 강점하에 신음하던 식민지 조국에 태어나 민족해방, 민중해방의 숙명을 지고 일제 패망 후의 해방공간과 6·25전쟁을 전후하여 몸을 던져 싸웠던 분들이었기 때문이라 본다.

 

서상호 선생의 개띠 동지로 사월혁명 공간에서 함께하며 생존해 있는 분으로 ‘추모의 밤’에 오신 김영옥 선생 그리고 건강 등 여러 이유로 오시지 못하였지만 박중기, 황금수, 조용준 선생이 계신다. 선생과는 사월혁명 공간에서 양대 청년운동단체인 통일민주청년동맹(통민청),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 운동 그리고 민족일보로 함께 하셨던 동지들이다.

 

의열단 투쟁의 고장 밀양 출생과 밀양농잠학교 동기들

 

선생은 의열단 투쟁의 본고장인 밀양 출신이다. 

 

의열단(義烈團)은 1919년 11월 약산 김원봉의 주도하에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 무장 투쟁 단체다. 의열단은 의로운 일(義)을 맹렬히(烈) 행하는 단체(團)의 약자로, 주로 일본 제국의 고위층에 대한 암살 활동이나 주요 시설에 대한 파괴 공작을 거행하였다. 

 

선생은 의열단의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총독부 폭탄 투척 의거, 식산은행(殖産銀行)과 동양척식회사 폭탄 투척 의거 등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의식화되었다.

 

선생은 의열단 김원봉 단장과 윤세주 선생 등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의 부친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다.

 

선생은 농업과 누에치기를 가르치던 밀양농잠학교(현 부산대학교 밀양캠퍼스) 출신이다.

 

동기로는 사월혁명 공간에서 함께 활동한 통민청 중앙간사장인 김영광과 2차 인혁당 사건으로 국가 살인을 당한 우동읍 선생 그리고 민족일보 밀양지부장을 한 서순일 선생이 있다.

 

사월혁명 통민청 활동과 소위 인혁당 사건 지명 수배

 

선생은 사월혁명 당시 통민청에서 활동하셨다. 통민청은 서울대 신진회 참여 학생과 통일청년회 출신들이 함께한 청년운동 단체로 서울, 대구·경북, 광주·전남 등 전국 조직이었다.

 

1960년 7.30민·참의원 선거 이후 사회당이 창당 준비를 하면서 최백근 선생이 지도했다.

 

▲ 2016년 12월 21일 망우리 묘역에서 진행된 최백근 선생 55주기 추모행사(생존 통민청 인사 권상능, 김영옥, 서상호, 황금수)     © 한찬욱

 

그리고 민민청과는 성격이나 이념, 활동 내용 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어 통합을 준비하지만, 5.16쿠데타로 무산된다,

 

5.16쿠데타 후 사월혁명의 반동, 공안탄압과 고문 조작 사건의 대표적인 것이 소위 1, 2차 인혁당 사건인데, 선생은 1차 인혁당에 연루되어 전국에 지명 수배당한다.

 

1차 인혁당 사건은 1964년 대학생들의 한일회담 반대 투쟁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조작하여 만든 사건이다. 

 

4·19혁명 못지않은 대규모 한일 굴욕외교 반대 시위가 6.3항쟁이다.

 

굴욕적인 한일회담에 나섰던 박정희는 한일회담 반대 투쟁으로 정권 출범 이후 최대의 위기에 몰렸다.

 

서울의 경찰서가 피습되고, 학생들은 네 군데의 교통관제탑을 점거하여 독자적으로 교통통제반을 조직했다. 일부 학생들은 군용트럭 10여 대를 탈취하여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시내를 활주했다. 그리고 일부 대학생들은 박정희·김종필 민생고(民生苦) 화형식과 일본 총리 이케다 하야로 화형식, 그리고 오일육(吳一陸) 피고에 대한 모의재판을 열고 박정희 정권을 성토하였다.

 

이때 외쳤던 핵심적인 구호가 “박정희의 퇴진”이었다.

 

실천연대와 주권연대 그리고 국민주권연대 활동 및 진보정당 고문 활동

 

이후 선생은 1986년 공안 보호감호처분이 해제되면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와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그리고 국민주권연대 활동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이들 단체 말고도 운동의 통일단결을 위해 타 단체가 주최하는 기자회견과 각종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 국민주권연대 고문단. 오른쪽 두 번째가 서상호 선생.     

 

특히 기억나는 행사로 선생은 진보정당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2019년 9월 28~29일 경주, 울산에서 진행된 1박 2일 민중당 정책당대회에 권오창, 홍갑표, 사월혁명회 등 당 고문들과 함께했다.

 

29일 울산 대의원대회에 고문은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당의 배려로 오전을 경주 황룡원에서 보내면서, 세 가지 주제에 대한 즉석 토론회를 하였다. 참가자는 서상호, 권오창, 홍갑표, 유선근, 이경진, 한찬욱이었다.

 

첫째는 아침에 대대적으로 보도하던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집회를 보고 촛불집회의 분석과 향후 우리의 과제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좀 더 다양한 뉴스와 확인을 거쳐야 하겠지만 진보진영도 연합하여야 하지 않겠냐는 조심스러운 토론 결론을 내렸다.

 

둘째는 ‘이석기 의원 석방 운동을 현시점에서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였다. 

 

참석자 모두는 이석기 의원은 개인이 아니고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민중이며, 분단 극복과 민족해방 그리고 자주통일을 갈망하는 민중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면 지금부터의 석방 운동은 우리 힘으로 감옥 문을 열어야 하기에 강력한 구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민중당이라고 결론지었다.

 

셋째는 그러면 이석기 의원 석방 운동을 주도하는 ‘민중당을 어떻게 강화하여야 하는가?’였다.

 

결론은 이번 정책당대회에 결정된 강령을 더 철저하고 자세하게 민중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하면서 무엇보다도 당은 지도자가 중요하기 때문에 일사불란하게 이상규 상임대표와 김종훈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모두 말씀하셨다.

 

그 토론 중심에 서상호 선생이 계셨다.

 

▲ 2019년 9월 28~29일. 경주, 울산에서 진행된 1박 2일 민중당 정책당대회.     © 한찬욱

 

 

존경하는 서상호 선생님!

살아 있는 우리들은 분단의 원흉 미국과 일본에 맞서,

우리 어깨 위에 지워진 민족해방과 민중해방의 과업을

우리는 절대 벗지 않고

통일된 그날까지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조국은 기억하리라!

선생님의 이름과 걸어온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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