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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컨 방중’의 의미…8시간 넘게 미국 길들인 중국

6월18일~19일 블링컨 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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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기자
기사입력 2023-06-20

최근 중국의 안방까지 직접 찾아가 대화에 매달린 미국이 망신살만 뻗치게 됐다.

 

▲ 2023년 6월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재하는 회담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일행이 참석했다. 가운데가 시 주석, 왼쪽 맨 앞에 시 주석과 떨어져 있는 인사가 블링컨 장관.  © 신화통신

 

지난 18일~19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중국 베이징을 찾았다. 블링컨 장관은 방중 기간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과 만나 총 8시간이 넘는 만남을 이어갔다. 미 국무부 장관의 중국 방문은 5년만이다. 

 

미중 양측은 이번 만남을 “솔직하고 건설적인 회담”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공동 기자회견문을 내지 않았다. 외교가에서 솔직하고 건설적인 대화는 양측의 대화가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했을 때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회담 내용을 파고 들어가면 미국의 손해가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8일 베이징 댜오위탸이 국빈관에서 만난 친강 부장과 블링컨 장관은 7시간 30분에 이르는 회담과 업무 만찬에서 미중 양국의 무력 충돌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 마련, 양국 간 여러 현안 해결을 위한 실무그룹 가동과 관련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미중 양국이 충돌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돌아보면 애초 경제·군사적 측면에서 미중관계를 악화시킨 건 미국이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정보 유출’을 이유로 화웨이, 틱톡, 중국의 반도체 산업 등을 제재하고 대만해협 근처에서 군사 행동을 벌이면서 중국을 쉴 새 없이 자극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대중국 봉쇄망을 펼치며 중국 경제와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앞세우던 미국의 구상은 위기에 빠졌다. 프랑스, 유럽연합 정상 등이 대중 경제 협력을 중요시하며 잇달아 중국을 방문하는 등 미국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중국을 고립하려다 정작 자신이 고립 당하게 될 처지에 몰린 미국은 결국 반도체 등 안보 물자 제재에 집중하는 디리스크(위험 완화)로 대중 정책의 기조를 누그러뜨렸다.

 

이후 지난 5월 들어 미국은 중국과의 대화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5월 10일~11일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왕이 위원과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 10시간 넘게 회동했다. 이후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비공개로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 2월, 미 본토로 날아온 ‘중국 풍선’을 이유로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코앞에 두고 무산시켰던 미국이 중국에 먼저 고개를 숙여 만나 달라고 요청한 꼴이다. 블링컨 장관의 이번 방중에는 중국과 다시 대화를 재개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 대중 공세의 고삐를 쥐다가 갑작스럽게 후퇴한 반면, 미중 양국의 상호 공존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앞세우는 중국의 전략과 태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됐다.

 

특히 최근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국의 대중국 적대 행보를 이유로 미국의 국방 분야 회담 요청을 모두 거절한 중국은 이번 회담의 판을 주도했다. 앞서 언급했듯 중국은 미국과 회담을 통해 양국 간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논의했다.

 

애초 미국에서 먼저 고개를 숙인 회담이다 보니 미국 내부에서는 이번 회담을 향한 기대감이 그리 높지 않았다. 회담을 앞두고 ‘중국은 더 이상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라는 식의 시각이 우세했고, 미중 양국이 충돌을 완화하는 선에서 회담이 끝나도 다행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특히 미 주요 언론은 이번 회담의 성공 여부를 시진핑 주석과 블링컨 장관의 만남으로 꼽을 만큼 수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이마저도 미국은 철저히 중국의 노림수에 걸려들었다. 블링컨 장관은 방중 이전부터 시 주석과의 만남을 희망한다고 했지만 중국은 즉각 답을 주지 않으면서 블링컨 장관을 기다리게 했다.

 

중국으로서는 시 주석과 블링컨 장관이 만나든, 만나지 않든 양쪽 모두 유리한 선택지였다. 시 주석이 블링컨 장관을 만나면 충돌하는 미중 관계 속에서도 시 주석의 관대함을 부각할 수 있고, 만나지 않는다면 미국의 추락한 위신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시 주석은 19일 블링컨 장관 일행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35분 동안 만났다. 그런데 시 주석은 자신이 중앙 상석에 앉아 회담을 주재하면서 블링컨 장관과 미 인사들을 함께 앉혔다. 시 주석이 미 권력 서열 4위인 국무부 장관을 독대가 아닌 방식으로 맞이한 건 처음이다. 블링컨 장관이 시 주석에게 바이든 대통령의 인사를 대신 전하는 등 미 정부를 대표해 왔다는 점에서도 중국이 미국에 대놓고 결례를 한 셈이다.

 

19일 미 국무부가 밝힌 대화 내용에 따르면 시 주석은 블링컨 장관에게 “국가 간의 교류는 상호 존중하고 성의로 대해야 한다”라며 그동안 미국의 대중 정책에 일침을 날리면서 “중미 관계 안정화에 긍정적 역할을 하길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그러자 블링컨 장관은 “오늘 저희를 이렇게 맞이해줘서 감사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이 양국 관계를 관리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저에게 베이징 방문을 요청했다”라면서 “미국은 그렇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것은 미국과 중국, 그리고 세계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시 주석에게 “미국은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고 중국의 체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라면서 “동맹 관계를 강화해 중국에 반대하지 않고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으며 중국과 충돌할 의사가 없다”라고 밝혔다.

 

미중 양국의 공식 발표를 통해서도 중국에 고개를 숙인 미국의 태도가 드러났다.

 

앞서 시 주석은 지난 16일 대중 투자 목적으로 중국에 온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만났을 때 단 둘이 독대하며 예우했다. 반면 미국 정부를 대표해 방문한 블링컨 장관에게는 이마저도 못한 대우를 한 것인데, 미국을 향해 ‘중국을 적대하면 그만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상 중국에 당한 미국은 애써 회담의 의미를 띄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19일(미국 현지 시각)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카운티 팔로알토에서 “(미중관계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라면서 “(블링컨 장관이) 훌륭한 일을 했다”라고 미중관계의 ‘일부 진전’을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미국이 이번 회담을 통해 얻은 성과가 미중 양국의 충돌 방지 대책 논의와 친강 부장의 미국 답방 외에는 딱히 없고, 블링컨 장관이 수모까지 당했다는 점에서 중국에 밀린 미국의 처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20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사설 「미국의 진실성을 검증할 때」를 통해 “블링컨 장관은 양국의 긴장된 분위기를 반전시켜 이견을 관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 것뿐”이라며 “중미 관계의 안정을 위해서는 특히 미국이 말과 행동 모두에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 “블링컨 장관이 미국으로 돌아가 중국에서 받은 정보를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전달해 중미관계를 안정시키고 미국이 언행 불일치의 모습을 남기지 않길 바란다”라면서 “미국이 중국의 전략적 의도를 오해한다면 어떠한 탄압에도 반드시 맞설 것”이라며 경고했다.

 

블링컨 장관은 오는 21일까지 G7 외교부 장관 회의가 열리는 영국에 머무른 뒤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중국의 문을 두드렸지만 간신히 체면치레만 한 블링컨 장관이 앞으로 바이든 대통령에게 어떤 보고를 하게 될지도 관심사다.

 

중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을 쥐락펴락할 수 있음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 중국이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가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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