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월 10일(현지 시각) 베트남을 방문해 “나는 중국을 봉쇄하고 싶지 않다. 단지 중국이 국제적 규범에 따르기를 원할 뿐”이라고 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이야말로 국제사회의 규범을 어기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2020년 5월부터 ‘중국이 미국의 정보를 빼돌려 국가 안보가 위협받는다’라는 이유로 미국의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를 중국의 화웨이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또 같은 이유로 중국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업 틱톡의 퇴출도 시도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8월 들어 중국에 첨단 반도체,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AI) 등 3개 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규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이로써 미국의 대중 제재는 더욱 심해졌다.
문제는 미국이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중국을 제재하면서 정작 이렇다 할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논리가 결국 중국을 제재하기 위한 억지 구실이 아니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로 미국은 올해 2월 중국이 미국의 기밀 정보를 빼내기 위해 미 본토로 이른바 ‘정찰 풍선’을 보냈다며 중국을 규탄했으나 몇 달 뒤 말을 바꿨다. 미 연방수사국(FBI) 등이 수사를 했지만 중국이 미국의 정보를 빼내려 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면서 물러선 것이다.
자국만을 위하는 미국의 ‘국제 깡패’ 식 행태는 미국이 지난 1995년 국제사회의 자유무역을 주창하며 설립을 주도한 세계무역기구(WTO)의 규범을 위반하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 등 160여 개국이 가입한 WTO는 자유무역을 위협하는 국가를 제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8월 31일 한국 매체 헤럴드경제에 기고한 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경제전쟁」에서 “미국의 반중 정책은 WTO 규정 위반이자 세계 번영에 대한 위협으로 이러한 조치는 중단돼야 한다”라면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원칙적으로 잘못됐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실패할 운명이라고 평가한다. 중국은 세계 경제 속에서 다른 파트너를 찾아 자국의 무역을 확대하고 기술 발전을 지원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을 겨눠서도 인플레이션감축법, 반도체지원법을 동원해 사실상 ‘경제 약탈’을 벌이고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은 중국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쓰지 않고, 북미지역 공장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한 대 당 1,000만 원 가량의 지원금을 주겠다고 명시했다. 이 때문에 중국산 배터리,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전기차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은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반면 미국은 테슬라 등 중국에 공장이 있는 자국 기업에게는 지원금을 주겠다고 했다.
이도 모자라 미국은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한국 등 외국 기업이 미국에서 얻은 초과 수익을 미 정부에 내놓으라는 무리한 요구까지 했다.
미국의 이런 조치 때문에 삼성, SK하이닉스, 현대·기아차 등 한국 대기업은 큰 피해를 보고 있고 갈수록 손실이 막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외국 기업의 수출을 사실상 차단하고 자국 기업에게만 혜택을 몰아주는 미국의 행태 역시 WTO 규범을 위반하는 것이다.
지난 8월 22~24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는 미국을 겨눠 국제사회의 포용적 다자주의, 상호 존중, WTO가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자유무역 질서 지지 등을 강조한 요하네스버그 2차 선언이 발표됐다.
9월 4일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도 미국을 겨냥해 “최근 일부 선진국의 일방적인 보호무역주의 조치와 다자간 무역 체계·WTO에 대한 전반적인 거부감은 개발도상국에겐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다자간 무역을 통한 혜택으로 경제를 발전시킨 부유한 국가들은 이젠 공정하게 경쟁하길 원치 않으며 규칙이 아닌 힘에 바탕을 둔 체계로 전환하길 원한다”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노르웨이, 스위스, 튀르키예 등이 함께 미국의 무역 확장법 232조(아래 232조)가 세계 무역 규정을 위반했다며 WTO에 제소한 바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맹인 노르웨이와 튀르키예도 함께한 점이 주목된다. 232조는 미국으로 수입하는 특정 물품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대통령의 직권으로 높은 관세를 매기거나 수입 물량에 제한을 두도록 명시하고 있다.
2022년 12월 WTO는 “미국 정부가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부과한 232조 관세가 세계 무역 규칙을 위반했다”라면서 “미국이 232조 관세 부과의 근거로 삼는 국가 안보의 경우 세계 무역 규칙 면제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라고 미국에 WTO의 규정을 준수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미국 무역대표부는 “이번 판결의 결과로 232조 관세를 철폐할 계획이 없다”라며 “국가 안보는 개별 무역 심판관이 아니라 개별 국가가 결정할 몫”이라고 밝히면서 WTO의 판결 자체를 거부했다.
WTO의 판결은 중국을 겨냥해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대중 반도체 수출을 금지한 미국의 조치와도 밀접하게 연관 돼 있다. 이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판결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은 ‘민간인의 무차별 살상’을 부르는 집속탄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123개국이 가입한 집속탄 금지협약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2010년 8월 1일 유엔을 통해 발효된 협약은 집속탄의 사용, 개발, 지원을 전쟁범죄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 7월 ‘우크라이나군이 알아서 집속탄을 잘 사용할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에 집속탄을 보냈다. 유엔뿐만 아니라 영국, 캐나다 같은 동맹국마저 반대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 역시 중국, 북한을 향해서는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지 말라면서 자신은 괜찮다는 미국의 이중 잣대로 볼 수 있다.
이 사례 또한 미국이 얼마나 국제 규범을 무시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의 패권이 더 이상 예전 같지가 않다. 이미 올해 ‘탈동조화’라는 이름으로 동맹국을 한 데 모아 중국 경제를 전면 봉쇄하려던 미국의 구상은 EU의 반대로 가로막혀 물거품이 됐다. 국제사회 전반에서 미국의 우격다짐이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자주적 판단’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미국이 지금처럼 국제사회에서 ‘깡패 식’ 횡포를 계속한다면 봉쇄를 당하는 건 중국이 아니라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 미국은 더 늦기 전에 국제 규범을 무시하는 자신의 폭주부터 돌아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