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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정신을 지키는 길, 노란봉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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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객원기자
기사입력 2023-09-29

현재 노동계의 핵심 이슈 중 하나는 ‘노란봉투법’이다. 대통령실은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으름장을 놓고 있고, 국힘당은 “불법파업을 조장하는 ‘황건적 보호법’에 불과하다”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무엇이기에 이리도 야단인가. 

 

노란봉투법이란 이름은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사건이 발단이 되어 붙여졌다. 당시 파업이 끝난 후 법원은 파업 참가 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의 손해배상판결을 내렸는데, 이에 한 시민이 노동자를 돕기 위해 4만 7,000원이 담긴 노란 봉투를 전달했다. 이후 수많은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일정의 성금을 담아 노동자들에게 전달하며, ‘노란봉투’는 가혹한 손배가압류에 대응하기 위한 연대의 상징이 되었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적 내용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2조와 3조를 개정하자는 것이다. 노사관계에서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원청이 교섭에 나오게끔 한다는 것(2조)과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손해배상청구를 제한(3조)하는 것이 핵심이다. 

 

“진짜 사장 나와라”

 

우리 헌법 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며 노동삼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 노동삼권은 정규직 노동자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특수고용(특고)노동자 할 것 없이 우리 국민 전체가 가지는 권리이다. 

 

하지만 이 권리를 하청노동자, 특고노동자 등 수많은 노동자는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것은 실제 원청 사용자다. 하청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하청사업주의 경우 원청의 일감을 받아 원청이 원하는 대로 일을 수행할 뿐이다. 

 

그런데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은 본인들은 책임이 없다며 교섭을 거부한다. 반면 단체교섭에 응한 하청업체 대표들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결국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을 상대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요구를 할 수밖에 없는데,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파업 등의 투쟁을 하게 되면 법상 사용자를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며 ‘불법 파업’이 된다.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노동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단순히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것을 넘어, 불법 파업이 되는 순간 노동자들은 물리적 탄압과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노란봉투법에는 노조법상 ‘사용자’ 정의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경우’를 추가했다. 원청과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가 아닌 하청노동자와 특고노동자 등도 원청과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연 것이다.

 

기존의 파업이 불법 파업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파업의 범위와도 관련이 있다. 기존에는 임금인상이나 복지 같은 사유에 대해서만 파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행위가 임금인상이나 복지에만 국한될 수는 없다. 경영자의 경영정책에 따라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좌우되는 경우들이 상당하며, 당장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로 인한 재정건전성 악화가 복지 등 전체 노동자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은가. 

 

노란봉투법은 노조법상 노동쟁의 정의를 확대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정부투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리해고, 해고자 복직 등 노동자 삶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도 합법 쟁의행위 범위에 넣으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불법파업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청업체 노동자도 원청사업자와 넓은 의제로 교섭을 할 수 있게 되니 오히려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커진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손배가압류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사용자 측의 무차별적인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것이다. 

 

작년 6~7월 대우조선해양이 파업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47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손배가압류 문제는 다시금 사회적 이슈로 부각 된 바 있다. 

 

2020년 기준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금액(누적치)은 총 658억 5,028만 7,618원이다. 헌법에 주어진 노동삼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행사한 대가가 이리도 어마 무시하다. (한겨레21, 「대우조선해양 파업의 대가가 470억원」, 2022.08.26.)

 

그동안 손배가압류 소송은 노동자의 노동삼권을 옥죄는 용도로 사용되어왔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공권력을 동원한 물리적 탄압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조합원 개인에게 청구하는 방식의 새로운 노동탄압이 행해지고 있다. 

 

손해배상소송을 통해 조합원 각각의 개인들에게 경제적 책임을 지우는 방식은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기업입장에서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2차적인 문제다. 천문학적인 소송액수 앞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요구를 눈물을 흘리며 포기해야 했다. 따라서 기업들은 일단 소송하고 보자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노란봉투법은 사측의 손해배상소송을 원천적으로 막지는 않는다. 손해배상에 관해서 불법쟁의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각 참여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 자체를 방지하거나 그 금액을 감축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현재까지는 쟁의행위에 얼마나 기여했느냐와 관계없이 회사가 지목한 피고들끼리 다 함께 손해액을 갚는 구조(부진정연대책임)였다. 중간에 피고 일부에 대해 소송을 취하해도 손해액이 줄지 않는다. 사측의 탄압에 마지막까지 굴복하지 않은 몇몇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액을 온전히 떠안아야 했다. 그로 인해 사측은 노조 핵심 조합원들을 피고에 대거 포함한 뒤 노조 탈퇴를 소송 취하 조건으로 걸며 ‘노조 길들이기’에 손배소를 활용해 왔다.  

 

앞서 언급한 2조 개정은 손해배상소송이 면책되는 합법 교섭·파업의 범위를 넓힌다는 의미도 있다. 하청노동자들이 손배소를 무릅쓰고 점거 농성 등을 벌이지 않아도 원청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은 헌법정신의 반영이자 ‘글로벌 스탠다드’ 

 

노란봉투법은 노동자들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를 담은 법이 아니다. 헌법에 명시된 노동삼권의 보장을 위해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속에서 기업들은 외주화를 적극 활용하며 본인들의 비용을 줄여왔다. 그로 인해 하청노동자, 특고노동자들이 대거 양산되었다. 하지만 기존에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들은 그에 발맞춰 변화해 오지 못했다. 

 

노란봉투법은 변화된 고용관계 속에서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삼권의 보장을 현시기에 맞게 실현하기 위한 법일 뿐이다. 불법 파업을 부추기는 법이 아니라 정당한 파업이 불법이 되지 않게 노동삼권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한 법이다. 

 

노란봉투법은 지난해 4월부터 발효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제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와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에 맞춰가기 위한 개정안이기도 하다. 

 

ILO 기본협약 87호와 98호를 바탕으로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가진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파업까지도 가능하다’라고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한겨레, 「노란봉투법, 세계서 유례 없다?...“ILO 기본협약에 부합”」, 2022.09.17.)

 

노란봉투법의 출발이 된 쌍용차 파업의 노동자들은 2009년부터 현재까지 온갖 소송에 시달린다. 그 14년 사이에 30명이 목숨을 잃었다. 파업의 대가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를 민주국가라 할 있는가. 

 

노란봉투법의 개정을 거부하는 것은 우리 헌법의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며, 국제사회의 일원이 아님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노조법 개정안은 9월 국회처리가 무산된 상태다. 헌법에 기반해 법을 만드는 국회는 올해 안에 반드시 노조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자신의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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