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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이창기] ⑦ 투쟁, 애국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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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영
기사입력 2023-11-13

올해 11월 18일은 이창기 기자의 5주기입니다. 이창기 기자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보내온 추모 글과 시를 소개합니다. 일곱 번째는 손세영 민족통신 대표의 글입니다. (편집자 주)

 

 

▲ 이창기 기자.

 

 

투쟁, 애국언론인

 

이창기 동지의 51년 짧은 삶은 고난과 투쟁의 생애였으며 보람과 자랑, 영광의 고결한 삶이었습니다.

 

이창기 동지는 대학생 때부터 학생 운동에 참여해 사회의 모순과 비리에 항거하고 민족 분단의 구조적 모순에 반미, 자주화를 외쳤습니다. 

 

이창기 동지는 일생을 자주, 민주, 통일에 바친 애국언론인이었습니다.

 

‘남과 북은 하나’라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기치로 자주 언론, 민족통일 언론인의 선봉에서 온갖 박해와 탄압을 받고 체포, 구금당해 두 번씩이나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또 자주민보 폐간에 당당히 맞서 싸워 자주민보를 굳건히 지키고 언론의 사명을 다한 양심 있는 언론인입니다.

 

이창기 동지가 투병 생활로 집필 활동이 어렵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독일, 스웨덴 등에서 수많은 해외동포가 염려와 성원을 보내주었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창기 동지는 어려운 암 투병의 역경 속에서도 자주, 민주, 통일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는 삶의 철학을 구체적, 실천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삶은 국내외 애국언론인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창기가 되자’라며 이창기 동지를 자랑스럽게 따르는 젊은 후배들도 많습니다.

 

이창기 동지는 2000년 자주민보를 창간하고 민족통신과 연대 활동(자매지) 관계를 맺고 기사 교류, 정보 교류, 공동 취재, 공동 행사, 인적 교류 그리고 상호 방문을 통해 참다운 인간관계를 맺은 동지였습니다. 또 왜곡된 ‘북부 조국 바로 알리기’에 앞장서 조국통일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창기 동지와의 마지막 만남은 2017년으로 기억되며 박해전 사람일보 회장과 미국에 있는 저의 집에서 유태영 박사, 노길남 박사와 함께 며칠을 지내며 나눈 대화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특히 한국과 해외는 물론 북한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상과 전자무기의 위력 등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그칠 줄 모르는 열정, 뜨거운 애국심은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창기 동지와 모포 한 장이 깔린 거실 바닥과 카우치(소파의 한 종류 -편집자 주)에서 밤을 지새운 날들은 이제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창기 동지가 통일의 날도 못 보고 운명을 달리한 점은 남과 북, 해외동포 사회에 크나큰 손실입니다.

 

비록 우리 곁을 떠났으나 이창기 동지가 남기고 간 조국통일의 염원과 정열적 삶, 애국 투쟁 정신은 우리와 함께할 것이며 이창기 동지의 사회정치적 생명은 영원할 것입니다.

 

천국에 먼저 가신 김승교 변호사님, 유태영 박사님 그리고 노길남 박사님과 만나 함께 못다 이룬 남북통일을 위해 계속 응원해 주시고 인도, 지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창기 동지

 

우리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진보통일운동가 민족언론인 이창기 동지 5주기 추모행사 추모위원 모집

◆ 기간: 11월 17일까지

◆ 추모위원비: 2만 원 이상 (계좌: 우리은행 1002-240-084597 예금주-김영란)

◆ 추모위원 가입 링크: https://bit.ly/이창기추모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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