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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15] 핵전쟁의 실제화, 희망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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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
기사입력 2024-01-20

● 동족 의식 제거에 나선 북한

  

북한이 동족을 지우고 있습니다.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하고, ‘삼천리금수강산’, ‘8천만 겨레’와 같은 말을 남과 북을 “동족으로 오도하는 잔재적인 낱말”이라고 하면서 쓰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해 북한 민족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까지 하였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자신들을 건드리면, 그것이 작은 불씨일망정 바로 전면전이 될 것이고, 그 전쟁은 핵전쟁이 될 거라고도 공언하고 있습니다. 전쟁 시작 자체를 핵무기로 하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전개입니다.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요?

 

북한이 초정밀 초경량 핵무기들까지 개발한 것을 보면, 대한민국 전체를 한 방에 초토화하는 초대형 핵무기를 한국에 사용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그런 초대형 핵무기는 미 본토용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한민국에 초정밀 초경량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용산 대통령 집무실, 평택 미군기지, 전국 주요 군사기지들, 국정원, 경찰청사 등등 국가 무력 시설들, 그리고 통신, 전력, 철도·도로 등 국가기간시설들이 직접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용산 대통령실이 핵무기로 공격당한다면 당연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게 됩니다. 민간인도 섞여 있을 수 있고 용산 일대는 아마도 상당 기간 불모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도방위사령부가 있는 남태령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악산 일부와 사당에서 과천을 향하는 일대는 용산처럼 불모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핵전쟁 시 전국의 군사 요충지마다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쟁을 준비하는 마당에 지금까지처럼 북한의 군대나 주민들이 한반도 전역을 ‘삼천리금수강산’이고, ‘내 나라 내 조국’, ‘한 민족 한 동포’로 여긴다면 ‘내 나라 내 땅’을 그렇게 불모지로 만들고 초토화하고 ‘내 민족 내 형제’들을 싹 쓸어버리는 전쟁을 단호하게 수행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그 대상을 군인들로 국한한다 해도 핵 타격에 직접 노출된 군인들은 생존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 핵전쟁은 적에 대한 감상이 개입할 여지를 더 철저히 배제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적대국이고 동족도 아니고 그 땅은 적대국의 땅일 뿐으로 ‘우리 땅’이 아니어야만 그런 단호한 핵 공격이 가능한 것입니다. 

 

특히 현대전은 초 단위로 승패가 갈립니다. 핵미사일을 쏘는 마당에 먼저 탐지되면 발사는커녕 원점 타격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먼저 발사 단추를 누르는가?’가 가장 중요해집니다. 핵미사일이나 핵포탄의 발사 단추를 누르는 손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일순간의 주저함도 없어야 합니다. 과녁이 ‘내 나라 내 땅’이고 ‘삼천리금수강산’이며 타격 대상이 ‘동포 형제’라는 생각으로는 핵공격 계획을 세울 수가 없고 공격의 순간 망설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 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은 국보급 문화재가 있는 곳이면 ‘우리 민족의 문화재’라며 피해를 막기 위해 작전을 변경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때는 지상에서 소총으로 사용할 때니, 미군, 한국군, 민간인을 가리면서 공격할 수 있었지만, 핵무기를 사용해야 하는 핵전쟁의 마당엔 그럴 수 없으니, 북한 군인들과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동족 의식, 내 나라 내 땅이라는 의식을 완전히 지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전쟁을 생각하다 보면, 설사 그렇게 전쟁을 수행하고 북한이 이야기하는 영토 평정을 한다 해도 큰 피해를 본 한국 국민의 민심을 잃어 북한 입장에선 전투에서 이기고도 정치에서 지지 않겠냐, 모두가 지는 무모한 일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당장 1945년 미국에 핵공격을 당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비롯한 일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반미의식은커녕 미국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완전히 친미·종미의 지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25 당시 미군에게 학살당한 가족을 둔 유가족들이 미국에 잘 보여야 살아남는다며, 학살자의 정체를 알면서도 반미에 나서지 않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해방기 코리아의 모스크바로 불릴 정도로 진보적 인사가 많았다던 대구가 숱한 학살 뒤 지금은 국힘당 등 친일·친미 보수세력의 본거지가 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6.25 때 조선일보의 반응도 의미심장합니다. 그 대단한 친일·친미 반공 신문이 서울에 북한의 군대가 들어오자마자 호외를 통해 ‘김일성 장군 만세!’를 앞장서 외쳤습니다. 

 

결국 전쟁에는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한다는 교훈만이 명확합니다. 이것이 냉엄한 역사적 사실인 것입니다. 요즘 북한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보면, 바로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대남심리전이라는 윤석열

  

북한에 2배, 3배의 보복이니 즉·강·끝을 외쳐대던 윤석열 정권이 돌연 북한의 핵전쟁, 전면전, 초토화 발언이 심리전의 일환이니 속지 말라고 성화입니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전쟁 가능성을 일축합니다. 전쟁은 나지 않으니 주식시장도 일상에서도 동요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원래 윤석열 정권의 기조대로라면 북한에 ‘2배, 3배의 핵전쟁을 가하겠다’, ‘북한 전역을 완전히 석기시대로 돌려버리겠다’, ‘백 년이 지나도 복구 불가능한 불모지로 만들어 버리겠다’, ‘북한이 조금만 움찔해도 선제타격으로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해야 마땅합니다.

 

윤석열 정권의 분석대로 이 모든 발표가 심리전이면, 우리도 심리전적으로 북한을 꺾어야 옳습니다. 

 

한·미·일 3국의 군함들을 모아 역대 최대라며 훈련했으나, 이내 북한이 그것을 겨냥해 거대한 핵 해일을 일으켜 군함들을 모두 뒤집어 버릴 수 있는 ‘해일’ 잠수정의 발사 시험을 했다고 하면, 또 즉시 그 해일이라는 무기를 파괴하고 북한의 함정들을 전부 수장시켜 버리는 무기를 2, 3배로 선보이는 훈련을 해야 일구이언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북한의 핵공격 전면전 선언은 심리전에 불과하니 국민 여러분은 동요하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것입니다. 

 

혹자는 ‘남북 대결에서 북한이 패배하여 내부 단속용으로 전면전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라고 평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더더욱 ‘즉·강·끝’을 부르짖어 온 한국이 이긴 것이니 더 소리 높여 북한을 초토화해 버리겠다고 밀어붙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윤석열은 총선을 앞둔 시기인 3월 말에서 4월 초 쯤에 과거 연평도 포격전, 연평해전, 판문점 도끼사건 등과 같은 정도의 국지적 충돌이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그 충돌이 전면전, 그것도 핵 전면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너무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연평도 포격전 정도면 남과 북에서 군인 몇 명 정도 희생당하면 그뿐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핵전면전이 일어나면 윤석열과 그 부인께서 먼저 즉사할 수 있으니, 그것만은 멀리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어쩌란 말인가

 

윤석열이 요즘 심리전 운운하며 전쟁은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전면전은 사실 생각도 해보지 않았고, 전쟁을 한다고 해도 북한을 이길 수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 타산도, 자신도 없이 무작정 선제타격, 북한 정권 종말, 2배·3배 응징, 즉·강·끝을 외쳐댄 윤석열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다 죽게 된 것이 아닌가,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필 젤렌스키를 택해 죄 없이 죽어 나가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신세가 떠오릅니다. 

 

‘전 정권 당시와는 완전히 달라진 상황, 핵전쟁 위기를 목전에 둔 이 상황은 윤석열 때문에 시작된 것이니 결국 윤석열을 끌어내려야만 해결이 되는 것’이라 외치지도 못하고, 목전의 전쟁을 막기 위해 ‘한미훈련 중지법안’도 발의하지 못하는 야당 대표나 의원들이, 윤석열이나 신원식조차도 지금은 심히 망설일 ‘북한 규탄’에 목청을 높이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죽고 싶지 않은 국민들은 어디에 의지해야 하는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삶이 아쉬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희망은 멀고 걱정은 깊어만 가는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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