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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북녘 도서기증운동을 주도한 송기뢰 박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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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6-08

 

▲ 송기뢰 박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조의방북 소감을 발표하는 모습     ©자주민보

 

재미도서기증회장 및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과학기술위원장을 역임하며 북녘 동포들을 위해 1만 5천권이 넘는 수많은 과학기술도서기증사업을 수십년 동안 진행해온 송기뢰 박사가 2018년 6월 2일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아래는 고인과 함께 도서기증운동을 펼친 리금순 동포의 추모글과 민족통신에서 보도한 관련 기사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아래 .............................

 

송기뢰박사님께서 

2018년 6월 2일 지병으로 운명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송기뢰박사님은 재미도서기증회장및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과학기술위원장을 역임하시며 조국을 위해 수많은 도서기증사업을 수십년 동안 하셨습니다.   

 

기증도서들중 특히 조국의 과학발전을 위한 많은 과학기술서적을 정열적인 그리고 헌신적인 힘을 기울여주셔서 오늘날 조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해주신 훌륭한 선생님이셨습니다.  

 

또한 송기뢰박사님은 언제나 정의로운 분이셨, 고, 항상 약자편에 서서 일하신 인자한 선생님이셨지요. 우리 후배들이 그길을 따라가야할텐데...

 

오래 오래 그리워할것입니다. 

                                            리금순드림

 

 

[부고]송기뢰 박사, 6월2일 지병으로 향년89세로 운명 

                                                     2018년 6월 5일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재미동포 통일운동진영의 원로이신 송기뢰박사께서 지난 6월2일 한국에서 지병으로 치료를 받던 중 운명했다. 향년 89세.

 

송기뢰박사는 1929년 7월25일 함흥에서 태어나 전쟁시기인 1950년 12월 21살의 나이로 단신으로 이남으로 넘어와 15년 동안 청장년 시절을 공군기술장교 후보생에서 시작하여 공군장교 생활로 장기 복무하다가 중령으로 전역하고 곧 1965년 초 도미했다. 그 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거주하다가 지명을 치료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가 지금까지 치료를 해 오다가 지난 6월2일 운명했다. 

 

그는 1965년에 도미하여 20년의 세월이 흘러간 1985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이북을 방문해 혈육을 만났다. 그는 그 때부터 뭔가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미국에 돌아가 도서들을 지원하기로 결심하고 지금까지 북부조국에 1만5천 여권의 과학도서들을 기증하는 사업을 벌여왔다. 그는 한편으로는 이북에서 김일성 회고록 8권을 영문으로 번역한 것을 감수하는 편수관 역할도 했고, 컴퓨터 시스템 관계 도서 16권을 번역한 것을 교열하며 교정해 준 일도 있었다고 설명해준바 있었다. 

 

송 박사는 그런 일을 하면서 통일운동에 참여해 왔다. 그는 그동안  재미동포도서기증회 회장, 그리고 재미동포과학기술자협회 회장 일을 맡고 활동하ㅇ 왔고,  6.15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 직도 맡은바 있고,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으로 활약해 왔다.  

 

그는 재미동포로서 이북의 고향을 방문한 것은 미국 온 이후 20년만인 1985년 6월이었다고 말한다. 그 때는 이미 부모님들은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과 그의 남편을 만났지만 그 때의 순간과 그 추억은 “그저 일주일 동안 울다가 온 생각 밖에 나지 않는다”고 송 박사는 회고한다. 그는 고향인 함흥에 혈육들이 많다. 친가와 외가 쪽 가족들을 합하면 모두 90여 명의 친척들이 있다. 

 

그는 혈육을 만난 그 순간부터 고향을 위해 뭔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것이 도서기증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미국에 돌아 와 곧 바로 <재미동포도서기증회>를 조직하였고, 그 후 1998년에 또 <재미동포 과학기술자협의회>를 만들어 두 단체를 운영하기 위한 회원들을 모집했었다. 그 결과  회원들이 모두 120여 명을 넘은 때도 있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고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송 박사가 걸어 온 미국생활 수십년의 세월이이 궁금하여 민족통신 기자가 질문해 보았을때  그는 1965년 6월 미국에 와서 뉴욕에 거처를 정하고 뉴욕대학(NYU) 대학원에 입학하여 경영학을 전공하고 69년 5월에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그 이후 계속해서 경영학 박사학위(Doctor of Business Administration)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취득했다고 했다. 

 

그는 남녘에서 공군장교 생활을 할 때에도 제대할 무렵인 1962년부터 1964년까지 2년 동안 군에 있으면서 서울행정대학원을 다니며 석사학위(MA)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1953년에 1년, 1958년에 1년 동안 미국에 와서 군사교육을 받고 돌아갔다고 말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동안에도 고향방문이 계기가 되어 이북을 수십여 차례 오가며 지원사업을 하는 한편 컴퓨터 시스템관계 연구로 이북에서 2001년에 공학박사까지 받았다고 밝힌바 있었다.  

 

송 박사의 직장생활도 다양했다. 그는 미국생활 수십여년 동안  첫 5년은 대학원 생활을 했고, 졸업 후에는 5년 동안 화학제품회사에서 기술행정 감사 역으로 취직하여 일하다가 그로부터 5년 후인 1975년 7월에는 체이스 맨하탄 은행서 감사 역으로 일했고, 1980년부터 1993년까지 13년 동안에는 메릴린치 증권회사의 증권분석가로 일했고, 그로부터 2003년까지는 연방정부의 컴퓨터 프로그램 자문관으로 일해 오다가 은퇴했다. 

 

그 이후 은퇴생활을 통해서는 주로 이북을 돕는 일에 힘을 쏟아 왔다. 그의 자녀들은 이미 독립해서 나가 살고 있다. 50살 된 장남은 사업가이고, 둘째는 유전공학자로 활동하고 있고, 막내는 일본 도꾜에서 국제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유학했다고 했다. 

 

송기뢰 박사는 고향방문 수십여 차례나 되는 정도로 이북을 많이 방문했기에 기자는 그의 이북사회에 대한 인상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북동포들 대부분이 열심히 일한다는 점을 비롯하여 학생들과 학자들의 학구열이 불같이 끓고 있는 사회이고, 교육제도가 훌륭하고 특히 나라 방침이 과학자들을 우대하는 사회라는 것을 관찰해 왔다는 소감을 밝힌바 있다.  

 

<재미동포 통일운동권에 관한 평가>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1)일반동포들의 통일관심이 무관심하지만 통일운동권 인사들은 그 관심이 대단히 높고 열심히 일하는 점을 높이 평가했고, (2)통일에 관한 연구활동이 높고, 그리고 (3)통일의 길이 어렵지만 그것을 극복하며 열심히 추구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통일운동권에 대한 아쉬운 측면도 아울러 지적했다. 동지적 협력과 협조가 결핍된 점을 비롯하여 분파 성 잔재가 농후하며, 행세주의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고인은 비록 세상을 하직했지만 그의 고귀한 애국심과 애국업적은 우리 재미동포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통일운동사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애국자 여러분의 조문, 조사, 위로말 들을 댓글로 올려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유가족 연락관계는 아래 전화로 문의해 주기 바란다. 

 

*유가족 관계 문의:  917-667-5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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