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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산지석]최근 타계한 항일여성빨치산 리민과 그의 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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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7-24

 

지난 달 말 중국 조선족으로서는 최고직위에 오른 조남기 상장의 타계와 더불어 에 대한 글을 2편(정문일침 495편 “김종필과 조남기”(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40392&section=sc51&section2=), 정문일침 496편 “박근혜 정부라면 김종필에게 훈장을 추서할까?”(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40412&section=sc51&section2=) 썼는데 이달엔 조선족 여성으로서는 제일 높은 지위를 누렸던 항일빨치산 리민(李敏)의 부고를 접했다. 1924년 11월생으로서 2018년 7월 21일 3시 39분에 심장병 급성발작으로 세상을 떴으니 향년 93세(세는 나이로는 94세). 

 

▲ 만년의 리민     © 자주시보,중국시민

 

11년 전 필자는 “인연 맺으면 섭섭해도 따지지 않아”라는 글에서 리민의 남편인 전 헤이룽장성 성장 천레이(陈雷진뢰)의 사망 및 조선(북한)의 처사를 소개했었다. 

 

“작년 12월 8일 <노동신문>에 조문전보가 하나 실렸다. 김정일 위원장이 항일혁명투사이며 원 헤이룽쟝성 성장이었던 진뢰(陳雷)의 사망에 애도의 뜻을 표시하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보면서 글을 한 편 쓸까 궁리하다가 89세 고령으로 죽은 사람을 놓고 뭐라고 하기 좀 무엇해 쓰지 않았는데, 요즈음 인터넷에서 중국의 《국제선구도보(國際先驅導報)》(2006년 12월 15일~21일)가 <중국항일연군노병의 조선정(中國抗聯老兵的朝鮮情)>이라는 제목으로 실은 글을 보고 결국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글에 의하면 12월 11일에 선양 주재 조선총영사관 총영사 이기범(李基範)과 영사 전경정(全慶正), 백정길(白正吉)이 진뢰-천레이의 유체고별의식에 참가했다 한다. 

아내 이민(李敏)은 13일 오전에 《국제선구도보》의 기자를 보고 정말 생각 밖이다. 우린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친히 조문전보를 보낸데 무척 감동되었다면서 “그야 필경 국가 수령이 아닌가(他畢竟是國家領袖啊)”고 말했다 한다. 다망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쓸 줄은 몰랐다는 의미로 이해해야겠다.” .

 

항일전쟁 말기에 천레이와 리민의 연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김일성 장군이 지지해주어 결혼하게 된 천레이와 리민은 조선과 깊은 정을 맺었고, 김일성 주석 서거 후 외국인 조문객들을 받지 않는다는 규정을 무시하고 승용차로 헤이룽장부터 랴오닝성(요녕성) 단둥시(단동시)까지 달려갔다가 세관에 막혔다. 김일성 주석이 중국 항일투사 장웨이화(张蔚华장울화)를 형제처럼 간주하고 장웨이화의 사적을 조선혁명사의 구성부분으로 보면서 국적을 무시했던 것과 비슷하게, 천레이는 우리가 왜 외국인인가? 형님이 서거했는데 왜 조문하러 가지 못하느냐고 항의했다 한다. 결국 김정일 지도자의 특별조치로 두 사람은 조선에 들어가 조문했다. 

천레이와 리민 부부는 조선의 자료와 소설들에서도 가끔 나온다. 필자 개인적으로 천레이라는 인물의 언행에 불미스러운 점들이 적지 않다고 보는데, 2006년 말 불쾌한 일이 적잖았을 조선은 정중하게 조문전보를 보내고 장례식에 간부들을 보냈으므로 적잖이 놀랐고, 통이 크고 정이 깊다고 알려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반일기풍이 강한 가정에서 태어나 1936년 12살 때 항일부대에 참가한 리민은 항전과정에서 아버지와 오빠를 잃었으나 꾸준히 싸웠고, 해방 후에는 여러 가지 자리에서 열심히 사업했으며 만년에는 헤이룽장성(흑룡강성)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었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해 기사화된 적 있고 역사연구를 이유로 그녀를 찾은 한국인들도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써낸 글들의 가치는 필자 같은 사람들이 고개를 비틀 정도였다. 예비지식이 부족하고 역사를 대하는 기본이 잘못된 상태에서 김일성, 김정숙 뒷이야기나 캐려고 애쓴 사람들이 글을 얼마나 잘 썼겠는가. 

항일연군 여전사 출신 가운데서 제일 높은 자리에 올랐고 건강상태도 괜찮았기에 국내에서도 항일역사 연구자들이 늘 그녀를 찾아갔을 뿐 아니라 도움을 바라는 방문자들도 많았다. 개인적인 일이라면 거절했으나 공적인 일들은 힘껏 도와 여러 고장의 조선족들에게서 특히 호평을 받았다. 일례로 헤이룽장성의 우리 글 신문의 창간과 발전은 그녀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한다. 

허나 뭐니뭐니해도 리민의 최대공적은 교과서에서 중국 항일전쟁의 역사를 8년으로부터 14년으로 고치도록 추진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1937년 7월 7일 루거우챠오(노구교)사변 발발을 전면적인 항일전쟁의 발발로 간주하여 “8년 항전”이 상용어로 굳어졌다. 1931년 9· 18사변 이후 동북(만주) 땅에서 벌어진 항전이 역사자료들과 문학예술작품들에 많이 등장하기는 했으나, 교과서에서는 8년 항전을 중점으로 다뤘기에 동북항일연군 출신으로서 리민은 불만스러웠고 불안했다 한다. 8년 항전만 강조하다가는 자기들이 피를 흘려 싸운 역사가 차차 묻히고 잊히지 않겠는가. 실제로 교과서만 보고 과외독서를 하지 않은 젊은이들은 동북의 항전을 잘 모른다. 리민과 전우들 그리고 뜻있는 이들이 10여 년 꾸준히 제의한 끝에 2017년 초 교육부가 14년 항전을 중학교, 소학교 교과서에 넣으라는 공식편지를 발송했다. 

 

▲ 교육부의 14년 항전 교육 관련 편지     © 자주시보,중국시민

 

“"항일전쟁은 국부전쟁 14년, 전면 전쟁 8년. 내 워낙 최대의 소원이 바로 항일전쟁 14년 역사를 교과서에 써넣는 것인데 이제는 끝내 실현했다.(抗日战争局部战争十四年,全面战争八年,我原来最大的愿望就是把抗日战争十四年历史写入教科书,现在终于实现了。)"

 

2017년 교과서 수정보충에 관련해 제일 기뻐한 사람이 바로 리민이었다. “국부 항일전쟁 14년 전면 항일전쟁 8년”은 미래 애국주의 교육의 키워드로 되어 장원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천레의 전례에 비춰보면 리민의 사망에 조선이 조문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월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중국방문에서 두 나라의 전통적인 친선이 강조되었는데, 그 전통에는 리민 같은 사람들의 공로가 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회에서 한 연설을 전한 조선기사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장구한 기간 공동의 투쟁에서 서로 피와 생명을 바쳐가며 긴밀히 지지협조해온 조선인민과 중국인민은 실생활을 통하여 자기들의 운명이 서로 분리될수 없다는것을 체험하였으며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잇닿아있는 형제적이웃인 두 나라에 있어서 지역의 평화적환경과 안정이 얼마나 소중하며 그것을 쟁취하고 수호해나가는것이 얼마나 값비싼것인가를 똑똑히 새기고있다고 언급하시였다.” 

 

“피와 생명을 바쳐가며 긴밀히 지지협조해온 조선인민과 중국인민” 중에 바로 리민과 천레이 같은 항일연군 출신들이 들어있다. 

리민의 서거로 조선족 여성항일투사는 1917년생인 리재덕(李在德)이 남았는데 병원에서 고생한다고 알려졌다. 조선에서는 황순희 투사가 아직 생존한다. 1세대들은 거의 다 사라져가지만 2세대, 3세대들이 친선을 이어나가는 모습이다. 조선중앙통신이 명절 때마다 발표하난 중국 항일연고자 가족들의 소식이 그걸 보여주고 기사화되지 않았으나 입과 귀를 통해 퍼지는 소식들도 친선의 면면함을 말해준다. 

중국, 조선, 일본의 존재와 다른 체제로 하여 항일투사들의 전투성과를 폄하하는 움직임은 오랜 세월 지속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리민이 일본 놈을 얼마나 죽여 보았느냐고 입을 삐죽거리는 사람을 필자가 직접 본 적도 있다. 그런 친일파나 준친일파들로서는 리민의 타계가 환호할 만한 희소식이겠다. 허나 교과서에 들어간 “14년 항전”을 떠올리면 한숨이 나올 테고. 

 

일제가 세계 5대 강국의 하나로 자부하던 시절,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항전에 뛰어든 리민 같은 사람들은 굉장한 정신적 재부를 창조했고 그 영향력은 오래오래 지속될 것이다. 친일파들을 미화하는 세력들이 버젓이 존재하는 한국에서는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잖으리라 생각된다. 

중국에서는 지금 리민과 전우들의 업적을 “취안치(传奇전기, 전설, 레전드)”라는 말로만이 표현할 수 있다고 평한다. 

그 말을 빌어쓰면 항일투쟁을 뿌리로 하는 조선은 전설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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