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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일침 531] 문재인 휴가독서 목록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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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8-04

문재인 대통령이 일주일간 여름휴가를 8월 3일에 마쳤다. 휴가 기간에 기무사 개혁안을 결정해 놀지만은 않았으니, 정치인들의 휴가는 진짜 휴가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 언론들은 대통령이 휴가기간 무슨 책들을 봤느냐에 신경 쓰고 청와대도 열심히 홍보한다. 이번 휴가에 문 대통령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김성동의 장편소설 <국수>, 진천규 기자의 방북 취재기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를 봤단다. 언론사들의 입장에 따라 어느 책을 부각하여 보도하는 경향이 심한데, 세 권 책이 각기 “광주·민중·북한”을 다뤘다고 평가된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소년이 온다> 외의 두 권은 모두 신간이라 판매에 얼마만한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개변한다면 한국 출판사에 흥미로운 기록을 남기겠다만, 19세기 말 예술가들을 그린 전 6권 장편소설의 부피에 질리거나 북이라면 목부터 비틀어 꽂는 사람들이 꽤나 많으니까 두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기는 어렵겠다. 

 

속독에 능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국수>를 짧은 휴가기간에 다 읽기 어려우므로 그 책을 목록에 끼운 게 약간 이상한데, 혹시 문 대통령이 저자와 만나 책이야기를 죽 한다면 독서결과를 믿어줄 수 있다. 

 

세 책 가운데서 읽기가 제일 쉬운 건 방북 취재기라고 보인다. 그 책은 저자가 2017년 10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평양, 원산, 마식령스키장, 묘향산, 남포, 서해갑문 등을 취재하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적었고 사진을 많이 넣었다니 책장이 술술 넘어가기 마련이다. 2000년 6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손을 잡고 높이 쳐든 사진을 찍어서 유명한 진천규 기자는 방송출연, 강연 및 집필활동을 통해 북의 모습을 전하는 활동을 하는 한편 ‘통일TV’를 준비하고 있다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통일TV’에 나가서 대담이라도 한다면 엄청난 홍보효과가 나오지 않을까? 북과의 인연을 활용해 ‘통일TV’가 북에 가서 프로를 찍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담한다면 기성 TV 방송들이 울음을 터뜨리겠다. 상상만 해도 재미난다.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는 아직 보지 못했다. 진 기자의 경력과 발언들에 비춰보면 괜찮은 책이라고 짐작되는데, 얻어 볼 충동은 강하지 않다. 근년에 “북한 관련 서적”들을 많이 보면서 식상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명의로 나온 책들은 의도적인 선전이나 왜곡 냄새가 진하고, 외부 연구자들이 펴낸 저서는 영어로 옮겨진 제한된 자료와 확인불가능한 전언들에 의거해 논리를 전개했기에 책 두께에 비해 너무 가벼우며, 일시적인 방문자들이 내놓은 책들은 예비지식과 안목의 부족과 상식을 잘못 안 오류들이 너무 많았다. 

 

요란한 선전에 혹해 잔뜩 기대를 품었다가 읽어본 시간이 아까웠던 체험을 하도 여러 번 했기에 이제는 북한 관련 서적 기피 심리까지 생겨났다. 범위를 좀 넓히면 한국 서적 기피 심리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한국 책들은 인쇄와 장정 품질에 비해 내용이 빈약한 경우가 너무 많다. 특히 역사를 논하는 책들이 그러하다. 아마추어 학자들의 오류는 이해해주더라도 전문가들마저 이해하기 어려운 오류를 제조한다. 

 

근자에 책은 아니지만 항일역사를 다룬 글을 인터넷에서 보다가 고개를 비틀었다. 의열단의 창립 멤버였던 윤세주(석정) 열사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썼기 때문이다. 

 

“1942년 5월 28일 새벽, 윤세주와 의용대원 진광화는 일본군과 대치하던 중 총에 맞아 숨졌다. 

대원 몇 명이 더 희생되었다. 김학철 대원은 부상을 당하고 일본군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일제패망 후 석방되었다.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최책의 회고록을 통해 알아본다. 그는 해방 후 중국 연변 조선족자치주 초대 부족장을 지냈다.” 

 

짧은 대목에 오타와 오류가 여러 군데다. 인물 이름 “최책”은 최채(崔采)여야 맞다. “초대  부족장”은 앞의 “중국 연변 조선족자치주”에 비춰 봐도 알 수 있다시피 “부주장”이 맞다. 엄격히 따진다면 1952년 중국의 최대 조선족자치구역이 확정될 때 명칭은 연변 조선족자치구였고 수장은 인민정부 주석이었으니 최채의 당시 직무는 연변 조선족자치구 인민정부 부주석인데, 글의 주인공이 아닌 인물을 그렇게 상세히 쓸 필요는 없더라도 이름이나 직무는 적어도 정확히 적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타는 실수로 봐주겠으나 사실 오류는 봐줄 수 있을까? “김학철 대원은 부상을 당하고 일본군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일제패망 후 석방되었다.”고 적었는데, 김학철은 1941년 12월의 호가장 전투에서 부상당해 포로로 되었으니 1942년 5월과 다섯 달 차이가 난다. 조선의용대 출신 중 아마 한국에서 제일 이름난 인물인 김학철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부상당해 잡혔느냐는 그 자신과 한국 연구자들이 쓴 책과 글들이 많아 얼마든지 확인가능한데도 기본적인 시간을 헷갈렸으니 황당하지 않은가.  

 

더욱 황당한 건 그 호가장 전투가 아래에서 나오고 사실관계도 틀린 점이다. 

 

“타이항산의 호가장 전투에서는 중국 팔로군 부총참모장 좌권(左權) 장군도 일본군의 포탄파편에 맞아 순국하였다. 이 때문인지 뒷날 중국 정부는 조선의용대 석정ㆍ진광화 등 7열사 유해를 하북성 섭현 석문향 석문촌 뒤편의 연화산 기슭에 이장하고 ‘진기로예 항일순국열사 공묘’를 조성하였다.” 

 

좌권(줘취안)은 규모가 아주 작은 호가장 전투와 전혀 관계가 없다. 일본군이 1942년에 진행한 대토벌에서 포위돌파를 지휘하다가 희생된 것이다. 

 

저자는 한때 독립기념관장을 지냈고 현대사에 대한 저서를 수십 권 내놓았으며 글도 많이 쓰는 분으로서 필자는 그분의 한국 현대사 관련 글들을 배독한 적 있다. 헌데 하도 엉뚱한 오류들을 발견하니 그분의 다른 글과 책들도 의심하게 되었다. 그처럼 거칠게 쓰는 사람이 진지하게 연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한국 언론을 많이 접한 사람일수록 한국 언론을 피하고, 한국 책을 많이 본 사람들이 한국 책을 밀어내는 현상은 의미심장하다. 출판물의 신뢰도가 낮은 것도 적폐의 하나가 아닐까? 

 

진천규 기자에 대한 좋은 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책을 보지 않기로 결심한 필자로서는 책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유익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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