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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일침 534] 정상회담, 수뇌상봉과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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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8-11

 

오래 전 나온 어느 한국소설은 특수부대를 소재로 삼았는데 전두환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서해의 한 섬에서 만난다는 내용이 있었다. 전두환이 권좌에서 물러난 지 여러 해 지나 21세기에 그 가상소설을 보면서 입맛이 썼다. 

 

한국에는 나온 가상소설 중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건 김진명 작가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다. 1999년 일본이 독도를 침공하고 포항 일대를 폭격하여 한국의 산업화 근거지를 초토화시킨다, 미국은 나 몰라라 한다, 한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북의 지도자가 남으로 와서 대통령을 만나고 북에서 핵탄을 실은 미사일이 발사된다, 일본이 발칵 뒤집힌다, 도쿄로 날아가던 미사일은 약간 방향을 돌려 무인도에 버섯구름을 일으킨다, 적수의 심장이 아니라 겨드랑이에 비수를 꽂은 거룩한 용서다... 1995년 이던가 그 책을 읽으면서 정말 그런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전율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한국 출판사의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 기록을 만든 건 미래에 대한 파격적인 상상 덕분이었겠다. 

VCD와 DVD가 인터넷에 밀려나기 전인 2004년에 제목을 보고 해적판 DVD를 사온 한국 영화가 있었다. 《재밌는 영화》였다. 후에 알고 보니 2002년 작품인데 한국 최초의 패러디 영화란다. 썩 재미있지는 않았으나 남의 김 대통령과 북의 김 위원장이 채팅을 하다가 우연히 “친구”로 되고 대화하는데 각기 서울과 평양의 지명들을 염두에 두고 말하다가 오해가 생기고 결국 상대방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되어 현실에서 만난다는 설정은 웃음을 자아냈다. 단 2000년 6월의 평양 정상회담 이후에 보다나니 김진명 소설을 볼 때와 같은 충격은 전혀 없었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견우의 아버지로 나왔던 배우가 김대중 대통령을 패러디하는 게 유달리 우스웠다. 

그 뒤 노무현 정부 말기에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전쟁을 걱정하는 상황을 보면서 속이 답답했는데,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회담으로 반도만이 아니라 국제 판세도 바뀌었다. 

 

남에서는 “정상회담”이란 표현을 선호하고 북에서는 “수뇌상봉”이란 말을 즐겨 쓴다. 8월 9일에 13일 남북 고위급 회담이 예고된 다음 남에서 제3차 정상회담이 화제로 떠오른다. 북의 계산법으로는 제5차 수뇌상봉이다. 김정일- 김대중, 김정일- 노무현의 상봉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판문점 선언에는 “문재인대통령은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고 적혔는데, 구체적인 장소에 대해서는 꼭 평양이 아니라 북이 제안하는 다른 고장일 수도 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시기는 “8말9초”설이 지난 주말에 나왔는데 가을이란 석 달이니까 그보다 앞설 수도 늦을 수도 있겠다. 

지난여름 졸업식을 항상 특별하게 하는 어느 학교에서 졸업생들이 판문점 정상회담을 모방한 장면을 만들었다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제인 대통령과 만나서 악수하고 손을 잡고 분리대를 넘어 북으로 가서 사진 찍고 다시 남으로 내려온 그 유명한 장면 말이다. 기사에 곁든 사진을 보면서 웃기는 했다만 약간 아쉬웠다. 지나간 역사를 흉내낸 데 그쳤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을 본 딸 바에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맞이하는 장면을 창조하는 게 훨씬 재미있고 실제 역사의 발전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미래에 대한 과감한 상상이 항상 필요하지만 요즘은 유달리 필요한 시기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아득해보였던 정상회담이 이제는 거의 일상적인 화제와 현실로 변했는데, 청와대 정상회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관광, 이남 회사 참관, 명소에서 셀카 찍기를 누군가 미리 상상하고 미리 연출해본다면 그야말로 재미나지 않겠는가? 옛날 사람들은 말로 예언했으나 모바일 시대에는 배우들을 동원하여 촬영한 동영상이 최적의 예언수단이다. 필자가 한국에서 산다면 기필코 청와대 정상회담 사진과 동영상을 기획, 제작, 공포하겠는데... 한국에서 살지 않는 게 아쉽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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