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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일침 557] 저유소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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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10-11

 

갓 지나간 중국 국경절 시즌에서 홍콩 영화 《무쌍》이 7. 2억 위안으로 흥행 제1위를 차지했다. 저우룬파(주윤발)과 궈푸청(곽부성) 두 대스타가 주연한 작품으로서 주제는 위조지폐인데 실제 생활에서 누군가 위조지폐를 받아서 쓰다가 잡히면 위조범을 욕할 테지만, 영화를 보고나서는 궈푸청이 주연한 위조집단 주범을 무척 동정하고 지어 부러워한다. 한편 관중들은 저우룬파의 총격전에 주목했다. 언젠가 다시는 총을 잡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저우룬파가 또다시 쌍권총을 휘두르는 장면이 나오자, 영화관의 관객들은 환호를 올렸다 한다. 어느 관중은 심지어 눈물까지 흘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어린 시절에 우러렀던 《영웅본색》의 저우룬파가 되살아난 것 같아서라나. 이제 한국에서도 상영되면 오랜 홍콩영화 팬들의 향수를 자아낼 것 같다. 

거리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 누구든 질겁해 도망치겠지만, 영화에 그런 장면이 나오면 관객들은 흥분하고 환호도 올린다. 영화는 영화니까. 

액션 영화가 만들어지면 제작비가 얼마나 많이 들고 총알을 얼마나 많이 쏘았으며 차들이 얼마나 많이 망가졌고 폭발장면이 몇 개며 화약이나 기름을 얼마나 많이 썼다는 따위 데이터들이 홍보에 활용된다. 그런 데이터들로 굉장한 볼거리를 만들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어드리려는 게 영화 제작자들의 노림수다. 

 

지난 7일 경기도 고양 저유소 화재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고 43억 원 상당 기름이 타버렸다 한다. 엔간한 영화를 제작할만한 비용이 하늘로 날아갔는데, 17시간 이어진 진화 과정에서 어느 영화인들이 가서 촬영하여 미래의 영화 소재로 삼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사진과 텔레비전으로 널리 알려진 화재 장면을 보면서 볼거리라고 흥분한 한국인은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거대한 손실과 황당한 화재에 분통을 터뜨린 사람들은 흔했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니까. 

화재원인으로 풍등이 지목됐고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 노동자가 잡혔다가 동정론이 급격히 퍼진 덕분에 풀려났는데 무료변호를 받을 전망이다. 사건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은데, 필자도 나름 의문을 갖는다. 

풍등을 중국어로는 공명등이라고 하니, 제갈공명이 만들었다는 전설 때문이다. 그 등을 날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아오고 어디서 화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보고 들은 기억이 없는 필자로서는 일단 대낮에 풍등을 날린 행위가 이해되지 않는다. 풍등은 밤하늘로 날아올라가야 볼 멋이 있지 않은가. 원칙적으로는 바람이 없을 때 날려야 한다지만, 지상에는 바람이 없더라도 공중에는 바람이 불 수 있기에, 대형 행사에서는 먼저 1개에 불을 달아 띄워보고 안전성을 확인한 다음 공명등을 날린다. 바람이 부는 대낮에 풍등을 날린 건 스리랑카인의 무식함 탓이랄까? 

만약 풍등을 날린 게 스리랑카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었다면 한국인들과 한국 언론들이 어떻게 대할까? “무개념”을 욕하고 출신지역까지 거들면서 엄벌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또 공명등을 잘 아는 조선족은 낮에 공명등을 날릴 일이 없겠다만, 만에 하나 조선족이 풍등을 날렸다면 또 어떤 대우를 받을까? 범죄율, 보이스피싱, 어느 살인사건 등등을 들추면서 반감을 드러내고 추방을 요구할 것 같다. 

만약 어느 탈북자가 풍등을 날려 화재가 일어났다면? 간첩 설에서부터 북한 세뇌식 교육의 허점 탓에 화재위험성을 몰랐으리라는 추정까지 갖은 설들이 난무하면서 스리랑카인에 못지않은 동정론이 퍼질 것 같다. 

만약 어느 예멘인이 풍등을 날려 화재가 일어났다면? 가뜩이나 난민문제로 시끄러운 판에 의도적인 방화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이슬람교와 무슬림에 대한 전면적인 혐오로 번질 수도 있겠다. 

만약 어느 일본인이 풍등을 날려 화재가 일어났다면?

만약 어느 미국인이 풍등을 날려 화재가 일어났다면?...... 

 

스리랑카가 한국과 별로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스리랑카인의 풍등 날리기가 대형 화재로 이어졌으나 매도당하지 않고 오히려 동정을 받는 것 같다. 분명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영화를 보듯이 대해도 괜찮다는 식이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인들의 인정과 법은 모두 고무줄이다. 

 

돌이켜보면 중국에서 저유소 대형화재가 일어난 건 어느덧 근 30년 전이다. 1989년 8월 12일 오전에 칭다오시(청도)의 황다오(黄岛황도)에서 저유소 특대화재폭발사고가 일어나 16일 저녁에야 진화되었는데, 천안문 6. 4사건 뒤 두달 만에 최대 뉴스로서 텔레비전에서 연일 보도했기에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19명이 죽고 100여 명이 다쳤으며 약 600톤 기름이 쟈오저우만(胶州湾교주만)에서 수백 미터 너비, 10몇 해리 길이의 오염지역을 조성했으니, 직접 경제손실은 3, 540만 위안으로서 당시 환율로는 한화 35.4억 원 정도고 물가변화요소를 고려하면 지금은 여러 배를 곱해야 된다. 조사결과 화재 직접원인은 비금속탱크 자체 결함으로 하여 땅에 친 벼락(落地雷)의 전류감응에 불꽃이 생겨나 기름, 가스에 불이 달려 폭발한 것이었다. 그 후 전국적으로 저유소 안전강화조치가 취해졌고 지금까지 큰 문제가 생겨나지 않았다. 근년에 대형화재들이 일어나긴 했으나 저유소와는 관계없다. 

이번 고양 저유소 화재가 마지막 저유소 화재로 되기를 바란다면 너무 과하겠으나, 한 30년쯤은 저유소 화재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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