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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차] 학교, 운동장,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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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11-01

 

♨ 오래 전 한국, 일본에서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현상이 심심찮게 일어난다는 보도들을 보고 웃었다. 허나 근년에는 웃지 못하게 되었다. 조선족 집거지역 농촌마을들을 돌다보면 사라진 학교들이 너무나도 많아서이다. 원인은 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일하러 가거나 시내로 이사한 것. 한때 유명하던 모교가 문을 닫았다고 울먹이는 친구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그나마 도시의 학교들은 명맥을 유지하니 다행이다. 요즘 한국 학교 운동장이 빈다고 우려하는 기사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가 학교에서 다치면 학부모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심지어 고소하기에,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운동장에 나가 뛰노는 걸 금지하는 학교들이 점점 늘어난단다. 

 

♨ 수십 년 전 필자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생간부 임무 중 하나가 쉬는 시간에 동창생들이 모두 교실에서 나가도록 독촉하는 것이었다.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어서 나가 활동하고 돌아오라고 떠밀었다. 누군가 다쳐서 상처에 “아까징끼”라고 불리던 빨간 약을 바르고 집에 돌아가면 훈장쯤으로 간주되었다. 예전 한국 학교의 정형은 모른다만, 선생이 학생을 때리는 게 당연하다고 인정되었다니까 운동에서 다친 것쯤은 일도 아니었겠다. 

 

♨ 역시 필자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중국 최대 도시였던 상하이(상해) 교육계 사람들이 조선족 집거지역에 와서 부러워한 게 학교가 운동장이었다. 학교가 크던 작던 적어도 축구장을 갖췄는데, 상하이는 인구가 많고 면적이 제한되어 농구장 하나 밖에 없는 학교들도 적잖았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들을 수용할 수 없어 학생들이 번갈아 나가서 활동하게 됐는데, 그래도 우수한 선수들이 배출되고 전국 대회에서 상하이가 항상 앞자리를 차지하니 신기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 1980년대 말 비밀 방북한 황석영 작가는 《사람이 살고 있었네》에서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의 장손이며 소설가인 홍석중에게서 들은 1948년 남북연석회의 일화를 소개했다. 김일성 장군과 홍명희가 차를 타고 시골길을 지나다가 김일성 장군이 갑자기 차를 세우고 작은 시골 인민학교의 운동장으로 걸어가니, 홍명희는 영문을 모르고 따라갔다. 비 내리는 빈 운동장 곳곳에 물이 고였는데 수업중인 교실에서는 초급학년 어린이들이 “우리나라 좋은 나라”하고 선생님을 따라 교과서를 읽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김일성 장군이 한참 서서 귀를 기울이다가 “홍 선생, 이리 와서 저 소리 좀 들어보시지요. 저들이 우리의 귀중한 미래입니다”라고 말했다. 소형 정당의 대표로서 연석회의에 참가했던 홍명희는 바로 그때 북에 눌러 앉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다.

 

♨ 북 수령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널리 알려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특히 운동장 꾸리기에 신경을 써서 만경대 혁명학원을 비롯한 학교들 운동장 개건을 직접 발기하고 내밀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을 답방하면 어디어디를 돌아보도록 하겠느냐가 계속 화제로 된다. 한나산(한라산)과 서울의 산들이 언급되는데, 학교도 괜찮은 선택지가 아닐까 싶다. 남에서는 물론 시설이 좋고 운동장에도 애들이 뛰노는 학교를 고르리라. 남북 정상이 어느 학교에서 아이들과 더불어 환하게 웃는 모습이 기대된다. 아이들이야말로 민족의 미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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