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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민족의 요구대로, 심장의 글을 쓴 이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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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11-21

 

* 지난 11월 19일 '민족통일운동가, 진보언론인 이창기 동지 추모의 밤'에서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가 낭독한 이창기 기자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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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기 기자의 생은 50년입니다.

비록 이창기 기자의 육체적 생명은 다했지만, 이창기 기자의 사회정치적 생명은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날 것입니다.

 

이창기 기자의 삶은 그 누구보다 가장 민중적인 삶이었습니다.

 

어려운 농가에서 태어난 철부지 이창기 기자는 당신의 부모님이 뼈가 부스러져도 헤어나기 힘든 우리 조국의 현실을, 대학에 들어와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 어머님, 아버님의 생활을 잘 알았기에,

조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서

치열했던 민주화 투쟁의 시기, 학생운동에 자기를 바쳤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기억하는 <바보과대표> 시집에는, 학생운동의 이야기도 담겨있지만

우리 민중들의 이야기, 어머님 아버님의 삶이 고스란히 있습니다.

이는 자주민보, 자주시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늘 투쟁의 앞장에 있는 진보운동의 원로 선생님, 어머님들에 대한 극진한 사랑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창기 기자는 진보통일운동가이면서도 민족 언론인입니다.

 

이창기 기자는 자기가 글을 써야 하는 것이 개인의 요구가 아니라, 민족이 부여한 사명임을 깨닫고 2000년대에 <자주민보>부터 민족 언론인의 길로 뛰어듭니다.

 

뜨거운 민족애, 동지애를 가슴에 품고, 학생운동의 모범을 소개하기 위해서 전국 방방곳곳을 다녔고, 통일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품고, 분단사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북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통일의 나팔수가 되었습니다.

 

이창기 기자가 쓴 글은 분단을 방패삼은 분단적폐세력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남북해외 8천만 겨레에게는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에 걸친 옥고를 치르는 고통과 <자주민보>가 폐간당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이창기 기자의 민족애, 통일에 대한 확신을 결코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자주시보>를 창간하면서, 지금까지 통일의 확신을 담은 글을 써왔습니다.

 

이창기 기자는 승리에 대한 확신,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동지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승리를 통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글 하나를 쓰더라도 자기 심장의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늘 생활에 있어서 낙천적이었으며, 동지들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늘 청년학생들의 투쟁 소식을 가장 기뻐했고, 청년학생들의 모범을 전파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왔습니다. 동지들의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했습니다.

 

자기보다 늘 동지들의 어려움을 먼저 헤아렸고, 동지들에게 더 잘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늘 생각하며 실천해왔습니다. 그래서 이창기 기자 주변에는 후배들이 넘쳐났습니다.

 

이창기 기자는 자신의 육체적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직감했을 때, “기자답게 현장에서 글을 쓰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다라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쓰고 싶던 기사도 통일’, ‘우리 민족의 승리에 대한 기사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방북취재 의사를 밝혔던 것입니다.

자신의 마지막 몸뚱어리를 남김없이 민족의 평화적 통일에 사용해달라고.

 

끝까지 민족의 요구대로 기사를 쓰고 싶었던 이창기 기자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창기 기자를,

그리고 이창기 기자의 글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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