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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선 ‘인권유린’, 밖에선 ‘인권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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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노 재미동포
기사입력 2018-12-12

 

지난 12월 3일, 집도절도 없이 길거리를 헤매던 철거민이 세상을 원망하며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 아현동 재건축구역에서 오랫동안 셋방살이를 하던 박준경씨 (37세)가 지난 9월에 쫓겨났다. 그러자 재건축구역의 어느 빈집에 노모를 모시고 몇 달을 살았다. 그러다 원수같은 용역깡패들이 또 다시 나타났다. 120명이 넘는 깡패들은 두 모자를 길거리로 내몰았다. 두 모자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해도 소용없었다. 갈 곳도,의지할 곳도, 기댈 곳도 없는 박씨는 어머니와 해어져 악착같이 살아서 홀로 남은 어머니에게 효도하려고 발버둥쳤다. 꼬박 사흘을 이 엄동설한에 살길을 찾았으나 뾰족한 묘수가 나타나질 않았다.

 

박씨를 맞아주는 곳은 한강다리 밖에 없었다. 찾아간 다리위에는 “잠깐만 참으세요!”라는 펫말 뿐이었다. 그것은 박 씨를 따뜻하게 감싸안고 삶의 길로 인도하는 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전 재산인 가방 하나와 유서를 남기고 차디찬 한강에 몸을 던졌다. 유언장은  “내일이 오는 게 두렵다”로 시작해 홀어머니에게 불효자가 먼저 가는 걸 용서해달라는 애절한 내용이다. <빈민해방실천연대>를 비롯한 빈민단체는 철거민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것을 강하게 성토하면서 “박준경의 죽음은 국가에 의한 타살”이라고 강도 높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철거민들 5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아 이런 비극이 또 벌어졌다. 이게 바로 하루 40-50명 자살로 세계 자살률 1위에 올라 ‘자살 천국’ 오명을 달고 있는 나라의 모습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 (GDP)이 3만 불에 육박하는 경제대국이라고 입만 열면  자랑이다. 가진 자들의 탐욕은 도를 넘어섰고 빈부 간 격차는 극과 극이다. 가진 자들은 ‘국정농단’에 직간접적 부역해 부를 쌓고 불룩 튀어나온 배를  두들기며 나라를 개판으로 만드는가 하면 ‘갑질’ 까지 해대고 있다.  그들의 자식들은 마약을 비롯한 온갖 퇴폐풍조에 젖어 사회 타락에 일조하고 있다. 자살 유형은 다양하나, 자살의 대부분은 생활고다. 자살은 분명 ‘인재’다. 예방이 가능할 뿐 아니라 산자가 막아야 할 몫이다. 어찌 자살을 죽은 자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손을 털 수 있단 말인가. 옆집도, 이웃도, 동네도 있다. 지역사회와 국가가 있다. 이들 모두 손 놓고 자살을 방치하는 건 결과적으로  ‘자살천국’을 만드는 데에 일조하는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건 천부의 권리이자 불변의 법칙이다. 자살을 방치하는 건 명백한 인권 유린이다.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산물이다. 자살은 자기가 못나 죽는 걸로, 혹은 숙명이나 운명으로 돌리는 풍조는 산자들의 책임 회피요  변명이다. 그런데 죽는 용기와 힘이 합쳐지면 위대한 변화를 가져오고 자살 없는 희망의 나라를 건설 할 수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이런 걸 몰라야 좋고 알아차리는 게 불편한쪽이 지역사회와 국가라는 게  더 큰 문제다. 자살 중에서 생활고 자살이 가장 잔인한 인권 유린이다. 또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양심수들의 옥살이와 선거용으로 강제 납치된 12명의 처녀들의 창살 없는 감옥살이는 세계적 관심사로 떠오른 인권 유린의 극치라 하겠다.  

 

야속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은 부지기수다. 몇 해 전, 충북 ‘증평 모녀  자살사건’을 보라. 가난을 이겨낼 힘이 없어 두 40대 엄마와 장애인 딸이 목숨을 끊고 말았다. 다세대가 사는 고층 아파트 4층에 살던 이들의 시신이 썩은 채  몇 달이나  방치되어 있었다. 옆집, 이웃, 동회에서도 까맣게 몰랐다. 죽어서도 인간 대접을 못 받고 버려진 것이다. 이렇게 잔인한 비극이 지구상 또 어디에 있을까!  4년 전, 서울 송파구 ‘세 모녀의 자살사건’은 나라 전체를 전율하게 하는 단장의 비극이었다. 장애아 자매를 가진 홀어머니가 두 장애아의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억척같이 해봤다. 그러나 끝내 극심한 가난을 이길 도리가 없었다. 결국 집단자살의 길을 택하고 말았다. 

 

옛날이야기도 아닌 4년 전 ‘세월호 참사’를 보자. 온 백성들이 살인이라고 아주 격분해 지금도 성토하질 않나. 억울하게 옥살이 하는 양심수들, 권력에 의한 강제탈북자들을 눈앞에 두고 어떻게 <인권의 날>에 인권 자랑을 할 수 있을까. 지난달, 인권 부재의 상징, 서울 정부가 ‘유엔대북인권결의안’에 참여했다. 그건 일본과 EU가 주동이 돼서 주로 탈북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북의 인권 규탄 결의안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안에서는 인권 유린을 일삼고 밖에서는 인권타령을 한다.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대들보를 보지 못하는 격”이라 하겠다. 인권 불모지에 걸터앉아 문 대통령은 <인권의 날> (12/10)에 남녘의 인권을 자화자찬 했으니 앞뒤가 맞질 않는다.

 

문 대통령이 진짜 인권 애호 지도자라는 걸 세상에 과시할 절호의 역사적 기회가 찾아들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결정적 계기다. 가장 먼저 생사람 잡는 ‘국보법’이 폐기돼야 한다. 그것은 백성들의 열화 같은 지지를 받을 것이다. 또, 김 위원장에게 주는 최대 선물이 될 것이다. 동시에 김련희 여성, 12종업원 처녀들, 그리고 형을 마친 연노한 장기수들을 앞세우고 김 위원장이 평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은 인류역사에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며 남북 두 지도자를 전 세계가 존경하고 우러러 볼 것이다. 끝으로 북녘의 “하나는 전체를, 전체는 하나를 위해”라는 구호아래 ‘상부상조’ 정신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에서 뭔가 참고할 게 없는지 좀 들여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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