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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차] 최강국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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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12-26

 

♨ 12월 21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즉문, 즉답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후에 한 미국기자는 추기질문이 허용되지 않았기에 쇼에 불과하다고 혹평했으나, 근 4시간 회견에서 66개 질문에 대답했음을 감안하면, 추가질문 불허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의 기자로서 국력이 훨씬 약한 러시아를 삐딱한 눈길로 보면서 경계하는 건 러시아의 첨단군사력과 강경한 푸틴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2000년에 푸틴이 집권하면서 러시아인들에게 내놓은 구호는 “나에게 20년을 달라, 그러면 기적 같은 러시아를 돌려주겠다”였다. 근 20년이 지난 오늘 러시아의 기적은 아직도 생겨나지 않았다. 요즘 푸틴이 내놓은 꿈은 러시아의 경제를 세계 5위로 추켜세우는 것이다. 한때 미국의 맞적수였던 소련의 주요 계승자로서는 상당히 초라한 꿈이지만, 그 꿈이 이뤄지려면 넘어야 할 벽들이 너무나도 많다. 자원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군수산업을 내놓고는 이렇다 할 첨단산업들이 없기에 경제발전은 비약하기 어렵다.

 

♨ 현재 세계 제5위 경제대국은 영국이다. 그런데 짧은 기일 내에 옛 식민지 인도에 추월당하리라는 추측이 나온다. 공업혁명의 원조국인 영국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서 철도, 발전량 등 많은 지표에서 세계 첫 자리나 앞자리를 차지했고 군사력도 절대적인 강국이었다. 러일전쟁 시기 공개적으로 혹은 슬그머니 일본을 도와 이기게 한 것도 영국이었다. 러시아함대의 복멸은 영국이 꼼수로 훼방을 놓아 그 힘을 뺀 게 상당히 중요한 원인이다. 따져보면 일본이 러시아를 이기어 반도를 통째로 삼키게 된 건 영국의 부추김과 갈라놓을 수 없다.  

 

♨ 일본은 영국과 같은 섬나라로서 메이지 유신 이후 영국을 롤모델로 삼았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러다가 직간접적인 이해충돌이 늘어나면서 원수로 되었다. 일제의 태평양 전쟁이 지금은 흔히 진주만 습격으로 상징되면서 미국과의 전쟁으로 간주되지만, 당시 구일본군의 주요 진격방향은 영국이 지배하던 남양(南洋, 동남아를 가리키던 말)이었다. 또한 구일본제국의 선전에서도 “영미귀축(英米鬼畜)”을 무찌르자고 떠들면서 영국을 미국의 앞에 놓았다. 흥미롭게도 당년에 소련도 영국을 미국의 앞에 놓았고 심지어 스탈린은 1942년, 1943년, 시월혁명 기념일 보고에서 “영소미 전투동맹”을 찬양하면서 영국을 소련의 앞에까지 놓았다. 영국이 그때 많이 약해지기는 했으나 세계적인 제국이었고, 미국은 그에 비해 주로 아메리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지역대국이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자본주의진영에서 미국이 급부상하면서 영국의 지위가 내려갔다. 6. 25 전쟁 시기 조선(북한)과 중국에서는 한동안 미영침략자들을 규탄했는데, 이는 당년의 “유엔군”을 미군이 주도하기는 했으나, 영연방 성원국들이 여럿 참가했고 영국의 입김이 제법 셌으며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이 영국군과 비교적 치열한 전투를 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도 지나지 않아 조선과 중국에서는 “미제침략자”를 거들 뿐 영국은 신경 쓰지 않았고 영국군은 전투사례에서만 거들 따름이다. 수십 년 뒤의 지금 영국은 점점 쪼그라들고 유럽동맹에서까지 탈퇴하며 경제적으로도 세계를 앞서는 무엇들을 내놓지 못한다. 

 

♨ 20세기 초반의 절대제국 영국과 20세기 중후반의 거대제국 소련의 변화를 보면 22세기 초반 사람들이 이제 미국을 어떻게 대할까 궁금하다. 혹시 그때 미국이란 나라가 존재하기는 할까? 2~3 세대 동안 미국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해오던 일부 한국인들은 상상도 하기 싫겠다만, 요즘 미국 정계와 재계의 변덕은 불길한 냄새를 갈수록 진하게 풍긴다. 광해군과 인조의 외교정책을 3~ 400년 뒤의 사람들이 평하는 말로 후대들이 지금 사는 사람들을 평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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