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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차] 해석의 차이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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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민
기사입력 2019-01-18

 

▲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중국방문 기간 마음을 써준 시진핑 총서기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서신을 쑹타오 대외연락부장에게 전하고 있다.    ©자주시보

 

♨ 캐나다인 로버트 로이드 셸렌베르크가 마약 밀매 혐의로 1월 14일 중국에서 사형판결을 받자, 캐나다 총리가 판결을 비난하고, 정부가 중국에 선처를 요구했다. 가족들이 줄곧 셀렌베르크를 조용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착한 인물로 묘사했으므로 사형언도에 불만을 가진 캐나다인들이 많았다. 그런데 CSC방송이 셸렌베르크가 캐나다에서 마약 전과가 많았고 2012년에는 감옥살이도 했음을 보도하는 바람에, 여론이 뒤집혔다. 가족들이 그려낸 이미지와 법률기록에 남은 이미지는 너무나도 다르다. 나름대로의 해석은 기록을 이기지 못한다. 

 

♨ 김정은 조선(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방문 종료 며칠 뒤에도 한국 모 언론사는 중국 중앙텔레비전이 시진핑 주석의 환대에 김정은 위원장이 감사를 표했다고 전할 때, 그 환대와 관심 부분을 '관화이(关怀)'라고 표현했는데, 관화이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보이는 관심과 배려에 감사했다는 뜻이라고 설명을 붙이고 또 중국 언론이 김정은 위원장을 슬쩍 “아랫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부 사전의 “관화이” 풀이만 보면 그럴 법도 해 보인다. 그런데 “관화이”는 지난날 캄보디아의 시하누크 친왕이 망명하여 중국을 드나들거나 거주할 때 늘 쓰던 표현이다. 나라는 크던 작던 모두 평등하다고 엄청 강조하던 시절, 시하누크나 중국인들이 “관화이”로 “아랫사람”만들기를 시도했을까? 말도 안되는 소리다. 제멋대로의 해석은 역사를 이기지 못한다.

 

♨ 중국의 국가급 텔레비전방송사는 당연히 근거를 갖고 보도하기 마련이고, 그 근거는 조선 언론이 보도한 단동(단둥)역을 떠나면서 중국 측에 넘겨주었다는 “친히 쓰신 감사서한”일 것이다. 국가들 사이의 교류에서 그런 중요한 서류는 교부 측이 미리 번역하여 제공하니, “관화이”도 조선 측이 번역한 중국어본에서 나왔을 것이다. 조선이 “감사서한”을 공개하지는 않았는데, 아마 우리글로는 “배려”라고 쓰지 않았겠나 싶다. “관화이”는 “배려”의 중국어 몇 가지 번역방식 중 하나이고 다른 표현들로는 “관신(关心 관심)”, “자오구(照顾보살핌)”, “관자오(关照돌봐줌)” 등인데, 이 마지막 “관자오”는 1980년대 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일본 영화와 드라마에 늘 나오는 “도우조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잘 부탁드립니다)”가 “칭둬둬관자오(请多多关照)”로 번역되여서이다. “배려”의 여러 가지 번역방식 중 국가간 방문에서 가장 무게가 있고 알맞은 표현은 “관화이”이다. 필자는 김정은 위원장 방문 관련 중국 기사들과 분석 그리고 댓글들을 많이 보고 들었으나, “관화이”에 대한 한국 언론식 해석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소수 한국인들의 해석은 인터넷 반향을 이기지 못한다.

 

♨ 한국 보수언론들의 한심한 왜곡을 지적한지도 여러 해 지났으나 지금도 별로 나아지지는 않았다. 일단 주장을 펴면 누가 뭐라든지 어떤 반대증거가 나오든지 절대로 꺾지 않는 게 일부 한국인들의 특질이다. 요즘 논란을 만든 지만원 박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1980년 5월 광주에 침투했다는 “광수”로 지목한 탈북자들이 고소한다는데, 법정놀음이 제법 흥미로울 것 같다. 지만원 박사가 그나마 “증거”로 사진비교결과물들을 내놓을 수 있는데 비해, 유명 탈북자들은 구술과 상식에 의존해야 되겠으니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처했는데, 혹시 무슨 확실한 반증이라도 제시한다면 구경거리로는 그야말로 대박이다. 단 반증 제시 확률이 너무 낮아 기대하기 어렵다. 

 

♨ “DNA의 아버지” 왓슨이 지속적인 인종차별 발언 때문에 그 영예로운 칭호를 박탈당했다. 흑인의 지능이 백인보다 떨어진다는 주장이 정치적으로 정확하지 않아서이다. 인종문제가 민감한 문제이기는 하다만, 인종들과 민족들의 차이는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흑인들이 육상과 농구, 권투 등에 강한 건 엄연한 사실이고 다른 스포츠는 잘하면서도 수영에서는 별로인 것도 객관적 사실이다. 이게 근육구조, 지방비율 등과 관계됨은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이다. 흑인종이 백인종이나 황인종보다 선천적으로 체능이 뛰어나서 운동을 잘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걸 인종차별로 간주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아’ 하기 다르고 ‘어’ 하기 다르다던가. 한국에는 ‘어’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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