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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11]미국에서 운운하는 2차 북미정상회담,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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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환 기자
기사입력 2019-02-05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면담 이후 미국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소식을 계속 내놓고 있다. 실제로 북미 사이에 실무 협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북한은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 과정에서도 미국이 막판까지 취소와 번복을 이어간 것을 염두에 둔다면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기정사실화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지난 1월 31일(현지시각) 스티브 비건 대북특별대표는 한 강연에서 “지난 25년의 외교기록이 보여주듯 실패는 셀 수 없을 정도”라며 기간 미국의 대북정책이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평가는 트럼프 정부 초반부터 있어왔다. 2017년 10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전임) 대통령들과 정부들이 지난 25년 동안 북한과 대화를 해왔으며, 합의를 이뤘고, 많은 돈을 지불했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왜 미국은 수십 년 동안 북한에게 패배하였을까? 여기서부터 이번 칼럼을 시작한다. 

 

북한의 국가 핵무력 완성으로 귀결된 30년 북미대결

 

북미 핵대결을 이야기한다면 25년보다는 30년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북핵 문제는 1989년에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 영변에 핵무기 제조로 이어질 수 있는 핵 재처리시설이 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미국이 북한에 핵사찰 압력을 넣었고 이것이 장장 30년 북미 핵대결의 시작이었다. 

 

처음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내세워 북한을 압박하던 미국은 1991년 들어 북한과 직접 협상을 시작했으며 9월 27일 해외 전술핵무기 폐기 선언, 10월 28일 주한미군 전술 핵무기 전면 철수 합의 등이 이어지며 12월 22일 북한이 핵사찰을 수락하였다. 이에 미국은 1992년 1월 7일 팀스피리트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발표했고 1월 22일 북미 최초의 고위급회담이 열렸다. 

 

당시 미국이 전술핵무기 철수,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을 결정한 데는 좀 더 복잡한 배경이 있었다. 1980년대 말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한 구 소련은 1991년 12월 26일 완전 해체에 이르렀다. 냉전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소련 붕괴에 성공한 미국은 다음 순서로 중국과 북한을 꼽고 내부 파악에 들어갔다. 즉, 일시적으로 북한과 접촉면이 필요해진 것이다. 

 

또한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하면서 중동 지역 정세가 요동치고 1991년 1월 17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걸프 전쟁이 발발하였다. 일단 군사력을 중동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생긴 미국은 북한과의 군사적 대결을 미뤄야 했다. 

 

그러다 1993년 1월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핵사찰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핵 재처리시설이 나타나지 않자 미국이 군사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한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특별사찰을 거부하면 전쟁도 불사한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은 1992년 중단한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면서 한 달 안에 굴복하지 않으면 영변을 폭격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자 북한은 3월 8일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12일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은 끝내 전쟁을 개시하지 못하고 북한과 협상을 해야 했다. 전쟁 시뮬레이션 결과 예상되는 미국의 피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협상 결과 미국은 북한을 핵으로 위협하지 않고 주권을 존중하며 팀스피리트 훈련도 취소하기로 하였고 북한은 NPT 잔류를 합의했다. 이후 1994년 10월 21일 북미 제네바 합의가 탄생했고 클린턴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약속을 확실히 지킨다는 담보서한까지 보냈다. 

 

이후 북미 대결도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됐다. 1998년 미국은 북한의 금창리에 지하핵시설이 있다고 주장하며 북미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려고 하였다. 이에 북한은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다단계로켓에 실어 발사해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미국은 결국 3억 달러어치의 참관료를 지불하고 문제의 ‘금창리 지하시설’을 구경하여 어이없게도 텅 빈 땅굴임을 확인하였다. 이후 미국은 2000년 12월 북미공동코뮤니케를 합의하고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약속하게 되었다. 

 

2001년 집권한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태세검토보고서를 통해 북한에 대한 핵 선제공격 정책을 공개하였다. 나아가 특사로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시인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였고 미국은 북미 제네바 합의를 폐기하였다. 이에 북한은 NPT 즉각 탈퇴로 맞섰고 이후 중국의 중재 아래 6자 회담이 열렸다. 6자 회담에서도 미국은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 즉 CVID를 주장하며 회담을 결렬시켰다. 이에 북한은 2005년 2월 10일 ‘핵보유선언’을 하였고 결국 미국은 6자 회담 9.19 공동성명에 합의하였다. 

 

6자 회담에서 패배한 부시 정부는 바로 다음날인 9월 20일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있는 북한 계좌를 동결시키는 이른바 BDA 사태를 일으켰다. 이에 북한은 이듬해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무더기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하였고 10월 9일 첫 핵실험을 강행하였다. 깜짝 놀란 부시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하겠다며 상황을 진정시키고 북미 양자회담에 나섰다. 결국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삭제하여 대북제재를 부분 철회하였다. 

 

2009년 집권한 오바마 정부는 북한에 대해 ‘선핵폐기’를 강요하며 북한 인근 해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인 ‘키리졸브’ 한미연합전쟁연습을 강행하였다. 이에 북한은 새로운 인공위성을 발사하며 미국을 압박했고 5월 25일 2차 핵시험을 실시하였다. 북한의 초강경 행보에 놀란 미국은 8월 4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전격 방북시켜 양자대화의 물꼬를 열었고 12월 8일에는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방북시켜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과 대결에서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전면 대결도, 대화도 중단하고 내부 붕괴 전략을 추진하는 ‘전략적 인내’ 정책에 들어갔다. 오바마 정부 내내 유지된 전략적 인내 기간에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전력을 다해 마침내 2017년 11월 국가 핵무력을 완성시켰다. 북한의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미국은 결국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 자리에 나가야 하였다. 

 

©이정섭 기자

 

왜 미국의 패배인가

 

30년 북미대결을 종합 정리하면 결국 미국의 패배로 결론내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비건 대표의 말처럼 미국의 대북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단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정반대의 결과가 나와 버렸다. 

 

첫째, 미국의 공식 목표였던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폐기에 실패하였다. 폐기에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원래 없던 핵폭탄, 수소폭탄,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까지 허용했으니 완벽하게 패배한 것이다. 

 

둘째, 미국의 내부 목표였던 북한 체제의 교체에 실패하였다. 미국은 북한 체제 전복을 반공개적으로 추진했다. 부시 정권 시절 국방부 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는 2011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당시에 미국이 북한 체제를 전복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고 공개하였다. 또 많은 전문가들도 미국이 북한 체제 전복 구상을 포기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는데 이는 미국 정부가 북한 체제 전복 구상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앞서 초반에 언급한 비건 대표의 발언 중에도 트럼프 정부는 북한 정권 전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그 전까지 북한 체제 전복을 추구해왔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북한 체제 전복 시도는 결국 실패하였다.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북한 체제가 더욱 튼튼해졌으니 완벽하게 패배한 셈이다. 북한은 북미대결 과정에서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며 선군정치라는 강력한 정치방식을 전면화하였으며, 김정은 체제로 이어지는 후계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였고, 강력한 국방력은 물론 자립경제노선에 따른 경제성장까지 이뤄 자체 목표인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오늘날 북한에서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은 미국의 내부 공작이 전혀 통하지 않는 수준이다. 

 

셋째, 경제제재와 같은 강력한 봉쇄정책이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북한의 비약적인 성장만 보게 되었다. 미국은 반미국가를 상대로 다양한 구실로 봉쇄정책을 펼쳐왔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경제가 붕괴하고 사회혼란에 빠져 결국 무너지고 만다. 북미 핵대결 과정에서도 미국은 사상 유례없는 대북 봉쇄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극복했으며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나아가 동북아 경제에 새로운 전망을 보여주고 세계 경제마저 선도할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미국의 자본가들조차 북한에 투자하겠다고 나설 지경이다. 

 

북미 대결 30년의 특징과 교훈

 

미국의 패배 과정에서 두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자업자득이다. 미국은 북한을 굴복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는데 결과적으로 이것들이 미국의 목을 조르는 꼴이 되었다. 미국이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대표적 사례는 금창리 사건이다. 이런 단편적인 사건뿐 아니라 북미 대결 전반에서 미국은 자기가 겨눈 칼끝이 결국 자기 목을 겨누고 있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우선 북한이 핵개발을 하게 된 계기도 미국이 만들었다. 미국이 애초에 주한미군 기지에 천여 기의 전술핵무기를 배치해 북한을 압박하지 않았다면 북한도 핵개발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주한미군은 1958년부터 핵무기를 반입하기 시작해 1960년대에는 최대 950기의 전술핵무기를 배치하였다. 이런 미국의 핵위협에 맞서 북한은 핵보유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로 되자 자유한국당을 필두로 “핵에는 핵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의 논리는 미국의 핵위협에 맞서 핵개발을 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2003년 7월 26일 인터뷰에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북핵 위기를 초래한 책임의 대부분은 부시행정부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북한 핵개발의 일등공신은 미국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다음으로 북한의 핵무기가 미국을 위협하는 것도 사실 미국이 자초한 것이다. 애초 북핵문제가 불거진 1990년대 초 북한은 자신들은 핵개발 의사가 없다며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주장했다. 2008년 미국의소리(VOA)는 「미-북 관계, 대결과 탐색의 58년」 방송에서 냉전 해체로 북한이 “한국,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게” 됐고 실제로 1988년부터 1991년까지 18차에 걸쳐 비공식 북미 참사관급 대화가 열렸으며 1992년 1월에는 “당시 북한 노동당 국제 담당 비서 김용순이 뉴욕을 방문해 미 국무부의 아놀드 캔터 정무차관과 회담을 하는데, 이것이 미-북 관계 개선을 위한 최초의 고위급 회담”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북핵 사찰에만 관심을 갖고 관계개선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아무런 정치적 관계 발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약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수교를 맺는 등 관계정상화를 했다면 설사 북한이 핵개발을 했다고 해도 미국에게 직접적인 심각한 위협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구 소련, 중국 등 미국의 경쟁국가들도 핵무기가 있지만 미국이 이 때문에 일상적인 핵전쟁 위협에 시달리지 않는 것과 같다. 결국 미국은 자신들의 대북적대정책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를 자신의 위협으로 만들어버렸다. 

 

끝으로 미국이 북한에 쓸 수 있는 카드가 남아있지 않은 상황도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대북제재와 경제봉쇄 정책을 고수하였다. 장기간 지속된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은 북한으로 하여금 ‘항복’이 아닌 ‘자력갱생’의 의지만 키웠다. 북한은 정치적으로 자주정치, 경제적으로 자립경제, 군사적으로 자주국방을 기본 국가노선으로 채택하였다. 이 결과 미국은 물론 구 소련, 중국 등 그 어떤 나라도 북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와서 미국이 북한을 회유, 압박하려고 해도 더 이상 봉쇄의 강도를 높일 수도 없고, 중국을 쳐다본들 중국도 ‘북한은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며 답답해할 뿐이다. 

 

나아가 미국이 대북 봉쇄를 강화할수록 동북아 경제에서 미국이 소외되는 역 고립 현상이 심화될 뿐이다. 대북제재 완화 혹은 해제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는 지난해 10월 북·중·러 3자 외교차관 회담 공동성명을 발표해 일방적 제재를 반대하고 대북제재 재검토를 촉구하였다. 중국, 러시아는 이미 비공식적으로 북한과 경제협력을 시작했거나 제재해제에 맞춰 대규모 경제협력을 곧바로 개시할 준비를 상당 수준으로 해놓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투자처에 목마른 미국 자본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동북아 경제에 뛰어들어 초반 장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미국 자본가 내에서도 빨리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대북투자를 열어달라고 주장하는 이들(조지 소로스, 짐 로저스 등)과 대북 압박을 지속하자는 군수자본 등의 갈등이 커지는 상황이다. 한 마디로 자신들의 대북 봉쇄정책을 지속할지 중단할지 골치 아픈 상태인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북한이 강경한 태도로 미국을 때릴 때마다 미국은 북한의 구상대로 끌려왔다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대화 혹은 대결 둘 중 하나로 접촉해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한 번도 스스로 대화에 나선 적은 없었다. 미국은 오로지 북한과 대결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북한이 핵시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압박을 가하면 미국이 결국 대화의 자리에 나오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북핵대결의 30년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도 북한의 군사적 우세가 확인되면 미국이 정전협상장에 돌아왔고, 푸에블로호 사건, 판문점 도끼사건 등 북미 사이의 충돌에서도 북한의 초강경 대응이 나오면 그제야 미국은 협상을 시작하였다. 

 

이런 역사의 교훈을 북한 입장에서 해석해보면 ‘미국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고 정리할 수 있다.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 역시 북한의 국가 핵무력 완성이 이끌어낸 대화의 자리였다. 결국 미국이 대화를 거부하고 대결을 추구할 때마다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군사 행동을 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이 언제까지 똑같은 수위의 대응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와서 미국이 또 대화를 거부한다면 북한이 보여줄 ‘미국 때리기’는 단순한 군사력 시위를 넘어서 실전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중국 모델, 리비아 모델, 그리고...

 

지난 30년의 북미 핵대결 결과 지금 국면은 질적으로 다른 상황이 되었다. 바로 북한이 국가 핵무력을 완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길을 갈 수 있는가. 크게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중국 모델이다. 미국이 구 소련이나 중국을 상대하던 길이다. 미국은 구 소련과 정상적인 국교 관계를 맺고 부분적인 핵군축을 통해 서로의 핵무기가 상대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였다. 중국과는 대만에 주둔한 미군을 철수하고 대만과의 군사동맹을 파기하는 조건으로 국교를 수립하였고 중국은 선제핵공격을 하지 않고 핵공격을 당하는 경우에만 핵보복을 한다는 제한적 억제전략을 채택, 핵무기 생산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과 미국은 직접적인 핵전쟁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이처럼 미국도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하고 교류협력을 추진하면서 정치적 긴장을 완화하고 군사적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이를테면 북한은 핵무기를 동결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를 철수하고, 핵공격 전략을 폐기하여 상호 핵위협을 제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핵전쟁의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당장의 위기, 직접적 위협은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 양국 지도자가 집무책상 위에 핵단추를 올려놓고 발사 대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양국 국민들도 핵전쟁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 편의상 이 방식을 ‘중국 모델’이라고 하자. 

 

두 번째 방식은 리비아 모델이다. 경제지원 등 비군사적 요소와 북핵폐기를 맞바꾸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리비아 모델을 북한에 적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강조하지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리비아 모델을 고려하고 있다는 발언을 종종 하였다. 하지만 북한은 리비아가 미국의 경제지원만 믿고 핵프로그램을 폐기했다가 결국 약속한 경제지원도 못 받고 내전 끝에 붕괴한 것을 지켜보았다. 당연히 리비아 모델을 그대로 쓸 수 없다. 

 

북한은 미국이 북핵폐기를 요구하면 미국의 핵도 폐기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동시 핵폐기, 나아가 전 세계 비핵화다. 북한은 핵대결 초기에도 자신들의 핵시설 사찰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주한미군도 전술핵무기를 제대로 철수했는지 사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미가 상호 핵폐기를 하려면 미국이 주장하던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를 해야 할 것이다. 편의상 이 방식을 ‘리비아 모델’이라고 하자. 

 

리비아 모델과 중국 모델의 차이는 미국이 북한에게 핵폐기를 요구할지, 핵동결을 요구할지의 차이다. 무엇을 요구하느냐에 따라 미국이 치러야 할 대가도 달라진다. 과연 미국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겠는지 스스로 잘 판단해야 한다. 

 

세 번째 방식은 핵전쟁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흥미로운 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가정에 갑자기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 영토로 날아오고 있다는 경고 방송이 나온 것이다. 집에 있던 부부는 끔찍한 공포를 경험했는데 처음에는 어디서 방송이 나오는지조차 알지 못했다가 나중에야 집안에 설치한 보안 카메라(CCTV)에서 나오는 방송임을 알았다고 한다. 다행히 경고 방송은 오보였고 카메라 제조업체인 네스트(Nest)는 “해커들이 네스트 카메라를 사용해 가짜 핵미사일 경고를 전파”한다며 자사 카메라 사용자들에게 인증 절차를 강화하라는 긴급 경고를 발송했다. 

 

이런 사건은 단순 오작동이나 해커의 장난일수도 있지만 정보기관의 내부 시험이나 홍보용일 수도 있다. 즉, 핵전쟁이 발발했을 때 국민과 사회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대비태세를 시험했거나, 핵전쟁 불사를 주장하는 강경파들을 반박하는 여론전일 수 있다. 

 

아무튼 이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미국 국민들은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만약 북한의 핵미사일이 진짜로 미국 본토로 날아간다면 미국 사회에 대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미국은 결코 전쟁을 선택할 수 없다. 

 

미국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한다고 강조하는 배경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중국 모델’을 합의하고서 약속을 어기고 ‘리비아 모델’을 시도하다가 북한에게 ‘전쟁의 길’에 대한 경고를 받은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경고한 것은 전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나는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올해 북남관계가 대전환을 맞은 것처럼 쌍방의 노력에 의하여 앞으로 좋은 결과가 꼭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라고 한 표현도 눈여겨 봐야한다. ‘믿고 싶다’는 표현은 ‘지금은 믿지 않는다’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에 대한 분노, 그러나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는 인내, 그러나 그 이상은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응축되어 있다. 미국은 ‘리비아 모델’ 시도를 포기하고 빨리 ‘중국 모델’로 복귀해야 할 것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면

 

1993년 북한의 준전시상태 선포와 NPT 탈퇴가 미국을 협상장에 불러내 북미 제네바 합의로 이어졌다. 2005년 북한의 핵보유 선언이 미국을 협상장에 앉혀 6자 회담 9.19 공동성명으로 이어졌다. 2017년 북한의 국가 핵무력 완성 선포가 미국을 대화의 자리로 불러내 1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미국이 홍보하는 것처럼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이는 북한 신년사의 ‘새로운 길’ 경고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북미 핵대결 30년의 역사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으니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의도가 관철될 것으로 보인다.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는 정치 관계의 정상화, 군사적 긴장 완화, 경제협조, 사회문화교류협력 등을 논의해 양국이 정상적인 국가관계로 나아가는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정치 관계의 정상화에서는 북미 양국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국교를 수립하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할 수 있다. 이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종전선언 의제를 언급했다. 사회문화교류협력에서는 예술인, 체육인 교류 등을 논의할 수 있다. 

 

경제협조와 관련해서 미국은 경제지원을 계속 언급하고 있는데 전형적인 자본주의식 협상전략일 뿐이다. 미국은 중국, 러시아가 동북아 경제권을 선점하기 전에 자신이 들어가고자 하지만 후발주자로 들어가면 주도권을 쥘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은 아쉬울 것 없다, 북한이 경제지원을 원해서 들어간다’는 입장을 취하고 싶은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협상의 기본은 ‘갑’의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신은 아쉬울 것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흔한 말로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영업하는 사람들이 자기 경제형편에 맞지 않게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국이 동북아 경제권에 편입하고 싶다면 이런 자본주의 근성을 버려야 할 것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이야기하는 미국은 지금 고민이 많을 것이다. 2차 회담 성사를 위해서는 ‘리비아 모델’을 버리고 ‘중국 모델’로 복귀해야 하지만 그럴 경우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 정부의 25년 북미대결이 실패했다고 비판했지만 자신도 북미대결에서 패배했다는 비난을 듣게 될 것이다. 

 

또한 이대로 가면 남북은 자주통일로 나아가게 된다. 주한미군 철수도 불가피하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치명타가 된다. 동북아 전략의 파산은 인도-태평양 구상, 나아가 세계 패권 전략에도 타격이 된다. 이는 구 소련이나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타격이다. 똑같은 중국 모델을 적용했어도 중국에 대해 미국은 대만을 포기하는 대신 중국-소련 갈등을 키워 소련을 고립시키는 데 활용할 수 있었다. 또 중국에 자본주의 바람을 불러 넣을 수 있었다. 실보다 득이 훨씬 컸다. 

 

하지만 북한에는 통하지 않는다. 미국은 원래 북한에도 중국 모델을 적용해 북한-중국의 갈등을 키워 중국 포위망에 북한을 인입하려 하였지만 북중정상회담 등으로 북중관계가 오히려 최고조로 상승해버렸다. 북한에 자본주의 바람을 넣는 것도 북한의 자주노선, 자립경제 노선으로 인해 불가능하다. 이대로 가면 남북통일로 한반도에 강력한 자주국가가 출현하며 동북아와 세계를 주도하는 새로운 강성국가가 등장해 세계 질서가 변화할 것이다. 미국은 상상할 수 없는 미증유의 충격을 느낄 수밖에 없다. 

 

2차 북미정상회담 성사까지의 과정이 말만 많고 순조롭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도 미국이 막판에 취소를 했다 번복했다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추상적인 합의만 하고서 북핵폐기를 밀어붙여볼 구상이었을 것이다. 즉, 중국 모델을 제시해 북한을 안심시키고 리비아 모델을 추진해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상은 북한의 강경하고 원칙적인 대응으로 인해 시작도 하지 못했다. 이제는 미국의 구체적인 실천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미뤄왔던 약속들을 지켜야 한다. 

 

미국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당장에라도 성사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앞으로도 얼마든지 휘청할 수 있다. 만약 정상회담을 한다면 실질적인 진전이 부분적으로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암초는 곳곳에 남아 있다. 미국은 2차 정상회담의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또 딴소리를 할 수도 있다. 그만큼 미국은 구석에 몰렸고 고민이 많다. 앞으로 이 문제가 어떻게 풀려나갈지 지켜보자. 

 

※이 글은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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