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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늘 개척하고자 했던 선배, 이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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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03-04

 

본지 이창기 기자의 대학 후배인 최진환 씨가 <이창기 추모집>을 읽고서 이창기 기자에 대한 글을 부인에게 보내왔다.

 

이창기 기자의 부인 동의아래 글을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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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18년 11월 18일) 이창기 선배가 운명을 달리 하였다. 나와 2주 전 쯤 통화하면서 잘 치료받고 계시냐,  안부 묻고, 나는 요즘 대학원 공부하고 있다고 하니 좋아하셨고, 꼭 생명이 있을 때 북한에 가보고 싶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를 미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전화를 맺었다. 그리고 오늘 소식을 들었다. 

 

창기형과는 두 번의 진한 만남이 있었다. 하나는 1989년 11월 총학생회 선거 문선대로서 창기형을 만난 일이다. 그 때 ‘깃발을 들자 투쟁의 깃발~~’로 시작하는 투쟁가에 안무를 같이 짜고 후보자가 연설하기 직전에 나와서 공연하는 한 팀이었다. 함께 아이디어를 모아서 안무를 짤 때 창기형은 일 년 후배인 나의 의견을 많이 존중해주었고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작품이 나왔다. 그리고 후보자가 선거에서 승리해 기쁨이 배가되었다. 늘 따뜻한 말투와 진심어린 모습이 있었고, 긍정과 패기로 가득한 모습에 감동 받았던 기억이다. 그리고 얼마 후 어느 서총련 집회에 당선시킨 총학생회장이 등장할 때 그 노래가 나오니 무대 앞으로 혼자 나가서 그 안무를 신명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쑥스러워서 나가지 못했다. 그만큼 흥과 열정이 남달랐다.

 

또 하나는 군대에서 만남이다. 1993년2월2일 논산 23연대로 입대했다. 논산 연대는 달랐지만 서로 지나가며 이름을 부르고 신기하게 서로를 마주했다. 따뜻하게 손잡아주면서 아프지 말고 생활 잘 하자고 격려하던 선배. 그리고는 소식이 없다가 한 달 뒤 다시 특전사 공수교육훈련소에서 만났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특전사 공수교육대이다. 나보다 한 기수 앞이었다. 나는 어깨부상으로 의무대에서 일주일을 쉬었다. 그리고 훈련장에서 만난 선배는 언제나 씩씩했다. 공수교육은 아침부터 뛰기 시작해서 저녁식사 하러 뛰어갔다 오는 것 까지가 훈련이었다. 종일 뛰거나 구른 기억밖에 없다. 하체를 단련해서 착지할 때 부상을 최대한 줄이고자하는 처방 같았다. 

 

하루는 모두 힘들어 하고 있을 때, 조교가 지금부터 pt체조의 순서를 모두 외우면 30분간 전체 휴식을 주겠다. 외울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라 했다. 다들 지쳐서 별 의욕이 없었고 그걸 어떻게 외워하며 포기하는 분위기였는데, 이창기 선배가 시간을 5분만 주면 외워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16개정도 동작과 명칭을 대는 것이었다. 창기선배는 같은 훈련생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기억들을 하나씩 훈련생들에게 물어보고 자신의 뇌에 저장해갔다. 급기야 모든 동작을 완벽히 다 외우고 나서 모든 동장을 완벽히 하고 나니 조교는 대단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기분 좋게 휴식을 주었다. 모든 훈련생들이 꿀맛 같은 30분 휴식을 취했었다. 

 

그리고 훈련이 끝나갈 즈음 그 조교가 “내가 어제 밤에 어떤 훈련생으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았는데 너무 감동적이어서 여러분 앞에서 읽어주겠다”는 것이다. 그 조교는 내가 보기에도 성실했고 인간적인 면이 있어 좋았다. 그 조교가 읽은 편지내용은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이제 훈련이 며칠 있으면 끝나가는 군요. 나는 지금 취침점호 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렌턴빛에 의지해 글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그 간 조교의 모습을 보며 한국의 남아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 일인지. 그리고 조교님이 했던 말 중 “이 공수훈련을 받는 사람보다 똑 같은 일을 반복시키는 사람이 훨씬 지긋지긋하다는 것 아나?” 라는 말속에 조교님의 삶의 피로와 청춘의 고뇌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교의 마음을 헤아리는 명문장들이 있었는데 기억의 한계) 하지만 우리에게는 조국이 있고 좋은 날이 꼭 오리라는 믿습니다. 힘내십시오. 그리고 건강하십시오. 어느 훈련생이 올림’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그 조교는 그 편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간직하겠다고 했고, 쓴 분은 나중에라도 꼭 찾아와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 표현들을 보면 나는 단 번에 창기형이 썼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물어봤다. 창기형은 눈웃음만 보냈다.

 

25년이 지난 지금 이것을 기억하고 있다니. 내겐 강렬했던 기억이다. 그만큼 이창기 선배는 어느 현장에 있던지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했으며 그들과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자하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런 선배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최진환(고려대학교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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