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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침이 있었으나, 다시 회복된 북러 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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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04-24

 

▲ 24일 새벽,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로 출발했다. 황송나온 당과 간부 그리고 주민들에게 인사하는 김정은 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24일 새벽, 러시아로 북러 정상회담을 향해 출발했으며, 24일 러시아에 도착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러시아 하산 역 인근 김일성의 집으로 불리는 목조 가옥을 방문했다. 1986년 김일성 주석의 소련 방문을 앞두고 세워진 건물이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25,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연다.

 

2011년 이후 근 8년 만에 열리는 북러 정상회담으로, 현 한반도 정세가 교착된 속에서 북러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논의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19년은 김일성 주석이 19493월 첫 소련방문, 그리고 북러 경제적 및 문화적 협조에 관현 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북러 양국은 연초부터 활발한 교류를 진행해왔다.

 

23,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 외교담당 보좌관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의제는 양국 관계의 다방면적인 내용이지만 핵심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정치적, 외교적 해법에 집중될 것이라고 밝혔다.

 

8년 만에 열리는 북러 정상회담에 앞서, 북러 관계 역사를 살펴보자.

 

▲ 1949년 김일성 주석이 소련 모스크바에서 연설하는 장면     

 

김일성 주석 시기, 소련의 변화로 부침을 겪은 관계

 

북러 양국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맺어졌다고 볼 수 있다.

 

소련에서 김일성 주석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때는 보천보 전투가 있었던 1937년으로 보인다. 소련의 고문서에 김일성 주석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게 이 시기다. 이후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에 집중하기 위해 일본과 충돌을 피하고자 하였고 김일성 주석이 이끄는 항일부대에게 소련 극동지역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했다. 당시 항일부대들은 새로운 정황에 맞춰 대부대 활동을 중단하고 소부대 활동으로 전환한 상태였다. 항일부대들은 소련의 제안을 받아들여 일부는 계속 소부대 활동을 하고 일부는 소련 극동지역으로 들어갔다. 소련은 남야영, 북야영 두 개 기지를 제공했는데 김일성 주석은 남야영 책임자가 되었다.

 

김일성 주석은 당시 소련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88여단에서 함께 근무한 한 러시아인은 군사업무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명석하고 근면했다고 회고했으며, 소련군 지도부도 모범적이며 뛰어난 부하 통솔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항일부대 지휘관인 주보중도 가장 훌륭한 군사 간부이며 중국 공산당의 한인 동지 중에 가장 우수하다고 소련에 소개했다. 후일 88여단이 편입된 제25군 정치사령관 레베데프 소장도 상당히 유능하고 박력 있는 지휘관처럼 보였으며 매우 쾌활한 성격이어서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19489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곧바로 1012일 소련과 국교를 맺는다.

 

김일성 주석은 19493~4월 약 1개월 동안 소련을 최초로 공식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양국은 북한 경제발전 2개년 계획 수행을 위한 소련의 경제지원을 포함해 다양한 내용을 합의했다. 기술 지원, 2억 루블(4천만 달러) 차관 공여, 전문가 파견, 아오지(경흥군)-크라스키노 간 철도 부설, -소 간 항공노선 운행, 교수·교사 파견, -소 간 제반 분야 협정 체결 등이 포함되었다.

 

1953년 흐루시쵸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했다. 북은 흐루시초프 서기장을 수정주의자, 대국주의자로 규정하고 비판했다. 당연히 북-소 관계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여기에 스탈린 격하 운동의 영향을 받은 북한 내 소련파가 중국 출신 연안파와 합세하여 김일성 주석을 반대한 19568종파사건이 북의 소련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또 소련은 자국 중심의 국제사회주의 체제를 추구했고 북에 이를 요구했으나 북이 독자노선을 내세우며 거부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다.

 

1964년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등장과 함께 북-소 관계도 복원의 전기를 맞았다. 19665월 북-소 정상회담이 열렸고, 19673월에는 북소경제기술협력협정 시행협정이 체결되었다. 1976년 장기무역협정 체결로 군사·경제 협력을 더욱 강화했다.

 

198211월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사망하고 KGB 의장 출신 안드로포프가 공산당 서기장이 되었다. 그러나 안드로포프 서기장 역시 1984년 사망하면서 체르넨코가 뒤를 이었다.

 

체르넨코 서기장은 대서방 강경노선을 추구했으며 자연스레 북과의 관계를 중시하였다. 이 시기에 북-소 관계는 스탈린 시대를 방불케 할 만큼 최상의 관계로 격상하였다.

 

19845월 김일성 주석은 23년 만에 모스크바를 방문해 3차례나 북-소 정상회담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제협력협정, 상호군사지원협정을 체결하고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기술 및 설비지원 협정 체결문제를 합의했다. 또 소련이 보유한 수출용 최신 모델인 미그-29를 제공받기로 했으며 북은 소련 함정과 항공기가 북을 통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1985년에는 강성산 내각수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하였고 원자력발전소 건설협정 및 1986~1990년 간 경제무역 협력발전 협상결과에 대한 의정서를 체결하였다.

 

그러나 북-소 관계의 황금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체르넨코 서기장이 19853월 사망하고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등장으로 북-소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 노선을 펼쳤다. 개혁개방은 사유재산 허용, 다당제와 대통령제 도입, 서방 문화 자유화 등 사실상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노선이었다. 소련의 사회주의 포기와 함께 동구권도 도미노처럼 무너졌고 북은 외교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냉전 해체와 함께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체제로 급격히 정리되었고 미국과 대립하고 있던 북은 외교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쳤다.

 

1991년 북과 소련은 통상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는데 여기서 소련은 양국 무역을 국제가격에 따라 계산하며 현물 결재가 아닌 경화 결재를 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소련이 북에 판매하던 석유 가격이 두 배로 인상됐다. 또 원자력기술고문단 철수, 미그-29 등 첨단무기 부품공급과 기술이전 중지 등 북-소 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흘러갔다.

 

북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미국에 팔리고 있으며 혼자만 팔리는 것이 아니라 소련 공산당을 팔고 있다고 비판했다.

 

199112월 소련이 해체되고 북-소 관계는 북-러시아 관계로 전환되었다. 당시 러시아 대통령은 보리스 옐친이었다.

 

옐친 시기 북-러 관계는 고르바초프시기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993년 북이 NPT를 탈퇴하고 북핵 문제가 전면에 부상하자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대북공조 체제에 동참하고 북에 파견된 러시아 핵 과학자들을 소환해버렸다. 19946월 김영삼 대통령과 한-러 정상회담을 마친 후에는 한국전쟁 직전인 1948~1949년 북-소 관계 관련 극비문서 사본을 전달했다. 북은 자신들의 동의 없이 문서를 공개한 것에 반발했다. 이 문서들은 이후 한국전쟁 남침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김일성 주석 시기 북-소련(러시아) 외교 역사를 종합해보면 소련이 사회주의 원칙과 반미 입장을 보일 때 북-러 관계가 발전했으며, 반대 모습을 보일 때 북-러 관계는 후퇴했다는 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등장 북-러 관계의 변화

 

1994년부터 북-러 관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19949월 파노프 외무차관 방북을 계기로 북-러 관계회복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10월에는 지리놉스키 자민당 당수가 방북했고 이듬해에는 러시아 의회대표단이 방북했다.

 

1996년 프리마코프 외무장관 취임 이후 북-러 관계 회복은 더욱 속도를 냈다. 고위급 인사들의 방북이 늘어났고, 6년 동안 중단된 -러 경제·과학·기술 공동위원회도 재개됐다. 1999년에는 -러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대체하는 우호·선린·협력조약을 가조인했다. 양국 관계는 공식적으로 복원되었다.

 

옐친 대통령의 뒤를 이어 등장한 푸틴 대통령은 취임 첫 해에 북을 방문했고 이 때부터 북-러 관계는 급격히 발전하게 된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푸틴 대통령     

 

푸틴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러시아를 압박하는 미국에 대항하고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푸틴 대통령은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몰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에 휘둘리지 않는 강력한 러시아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굳혔다. 이를 위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회복해야 했으며 반미 국가인 북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게 급선무였다.

 

북 역시 소련과 동구권 몰락 이후 미국의 경제봉쇄로 어려운 상황이었고 거듭된 자연재해로 나라 전체가 피폐해졌기에 대외 관계를 확대하고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러시아와 관계를 빠르게 개선해야 하였다.

 

20007월 소련, 러시아를 통틀어 처음으로 국가 정상이 북을 방문하면서 북-러 관계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양국은 군사협력 강화, 국제 패권 반대, 주권 존중,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 양국 우호협력 증진 등 11개 항이 담긴 -러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 공동선언 내용은 -러 관계 복원과 미국 중심 세계 질서 반대로 압축할 수 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국제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완전한 현대인으로 보였으며, 그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주권국가의 이해와 국방 문제 등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해박한 인물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듬해인 2001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무려 2324일의 일정으로 러시아를 방문했다. -러 정상회담을 통해 나온 -러 모스크바 선언에는 상호존중과 호혜평등의 원칙 아래 정의로운 새 세계 건설에 이바지하며, 탄도탄요격미사일(ABM)조약을 유지하고, 양국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등의 8개항이 담겨 있었다. 특히 시베리아횡단철도(TSR)-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한반도 통일문제를 조선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해결 주한미군 철수 등 중요하고 민감한 내용도 포함되었다.

 

이듬해인 20028월에도 양국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2003년 북은 6자 회담에 러시아의 참가를 요구했고 러시아는 본격적으로 한반도 문제에서 발언권을 갖게 되었다. 러시아는 6자회담은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여러 자리에서 북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심지어 러시아는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에서 동결된 북한 자금을 북에 전달하는 은행도 제공했다. BDA 사태는 미국이 북한 돈세탁 계좌가 있다면서 BDA 북한 계좌를 동결한 사건이다. -미 사이에 치열한 격돌이 펼쳐진 후 2007년에야 미국이 동결한 북 자금을 돌려주기로 하였으나 어느 은행도 이 자금을 중계하려 하지 않았다. 미국의 금융제재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때 러시아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또한 201011월 북이 연평도를 포격한 것에 대응해 12월 한국군이 포격 훈련을 추진하자 러시아는 러시아 주재 한국 대사와 미국 대사를 불러 훈련 중지를 촉구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메드베네프 러시아 대통령     ©

 

2008년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북-러 관계는 흔들림 없이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20118월에는 울란우데 외곽의 제11공수타격여단 영내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6자회담 재개문제, 북을 경유하는 한-러 가스관 연결 문제, 북한이 구소련에 진 채무 문제 등이 논의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 북-러 관계를 종합하면 고르바초프 시기 무너진 양국 관계를 급격히 회복했으며 미국의 압박과 봉쇄에 대항하기 위한 공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 김정은 위원장 시대에, -러 양국의 협조와 친선관계는 더 공고해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 시대에 북-러 양국은 끊임없이 경제, 문화협력을 강화해왔고, 군사적인 부분에서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를 해제할 것을 러시아가 강력히 요구하며, 정치적 입장도 일치를 보고 있다.

 

이번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선대 지도자들이 맺어왔던 친선과 협조관계를 시대의 요구에 발전시킬 것과 다방면적이 교류와 협력에 대해 논의를 하고, 합의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한반도 정세를 비롯한 지역 정세에서도 일치된 견해를 볼 것이다.

 

이미 두 정상은 축전을 통해서 서로의 의지를 확인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중국, 쿠바 그리고 올해의 베트남까지, 선대 지도자들이 맺었던 친선과 협조 관계를 더욱 강화 발전시킬 것을 정상들과 합의를 했다.

 

여기에 전통적인 친선관계에 있던 러시아와 더욱 더 발전된 긴밀한 관계로 나가기 위한 정상회담이 25일 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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