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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론 "시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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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란 시인
기사입력 2019-05-20

 

시는 자기만족이 아니고 소모품이 아니다.

시가 자기만족에 빠졌을 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기만과 오만에 빠지기 쉽다 겸손하지 못하는 자세를 가졌을 때는 세계를 온전하게 보기 어렵다.

시인은 시를 통하여 진실을 전달해야 하며 독자가 세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감상하며 풍부함을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시인은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 삶을 진실하게 살려는 노력자가 되어야 하며 진실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시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인간의 문제를 전면적이고 본질적이고 통일적으로 담아내어 인류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창작활동을 하므로 창작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을 소모품으로 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문화 역시 소모품으로 전락하게 만들어 시기와 질투 경쟁 파괴 분열 소비의 대상자로 인간의 품위를 추락시켜 간단히 인간을 먹어치우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썩은 문화다. 이 썩은 자본주의 문화로 인간을 나약한 존재로 만들며 지배하려고 한다. 고상한 인간성을 옹호하려는 시인은 온갖 비인간적이고 파괴적인 현상들을 깊이 꿰뚫어 보며 본질을 밝혀내는 투쟁자가 되어야 한다.

 

시인은 순수하고 순결한 사람이어야 한다.

불순함에 지배당하고 탐욕에 찌든 인간상과 싸우지 않고 어떻게 참된 시를 건져 올리겠는가. 시인은 혼탁한 사회에 맑은 공기를 뿜어내는 나무와 숲이 되어야 하며 힘없고 목마르고 쓰러진 이들을 위해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리는 펌프질을 열심히 하는 땀내 나는 소박한 노동의 주체여야 한다.

항상 순수한 양심에 따라 깊은 사색을 하여 본질의 알맹이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여 사회의 변화발전에 기여하는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 알량한 시인이라는 명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인은 내용적으로 위대한 존재여야 하지 않겠는가.

 

시인은 누구보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싸늘하게 식은 가슴으로 무엇을 품을 수 있겠는가. 냉소적인 잣대로는 세상을 진취적으로 바꿀 수 없다 냉소적 패배감으로 어떻게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겠는가. 시인은 세상에 끼인 더러운 때를 벗겨내기 위해 싸워야 하며 인간의 참된 본성과 어긋나는 것들에 대해 지칠 줄 모르고 싸우며 희망을 건져 올려 민중과 함께 해야 한다 민중이 하늘이라는 낮은 자세로 민중과 함께 뒹굴며 예술적 창작을 하는데 열정적이어야 한다. 

 

시인은 진보적인 철학과 사상으로 단련되어야 한다.

진보적인 철학과 사상은 작품의 질을 높이는데 적극적으로 기여 한다.

자본주의 발전의 부산물의 문화라 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류의 문학은 인간 본질의 내용을 손상 시킨다. 미학이라는 핑계로 형식에 치우쳐 분열과 해체의 조작으로 내용의 통일적인 전형을 파괴하며 비본질적인 접근의 형상으로 본질을 희석시키고 왜곡시킨다. 마치 작은 화분에 갇혀 이리 비틀리고 저리 비틀리어 분재 당한 유전자 조작으로 자람이 억제 당한 기형적인 나무 같다고나 할까.

예술은 자연스러움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시인은 무엇을 보고 통찰하며 무엇을 창작하여 생산적인 창작의 지평을 넓히겠는가.

시인은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실천해 가는 사회적 생명체가 되어야 한다. 파괴적이고 분열적인 피폐화된 자본주의 모순을 뛰어넘어야 한다. 사실적 진보적인 문학은 역사발전시대의 필연적 요구이다.

 

시인은 어머니다운 품성으로 품이 넓어야 하며 항상 사랑이 넘쳐야 한다.

사랑은 인류 역사에서 영원히 갈 인간의 힘이다.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눈 뜨게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힘이다. 생명사랑, 인민사랑, 민족사랑은 인간의 바탕을 튼튼히 만든다. 사리사욕과 시기와 질투 탐욕에 눈이 먼 것들은 사랑과 인연이 없는 것들이다. 부당한 인간을 거부하고 참사랑의 세상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랑을 나눌 때 못된 세상을 뒤엎을 수 있는 혁명의 힘이 나온다. 

 

진실한 시를 창작하는 시인은 조직자이며 실천가이다.

진실한 시를 쓰기 위해 어떻게 살아내야 하며 삶의 치열한 현장을 찾아다니며 혹은 맞부딪치며 진실을 위해 몸 바치고 사색을 깊이하며 몸에 배어야 참된 시가 나오지 않을까. 머리를 굴려 잔재주만 부려 나오는 시가 만인의 심금을 울릴 수 있을까 까닥하면 만인을 눈멀게 하는 장난질이 될 수 있다. 시인은 항상 고민해야 한다. 머리로만 쓰는 시가 아니라 몸으로 쓰는 실천의 시는 사람을 역사로 이끄는 조직자가 되는 것이다.

김남주 시인이 그 좋은 예다. 

 

나의 시의 바탕이 이루어진 때는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박정희의 5.16이 나고 홧병을 3년 앓다가 돌아가셨다. 건축일을 하셨는데 같이 일하는 일꾼들을 여러 명 둔 책임자였다. 그때 쌀이 무척 귀했는데 외갓집에서 쌀을 한 푸대 보내왔다. 아버지는 일꾼들에게 쌀을 몽땅 나눠주었다. 우리 집에도 쌀이 없었는데 어머니가 아버지 보고 한 끼 꺼리라도 남겨두지 그랬느냐고 하니까 아버지는 어머니 보고 줄려면 몽땅 줘야 한다고 그래야 주는 거라고 했다. 나는 옆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귀담아들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말을 떠올려 후에 ‘반성문’이라는 시를 썼다.

 

역시 초등학교 때였다. 학교에서는 반공글짓기 숙제를 내주고는 했다.

나는 학교 숙제를 빠뜨리지 않는 모범생이었는데 반공글짓기만은 쓰고 싶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북도 같은 민족인데 쳐부수자 때려잡자 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들어 반공글짓기 숙제를 한 번도 해간 적이 없었다.

4학년 담임선생님은 조금 고약하신 분이었는데 나보고 문예반이면서 글짓기상은 그렇게 받으면서 반공글짓기 숙제를 안 해 온다고 뭐라 하셨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통일신라시대를 배울 때였다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였다. “외세인 당나라를 끌어들여 우리 땅 다 내주고 한 통일이 무슨 통일 입니까. 삼국통일신라시대라는 제목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질문을 했더니 담임선생님은 “그래 너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집에서 10분정도 걸리는 ‘회평’이라는 바닷가에 자주 가서 바다를 한없이 쳐다보다가 파도에 씻긴 돌멩이를 주워 쓰다듬다가 볼에도 대어보고 조개껍데기를 주워 무늬가 너무 고와서 찬찬히 들여다보고는 하였다.

모래를 만져보고 모래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가 손가락으로 새어나가게 하면서 모래의 감촉을 즐겼다.

초등학교 때 점심시간에 항상 운동장 밖을 나와 개울을 건너 논둑길을 지나 시냇물이 흐르는 나무 밑에서 친구들이랑 도시락을 먹고 도시락을 냇물에 씻고 이야기하며 놀다가 학교로 돌아오고는 했다 동심이 자연과 함께하며 지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6학년 때부터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학교 가기 전에 가는 데만 30분 정도 걸리는 ‘승지골’이라는 데까지 산책을 하고 왔다 산을 끼고 냇가를 따라 걸으며 흐르는 시냇물 버들강아지 풀꽃들과 풀들을 쓰다듬어 주는 일들이 너무 좋았다. 승지골에 가면 소나무 숲이 있는데 나는 소나무를 안아주고 얼굴을 갖다 대고 내음을 맡기도 하고 뽀뽀도 해주었다 나의 생명 사랑이 싹 튼 시기였다.

 

나는 반미시를 많이 쓰는데 내 시를 보다가 후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는 말이 덩치도 크고 힘이 센 사람 같았는데 만나고 보니 너무 작고 여리게 생긴 사람이 어떻게 그런 시를 쓰냐고 한다. 그렇다 나는 눈물이 많고 조그만 일에도 아파하고 등치도 작고 여리다. 힘없고 작은 것들을 아파하고 사랑하다 보니까 힘없고 작은 것들을 내리누르고 억압하고 괴롭히는 것들에 대한 미움들이 그만큼 큰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때 까뮈의 ‘정의의 사람들’이라는 책을 보면서 ‘정의’라는 말이 너무 좋아서 그 책을 몇 번이나 읽었다. 나는 정의가 좋았다. 그래서 부정의한 것들과 싸운다. 가장 부정의한 우두머리 미제는 나의 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노동시를 쓰는데 앞으로도 계속 연구하고 쓸 것이다.

내가 노동운동을 할 때 10년 넘게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많이 배웠다. 노동자계급의 위대성은 혁명성 창조성 조직성 완강성 등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의 원천지라고 본다. 자본주의 지배 속에서 노동계급에도 침투한 분열 공작의 여파가 있기는 하지만 다른 계급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우리는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각 계급계층이 단결해야 만이 미제국주의 지배를 물리치고 자주통일을 온전히 이룩할 수 있다고 본다. 

 

 

참고

문예지 <창작21> 여름호 ‘박금란 시인 특집’에 실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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