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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당, ‘반미의 날’ 맞아 “미국은 5·18비밀자료를 전면 공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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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05-22

▲ 5월 22일 반미의 날을 맞아 민중당이 미국의 사과 및 5.18비밀자료 공개를 촉구했다. (사진 : 민중당)     © 편집국

 

522일 반미의 날을 맞아 민중당이 미국의 5.18비밀자료 공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는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의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미국이 (신군부의 군사작전을 방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미국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과를 해야 하며 진실을 규명할 수 있도록 원본상태의 모든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중당은 미국이 전두환의 5.17비상계엄전국확대를 10일전에 알았으면서도 군대투입을 반대하지 않았으며, 80522일 한미연합사 소속 20사단의 4개 연대를 폭동진압용으로 허용해달라는 신군부의 요청을 승인하였다며 미국이 5.18의 방관자가 아니라 공모자라고 규탄했다.

 

민중당은 미국이 자신들은 신군부의 권력장악 및 쿠데타 음모를 알지 못했다고 주장해온 것에 대해 거짓이라며 “518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고하는 임무를 맡았던 김용장 전 미군정보요원은 미국 군사첩보위성이 한반도를 2-3시간 간격으로 순회한다. 광주의 모든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는 상태였다라고 증언하였다고 반박했다.

 

민중당은 신군부의 배후에서 이들을 지지 지원했던 미국은 방관자가 아니라 공모자라며 광주학살 이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서 권력을 행사할 때마다 이를 지지하였고, 미국은 레이건 행정부 출범 후 첫 방미인사로 전두환을 초청함으로써 학살정권을 인정하였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광주에서도 동시에 진행됐다.

 

한편 1980522일 미국은 항공모함과 정찰기 등을 한반도에 배치할 것을 결정했다. 당시 광주시민들은 미국이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오는 것이라며 환호했지만, 실상은 전두환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1986년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522일을 반미의 날로 선포하고 투쟁을 벌였다. 반미의 날은 우리 국민들이 미국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그 실체를 똑똑히 알게 된 날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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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5.18비밀자료 공개 촉구 민중당 기자회견문>

 

"미국은 5·18비밀자료를 전면 공개하라"

 

80525일 부산에 미 항공모함 코럴시호가 입항하였다. 당시 광주시민들은 미국이 광주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왔다고 환호했지만 미국은 이 바램을 처절하게 밟아버렸다.

이후 광주학살의 진실을 찾고,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한 시민들과 학생들의 투쟁이 이어졌고, 많은 연구자와 기자들의 노력에 의해 조금씩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

 

기존에는 군작전권을 가진 미국이 신군부의 병력사용을 용인 방조해준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최근의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미국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미국은 전두환의 517비상계엄전국확대를 10일전에 알았고, 군대투입에도 반대하지 않았다. 특히 공수부대뿐만 아니라 해병대까지 승인하겠다고 하였다. 80522일에는 한미연합사 소속 20사단의 4개 연대를 폭동진압용으로 허용해달라는 신군부의 요청을 승인하였고, 경계태세를 데프콘3으로 격상해 신군부의 광주진압을 전후방에서 지원해주었다.

광주에 대한 무력진압을 525일에서 27일로 늦춘 것도 미국의 인도적 배려가 아니라 신군부 작전실패에 대비한 항공모함 코럴시호의 배치시간에 맞춘 것이다.

518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고하는 임무를 맡았던 김용장 전 미군정보요원은 미국 군사첩보위성이 한반도를 2-3시간 간격으로 순회한다. 광주의 모든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는 상태였다라고 증언하였다.

 

미국정부는 1989‘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에 거짓된 자료를 기반으로 ‘19805월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미국정부의 성명서를 제출하였다. 자신들은 신군부의 권력장악 및 쿠데타 음모를 알지 못했고, 5.17비상계엄 확대사실을 2시간 전에야 알았고, 한국 특전사의 광주파견을 미국이 승인했다는 보도는 거짓이며, 광주에 동원한 특전사나 20사단은 당시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 아래에 있지 않았으므로 광주투입을 사전에 알지 못했으며, 그들이 광주에서 행한 것에 미국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신군부의 배후에서 이들을 지지 지원했던 미국은 방관자가 아니라 공모자이다. 광주학살 이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서 권력을 행사할 때마다 이를 지지하였고, 미국은 레이건 행정부 출범 후 첫 방미인사로 전두환을 초청함으로써 학살정권을 인정하였다. 미국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진실을 규명할 수 있도록 원본상태의 모든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수많은 연구자들과 기자들이 광주학살의 진실을 밝혀내고 있지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공개된 자료마저 상당부분 삭제되어 있다. 미국은 5.18 관련 미공개 비밀자료를 즉각 공개하여 518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미국 정부는 다음의 자료를 즉각 공개하라

 

1. 이미 공개된 국무성-한국대사관 간에 오고간 전문(telegraphs)FOIA(미국정보공개법)에 의해서 CIA가 공개한 기밀문서 중에서 삭제되어 볼 수 없는 기밀사항 전부

2. 백악관 정책결정회의(Policy Review Committee), NSC(National Security Council), 백악관 상황실(Situation Room)에서 1979~80년 사이에 작성된 한국 군사안보, 외교, 광주관련 memorandum, analytic reports, 회의록 등 기밀문서

3. DIA(국방부 정보국) 문서 중 1979~1980년 사이에 작성된 한국 군사안보, 광주사태 관련 기밀문서

4. 용산 주둔 한미연합사 및 미8군과 미국 국방부에 간에 오고 간 전문 및 Daily log(1979.12.12~1980.5.30)

5. 한미연합사 주요 회의록(1979.12.12.~1980.5.30) 중에서 미국의 요구로 기밀 처리된 문서

6. 한국 주둔 미국 공군과 미국 태평양 사령부 간 오고간 전문(1980. 5월 분)

7. 광주 주둔 미군기지와 용산 주둔 미군사령부 간에 오고간 전문과 상황일지(19805)

8. 한국 주재 미국대사관 내부 회의록(1980. 5월분)

9. 미국 501정보여단 광주파견대(송정리 미군기지 소재)에서 담당자 김용장 등이 작성해서 상부(DIA)로 올린 보고서 일체(19805월 분)

10. 미국 국무부에서 작성한 내부 기안문, 메모랜덤, 분석 보고서 중 1980년 한국정세, 광주관련 부분

 

2019522

민중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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