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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차] 향년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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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민
기사입력 2019-09-27

 

♨ 프랑스 전 대통령 시라크가 9월 26일에 타계했다. 정계에서 사라진 지 오랜 사람이지만 사망 소식을 접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1995년 그가 제5공화국의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작은 드골”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독자적인 대외정책을 실시하리라는 기대를 품었다가, 1999년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에 적극 참여하는 걸 보고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7년 시라크가 퇴임한 후 집권한 올란드, 사르코치, 마크롱은 아예 기대도 하지 못할 수준이었으니 난쟁이들 속에서 장군을 뽑는다는 격으로 시라크는 근 20여 년 동안 프랑스의 마지막 대통령다운 대통령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32년 11월생으로 만 86살을 살았으니 장수도 한 셈이다. 

 

♨ 중국의 총리였던 저우언라이(周恩来주은래)는 젊은 시절 80살을 살면 “지거(及格, 급제)”라고 말했다. 이 지거란 개념이 시험에서 5점 제에서는 3점, 100점 제에서는 60점을 가리킨다. 참고로 필자의 소년 시절 100점 제를 실시할 때 60점 이하는 불합격(不及格), 60점부터 급제(及格), 75점부터 양호(良好), 85점부터 우수(優秀)였다. 실제로 1898년생인 저우언라이는 1976년에 타계하여 세는 나이로 78살을 살았기에, 그의 청년 시절 기준으로는 불합격이었으나 그가 일생 일한 시간은 남들의 몇 배 되었기에 실제로는 백 수십 살 산 것과 맞먹는다. 그리고 그의 업적과 인격을 동지들과 중국 백성들은 물론 적수들도 높이 평가하기에 실제로는 영생한다. 

 

♨ 9월 20일에 타이완(대만)에서 스밍(史明)이라는 노인이 죽었다. 103살을 살았다고 보도되었으나, 공식자료에는 1918년 11월 9일생이기에 세는 나이로 101살, 만 100살을 살았다고 보아야 한다. 본명이 스자오후이(施朝晖시조휘)인 이 사람은 일제 치하의 타이완에서 태어나 1930년대에 일본으로 가서 공부하면서 사회주의 서적을 읽었고 1940년대에 귀국해서는 중공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토지개혁 등 정책에 불만을 품고 탈당, 변절하여 타이완에 돌아갔는데 1949년 국민당 정권이 타이완으로 물러간 뒤 그 두목 장제스(蒋介石장개석)을 암살하려다가 들통 나서 지명수배를 받다가 1952년에 일본으로 망명하여 요리점을 경영하면서 타이완독립이론(?)을 정립했다. 장제스와 그 아들 장징궈(蒋经国장경국)이 선후하여 죽고 타이완 토박이 리덩후이(李登辉이등휘)가 “총통”으로 집권한 뒤인 1993년에 타이완으로 돌아간 스밍은 “타이완독립 역사가 400년”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꾸준히 활동했고, 근년에는 “총통” 차이잉원(채영문)을 강력 지지해왔으니, 타이완독립파 원로들 가운데서 거의 유일하게 차이잉원을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차이잉원을 지지하지 않으면 400년 타이완 독립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 차이잉원과 그 일파는 당연히 스밍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높이 평가하지만, 절대다수 중국인은 조소와 욕설을 퍼붓는다. 꼬락서니가 신통히도 거지 같다, 너무 늦게 죽었다 등등. 

 

▲ 스밍과 차이잉원 [사진출처-인터넷]     

 

♨ 일생에 주의 주장을 거듭 바꾼 스밍이 죽으니, 인터넷에서는 다음 차례가 리덩후이라는 말이 나왔다. 리덩후이도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다가 국민당의 백색테러가 기승을 부릴 때 전향한 인물로서 장징궈의 타이완본토박이 배양계획 덕에 중용 받다가 나중에 “총통”과 국민당의 당수까지 된 사람이다. 그런데 당수로서 국민당을 약화시키다가 드디어 해체를 초래했고 “총통” 퇴임 후에는 노골적으로 타이완독립을 주장해왔다. 1923년생으로서 22살 전에는 일본인이었다고 주장하는 그는 정신적인 일본인의 대표로 꼽힌다. 리덩후이도 빨리 죽어야 한다는 댓글들 뒤에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댓댓글들이 달렸다. 더 오래 살아서 중국의 통일을 제 눈으로 보고 실망해야 된다는 식의 풍자다. 

 

♨ 반도를 돌아보면, 북반부에는 1910년대 생의 중요한 인물이 하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5월 100돌 생일상을 보내준 조선혁명박물관 관장 황순희이다. 남에서는 휠체어에 앉아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엄지척 하는 사진으로 알려졌는데, 1919년 5월 3일에 태어나 10대에 유격대에 가입하여 김일성 장군의 수하에서 싸운 항일투사이다.

 

▲ 2015년 열린 제4차 노병대회에서 황순희 조선혁명박물관 관장이 주석단에 앉아 김정은 위원장에게 엄지를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출처-동영상 캡쳐]     

 

조선(북한)에서 생존하는 유일한 항일투사이거니와, 중국에서 마지막 항일연군 출신 여투사 이재덕이 8월 2일 세는 나이 102살을 일기로 타계한 뒤에는 중국 동북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유일한 현존 경력자이기도 하다. 황순희는 숨이 붙어 있는 한 조선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된다. 남반부에는 1910년대 생 학자나 있을 뿐 영향력은 스밍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1920년대 생 정치 인물은 지난 해 김종필 전 총리의 사망으로 사라져버렸다. 시라크와 비슷한 1930년대 초반생으로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살아있다. 이제 그들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원인으로 타계하고 어떤 평가를 받을지 두고 볼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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