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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자주민주통일 지도자 오종렬 선생 추모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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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9-12-09

▲ 9일 오후 7시,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1층에서 오종렬 의장 추모의 밤이 진행됐다. 자주 민주 통일 운동가의 거대한 산이자 웅장한 메아리, 그리고 포효하는 호랑이. 오종렬 의장을 추모하기 위해 영결식장은 수많은 사회활동가로 가득 찼다.     © 박한균 기자

  

▲ 유족 부인 김평님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차남 오창규 씨가 유가족을 대표해 발언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오종렬 의장을 추모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추모객들은 “의장님 뜻 우리가 이어가겠습니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아침은 빛나라’를 함께 부르며 고인의 뜻을 마음에 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 박한균 기자

 

▲ 한상렬 목사.     © 박한균 기자

 

▲ 추모영상.     © 박한균 기자

 

▲     © 박한균 기자

 

▲     © 박한균 기자

 

▲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의 빈소     ©김영란 기자

 

▲ 오종렬 의장 빈소에는 수많은 단체와 인사들이 보낸 조화가 가득찼다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동지 여러분, 나는 난파선과 함께 침몰하더라도 소임을 다하는 선장이 되겠습니다. 나를 딛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십시오’

 

자주 민주 통일 운동가의 거대한 산이자 웅장한 메아리, 그리고 포효하는 호랑이. 오종렬 의장을 추모하기 위해 영결식장은 수많은 사회활동가로 가득 찼다.

 

9일 오후 7시,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1층에서 ‘오종렬 선생 추모의 밤’은 김기형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고인의 영면을 비는 묵상과 고인에게 바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시작되었다.

 

생전 선생을 가까이 모셨던 강병기 5.18민족통일학교 상임운영위원장은 추도사를 통해 “12월 7일 영면하실 때 온 힘과 마음을 모은 의장님의 눈빛을 보았다. 의장님께서 눈빛으로 우리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신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의장님을 보며 값진 인생의 끝은 철저한 신념으로 투철하게 한 길을 가는 삶이라는 것을 배웠다. 나 또한 자주, 민주, 통일의 길을 가는 데 한 생을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선생의 빈소에 다녀간 조문객들의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었다.

 

선생께 바치는 편지를 손에 들고 나선 손미희 우리 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대표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 최대의 어려움을 맞아 많은 사람이 전선을 떠나갈 때 그 전선을 지키고자 나타나신 의장님을 뵈었습니다. 그때 뵌 선생님은 온 세상을 호령하던 거대한 호랑이고 세상을 향해 포효하던 엄청난 메아리이고 산이셨습니다. ‘동지 여러분,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는 배에 탈 선장은 많지만 나는 난파선과 함께 침몰하더라도 소임을 다하는 선장이 되겠습니다. 나를 딛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십시오’라고 하셨던 의장님을 따라 이렇게 많은 동지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라면서 “진정한 혁명가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신 의장님을 보며 영생을 봅니다. 평생의 동지 전광훈 의장님과 저희를 나란히 지켜봐 주십시오. 영원한 우리들의 의장님, 의장 동지 편히 가십시오”라고 고인이 되신 선생께 눈물의 편지를 바쳤다.

 

사회자는 “의장께서는 전교조와 깊은 인연이 있으셨다, 의장님은 전교조는 자신의 모태 뿌리라고 말씀하셨다. 1987년 전교조 초대 광주 집장을 역임하면서 전교조를 탄생시키셨다”면서 박미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 수석부위원장을 소개했다.

 

박미자 수석부위원장은 “선생께서는 과학 교사로 80년 5월 18일 광주항쟁 시기에 날마다 학생들을 찾기 위해 거리를 헤매며 절규하셨다. 후배 교사들을 만날 때마다 그 경험을 말씀해주셨고 우리는 그 말씀을 들으며 교육과 사회변혁 운동이 함께 가야 함을 깨달았다”면서 “‘사상은 뿌리 깊게, 표현은 낮고 얕게, 연대는 넓고 넓게, 실천은 무궁토록’ 의장님의 이 가르침은 학생과 동료 교사, 학부모님을 만날 때도 늘 마음에 새기는 지침이 되었다. 전교조 교사들은 의장님의 가르침대로 자주민주통일의 길을 여는 변혁운동가이자 겸손한 실천가로 아이들의 곁을 지키겠다”는 말로 교사로서 선생에 대한 절절한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선생의 생전 모습을 돌아보는 영상이 상영될 때는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고인을 그리워했다.

 

민중가수 이수진 씨는 영상에서 선생이 불렀던 노래 ‘섬마을 선생님’과 선생께 바치는 노래 ‘생이란 무엇인가’를 부르며 고인의 뜻을 기렸다.

 

유가족 대표로 나선 차남 오창규 씨는 “2014년 2월 간경화, 급성 신부전증 판정을 받고 나서 오히려 아버지와 가까워진 것 같다. 2014년 4월, 중병을 진단받은 후에는 새로운 과업을 시작하셨다. 병든 아버지의 지팡이를 함께 짚어가며 아버지 곁에서 통일 학교를 일구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그만 쉬셔야 하는데 일을 손에 놓지 못하셨다. 그리고 12월 7일 운명의 날, 임종 전에 아버지는 몸부림을 잠시 멈추시고 고통 속에서 숨을 몰아쉬시면서도 두 눈을 부릅뜨고 천장을 응시하셨다. 우리 가족들은 그 눈빛이 ‘민중 속으로, 민중과 함께, 자주민주통일을 염원을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라 여겼고,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잡고 새로운 에너지를 주신 것으로 생각했다. 앞으로 우리 가족도 그 뜻을 함께 이어나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사회자는 “큰 별이 지셨다. 그러나 더 큰 별로 우리를 지켜보시리라 생각한다. 평소 의장님께서 좋아하셨던 노래를 다 같이 합창하고자 한다”며 추모객들을 일으켰다.

 

추모객들은 “의장님 뜻 우리가 이어가겠습니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아침은 빛나라’를 함께 부르며 고인의 뜻을 마음에 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 자주민주통일의 지도자 오종렬 선생님은 2019년 12월 7일 밤 10시 57분, 간경화와 급성 신부전증 악화로 영면에 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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