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보류의 정치외교학

가 -가 +

이세춘
기사입력 2020-07-07

평화이음이 월간 '민족과 통일' 7월호를 발간했다. 

우리사회와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발간사] 보류의 정치외교학

 

북이 대남 군사행동에 돌입하기 직전에 계획을 ‘보류’하였다. 인민군 총참모부가 작성한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7기 5차 회의에 제출하였으나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장이 화상회의 형식으로 예비회의를 열어 “당 중앙군사위는 조성된 최근 정세를 평가하고 인민군 총참모부가 당 중앙군사위 7기 5차 회의에 제기한 대남 군사 행동 계획들을 보류”한 것이다. 

 

한편 북의 군사행동 보류에 대해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보류한다고 했는데 저는 완전히 철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한 것에 대해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담화를 내고 “도가 넘는 실언을 한데 대해 매우 경박한 처사였다는 것을 경고”하였다. 그러면서 “남조선 당국의 차후 태도와 행동 여하에 따라 북남관계 전망에 대해 점쳐볼 수 있는 이 시점”이라고 표현하여 ‘보류’는 말 그대로 ‘취소’가 아닌 ‘연기’며 문재인 정부의 태도에 따라 다시 ‘집행’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국내에서는 왜 북이 갑자기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또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향후 어떤 변화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북이 2017년에 했던 또 하나의 ‘보류’를 돌아보자. 

 

2017년 8월 9일 북의 전략군 대변인이 성명을 내고 괌 포위사격 작전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괌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출격한 장거리 전략폭격기가 한반도에서 실전연습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에게 ‘화염과 분노’를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다음날 북의 전략군사령관은 괌 포위사격의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탄도미사일 4발을 동시에 발사해 괌 주변 수역에 떨어뜨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8월 중순까지 포위사격 방안을 최종 완성하여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8월 14일 김정은 위원장은 전략군사령부를 방문해 포위사격 방안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비참한 운명의 분초를 다투는 고달픈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리석고 미련한 미국놈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하면서 계획을 보류시켰다. 그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20년 6월, 미국은 괌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전략폭격기를 영구 철수시켰다. 

 

당시 북은 왜 포위사격을 보류했을까? 여기에도 여러 해석이 있었지만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이미 포위사격을 한 효과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북이 괌 포위사격을 언급하자 온갖 전문가와 언론들이 나서서 포위사격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며 어떤 결과를 낳을지 구구절절 분석을 하였다. 직접 때리지 않아도 얼마나 아플지를 충분히 알게 해준 것이다. 그러니 북이 굳이 미사일 4발을 소비해가며 작전을 진행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자고로 싸우지 않고 싸움을 이기는 장수가 최고라고 하였다. 괌 포위사격을 둘러싼 북미 대결은 결국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누구의 승리였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오늘로 돌아와보자. 북이 대남 군사작전 계획을 보류한 것 역시 군사작전을 하지 않아도 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 아닐까? 

 

물론 지금 문재인 정부는 크게 반성하지도 않고 대북정책을 바꾼 것 같지도 않다. 북이 군사작전 계획을 보류한다고 하자마자 국방부 장관이 또 북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실 지금 한미일 세 나라 중에 한국이 가장 저돌적이다. 미국과 일본은 벌써 분위기 눈치 채고 몸을 사리고 입을 건사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그런 게 없다. 마치 지금 상황을 전혀 모르는, 현실 인식을 전혀 못 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북이 대남 군사작전을 통해 문재인 정부를 곧바로 굴복시키지 않는 이유는 첫째, 가장 큰 문제였던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그래도 정부가 차단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특히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가장 적극적인 노력을 해 눈길을 끌었다. 

 

둘째, 미국이 재빨리 자세를 가다듬는 걸 보고 정리가 가능하다고 본 것 같다. 어차피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승인’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독립변수가 아니다. 미국만 정리하면 문재인 정부는 자동으로 정리된다. 미국은 북의 초강경 태도를 보고 다음은 자기 차례라고 여겼을 것이다. 마치 과거 중국이 ‘북이 무너지면 다음은 우리 차례다’라는 순망치한 관계를 생각한 것처럼 미국은 ‘한국이 무너지면 다음은 우리 차례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이럴 때 미국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한국이 무너지지 않도록 위기관리를 해주거나, 아니면 한국은 포기하고 자신들이 타격을 입지 않도록 북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거나. 무엇이든 북의 입장에서는 목적한 바를 이루는 셈이 된다. 

 

셋째, 충분히 경고를 줬으므로 문재인 정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북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추구한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가 부랴부랴 정의용 국가안보보좌관과 서훈 국정원장을 특사로 보내려고 한 것을 보면 겉으로 ‘허세’를 부린 것과 달리 혼이 좀 났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기회를 더 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상황은 결코 문제가 끝난 상황이 아니다. 공이 문재인 정부에게 넘어온 상황이다. 이 공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전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달렸다. 이 공을 들고 미국에 찾아가서 답을 찾아봐야 미국은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이제는 남에게 기대지 말고 자기 스스로 답도 찾고, 그 답에 책임도 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일단은 우리에게 넘어온 공을 경기장 밖으로 걷어 차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6.25전쟁 70주년 기념사를 보자. 그 사단을 겪고도 꼭 저렇게 말해야 했을까, 혹시 최순실이 써놓은 걸 실수로 읽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우리의 GDP(국내총생산)는 북한의 50배가 넘고 무역액은 북한의 400배를 넘습니다. 남북 간 체제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체제경쟁의 기준이 그저 돈이다. 얼마나 천박한 사고방식인가. 이왕 비교하려면 어디에 자살로 죽는 국민이 더 많고, 어디에 친일적폐세력이 더 많은지도 이야기했으면 좋을 뻔했다. 산재로 죽는 노동자가 한 해에 얼마나 되고, 성매매 산업이 얼마나 번창하고 있으며, n번방 출입자가 몇 명이고, 자기 집이 없어 월세 전세 떠돌아다니는 가정이 얼마나 많은지도 자랑해보자. 

 

대통령부터 저런 체제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으니 남북관계가 왜 오늘의 파국을 맞았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전쟁을 겪은 부모 세대와 새로운 70년을 열어갈 후세들 모두에게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는 반드시 이뤄야 할 책무입니다.”

 

분명 4.27 판문점선언의 명칭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선언’이다. 지금 남과 북의 공통 지향은 ‘평화, 번영, 통일’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꼭 ‘평화, 번영’만 이야기한다. 통일을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아래 문구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통일을 말하려면 먼저 평화를 이뤄야 하고, 평화가 오래 이어진 후에야 비로소 통일의 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이 싫다는 말을 이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통일이란 살아생전에 절대 이룰 수 없는, 아니 이뤄서는 안 되는 일인가보다. 통일에 대한 입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의 공통점이 있다. 북을 무너뜨려 우리가 차지하겠다, 체제흡수통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차이점도 있다. 박근혜는 자기 주제도 모른 채 하루빨리 북을 점령할 꿈에 부풀어있었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겁이 많아서 자기 손으로는 감히 엄두도 못 내는 소심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앞 일이 참으로 우려된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자주시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