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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여, 도덕적 순결주의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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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소셜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0-08-07

평화이음이 월간 '민족과 통일' 8월호를 발간했다. 

우리사회와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진보여, 도덕적 순결주의에서 벗어나자

 

학교 다닐 때 농활을 가면 철칙이 있었다. 농민들이 주는 것은 절대 어떤 것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계획표에 따라 하루 종일 고강도의 노동과 일몰 후 동네 청년들과의 토론을 마치고 하루 일과 평가반성까지 해야 하루를 정리할 수 있었다. 더러 농민들이 고추장이나 된장, 풋고추를 가져다주어도 절대 받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농민들 입장에선 야멸차게 사양하는 젊은이들이 꽤나 서운했을 것 같다. 농민들에게 어떤 신세도 지면 안 된다는 원칙은 당시 농활을 농민의식화라고 불온시하는(사실이 그랬지만) 공안당국에 어떠한 빌미도 주지 않으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진보진영(지금은 범민주개혁진영, 범시민사회라고 해야 하나)은 태생적으로 도덕적 순결주의라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부패와 비리를 통치수단으로 거리낌 없이 행사해온 수구세력과 맞서 싸우려면, 국가전복세력이라는 공격에서 대중적 지지를 얻으려면 도덕적 명분은 목숨처럼 지켜야 하는 가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순수성을 강조하는 데에는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포기하는 것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내부적으로 활동가들의 무임노동을 당연시했고 의식이 있다 해도 노동력의 대가를 치를 만한 능력도 없었다. 활동가들도 그것을 당연한 헌신으로 여겨 교통비에 불과한 쥐꼬리만큼의 활동비를 받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거나 손부끄럽게 생각했다. 강의해서 얻은 강의료는 토해내는 게 당연하고 노가다로 번 돈을 공유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개인의 권리와 행복을 입에 올리는 건 자기검열 단계에서 자발적으로 제거되었다.

 

언론과 검찰, 자본과 손잡은 수구세력의 카르텔은 도덕적 자기검열, 도덕적 진보순결주의가 민주진영을 한방에 분열시킬 수 있는 아킬레스건임을 너무 잘 안다. 언론이 한창 정의연을 물어뜯기할 때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은 날 목 놓아 울게 만들었는데 다름 아닌 아방궁 같다는 안성쉼터에서 정의연 활동가들이 워크숍 뒤풀이하는 사진 때문이었다. 테이블엔 약간의 주류와 과자류가 다였는데 후원금은 쌓여있지만 그 돈은 절대 건드릴 수 없으니 그들은 치킨도 피자도 아닌 새우깡 같은 과자 몇 봉지 놓고 뒤풀이를 한 것으로 보였다. 과거 단체 일을 할 때 식비를 아끼려고 사무실에서 밥을 해먹을 때도 늘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상추쌈이었고 어쩌다 특별한 날에 제육볶음을 해먹는 게 호사였다. 회비납부회원도 적었지만 누군가 밥 먹으라고 봉투를 주고 가도 한 푼도 허투루 쓸 수 없어 볼펜도 심을 사다 리필해서 쓰고 이면지에 회의 자료를 출력했다. 시위라도 한 날이면 새우깡과 자갈치에 쓴 소주를 먹으면서도 마냥 행복했던 그 옛날이 생각나서 그 사진을 보고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도서관에 틀어박혀있다 나오는 순간 박원순 시장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미투’ 고소 속보와 사망이라는 허위보도가 나왔을 땐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구나 했다. 그러나 박시장의 워커홀릭 때문에 직원들이 괴로워한다는, 업무처리에 있어 완벽을 요구하는 고강도 업무지시로 힘들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지만 평소 결벽에 가까우리만치 매너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그 어떤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새벽에 깨서 사망발표기사를 보았을 땐 화가 치밀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죽긴 왜 죽냐고, 그냥 벌 받으면 안 되냐고. 하지만 아침까지 뜬눈으로 새우면서 안희정이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되었어도 모친상 조화로 비수를 들이대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스스로 견딜 수 없다고 판단했겠구나, 마지막 가는 걸음이 참 외로웠겠다 그렇게 체념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러나 시신이 발견된 지 두 세시간만에 고소인 측근이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라 신빙성이 있어보이는 고소장이 떠돌아다니는 걸 보고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강용석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김재련이 등장했고 그녀는 고소인의 신상을 교묘하게 공개하여 서울시 언저리에 있다면 누구나 알만하게 떡밥을 던졌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고소장이야말로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면 2차가해로 강력하게 조치하는 게 이치일 텐데 자신들의 고소장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니 유포하지 말아달라며 형식적으로 보이는 고소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민주진영의 박원순 애도와 ‘미투’에 대한 의구심,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2차가해라는 프레임을 씌워 재갈을 물렸다.

 

5월부터 고소인과 상담→고소장 접수, 같은날 새벽까지 고소인 진술조사→다음날 오후 박원순 실종, 사망보도→출처를 알 수 없는 고소장 유포→고소인의 신상을 짐작하게 하는 기자회견, 박원순 추모와 애도, 고소장 유포는 2차가해 주장→ 애도와 추모, 이에 침묵하는 것도 2차가해 주장→고소인이 4월 서울시 성폭행 사건의 당사자라는 보도→서지현 검사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입장표명 강요

 

급기야는 19일 KBS에서 “어떤 자살은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며 사자명예훼손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진행과정이 테트리스의 모양 다른 벽돌처럼 매우 정교하다. 고소인의 인권을 위한 것이라면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여 논란을 잠재우고 고소인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되었을 텐데 점층법처럼 관련증거를 하나씩 흘리며 점점 공격의 강도를 높이고 사건의 파장을 최대한 연장하여 전 국민에게 확산시키는 살라미 전술이다. 

 

그렇다고 해서 음모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듯 정교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정치적 악용을 우려하거나 정쟁의 수단으로 삼지 말라는 발언들을 쏟아놨고 이것을 2차 가해로 지목하여 그 어떤 토론도 원천봉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형국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예상대로 범진보진영은 젠더 아젠다로 양분되었다.

 

그런데 이런 패턴은 늘 똑같았다. 조국 때도 공정성 시비로 촛불 대오는 양분되었고 급기야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찢어졌다. 윤미향 때도 시민단체 회계처리의 도덕성을 운운하며 내부 공격이 가해졌다. 다행히 공작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채널A의 유시민 공작사건이 현실화되었다면 민주진영 내부에서 깨끗한 척 하더니 거짓과 위선이었다며 공격했을 것이 뻔하다. 조국도 윤미향도 수구세력의 공격이 아니라 같은 편의 공격에 더욱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가. 조국과 정경심 부부가 지위를 이용한 사모펀드로 막대한 부를 쌓은 게 사실인가. 윤미향이 후원금을 횡령하여 딸을 유학시키고 집을 두 채 세 채 매입한 게 사실인가. 박원순 시장의 비서는 사과를 원했다면서 왜 성폭력상담소가 아니라 고소라는 법적 수단을 선택했을까. 지금까지 제시한 정황이 전부라면 무죄가능성이 높았을 텐데 박원순은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그는 앞이 훤히 보였을 것이다.

 

바보같이 범민주진영은 노무현, 노회찬, 조국, 윤미향 때나 다를 바 없이 이번에는 박원순의 성인지감수성으로 치고받고 싸운다. 도덕성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콤플렉스로 등장한 젠더감수성에 갇혀 말 한마디 제대로 항변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거나 지금까지 공적으로 헌신해온 그의 삶 전체를 악마화하고 조롱한다. 극우 유투버들이 아니라 우리끼리 말이다. 

 

난 그 점이 매우 화가 난다. 수구세력의 프레임 기술은 점점 지능화되고 교묘해지는데 우리는 아직도 과거 농활에서 그 어떤 것도 받을 수 없다는 순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미투 프레임은 나 같은 얼치기 시골아짐도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 유권자의 갈라치기로 보이는데, 문재인 정부의 집권말기를 무력화시키고 당규를 거들먹거리며 4월보선과 대선에서 범개혁진영의 분열을 획책하는 공작으로 보이는데 우리는 순진하게 성인지감수성이라는, 단일한 결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아젠다에 스스로 발목을 묶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난 범민주진영이 진보순결주의와 결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쪽은 세련된 방법으로 ‘도덕’이라는 아킬레스건을 노리고 있는데 과거 농활에서 풋고추 하나도 안 된다던 미련한 순결주의를 고수해서는 이길 수 없다. 저쪽이 떡밥을 하나씩 던질 때마다 그 떡밥을 물고 했다 안했다, 미투다 아니다 싸워봤자 사건의 파장과 범위를 확산시켜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저들의 노림수에 놀아날 뿐이다. 

 

프레임에 끌려다니지 말고 새로운 프레임을 짜야 한다. 가정도 개인의 행복도 가족의 경제적 안위도 다 무시한 채 오로지 시민사회만을 위해서 일한 박원순을 그런 이유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꿈꾸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그의 가르침을 이번에는 우리가 실천에 옮겼으면 좋겠다. 정치에만 상상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나. 저들이 걸어오는 프레임을 완전히 뒤집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는 없는 것인가.

 

가끔 집안에 맷집좋은 막가파 한사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이 순리대로 잘 안풀 릴 때, 돈도 빽도 없어서 무시당한다고 생각될 때 한국사회는 다 나와! 여기 책임자 누구야! 언론에 다 뿌리겠어! 하고 소리 지르면 의외로 쉽게 일이 풀리는 것을 많이 봐왔는데 모범생 콤플렉스가 있는 나 같은 사람은 저기요, 이차저차 했는데요, 그래도 이것은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밖에 할 줄 모르고 대개는 억울하게 냉가슴 앓는 것으로 끝난다. 

 

내가 김어준을 싫어하면서도 싫어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가 그런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디테일에 있어서 결코 좋아할 수 없는 김어준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훌륭한 점 하나는 “에이 X발, 그래 연애했다! 내가 그녀에게 특별히 편하고 좋아하는 감정이 있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던지는 ‘배째라 화법’이다. 그렇다고 책임 안지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나. 진보순결주의에서 벗어나면 큰일나는 줄 아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래! 배째, 어쩌라고, 책임지면 되잖아 하는 마인드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우리도 저들처럼 좀 뻔뻔해지면 안 되나. 그래봐야 눈꼽만큼 밖에 못할 텐데 그거라도 좀 담대하게 대처하면 안 되나.

 

지금처럼 저쪽이 던지는 떡밥에 바로바로 반응하고 아니라고 항변하고 내부적으로 자아비판하고 자기검열하는 방식으로는 이 난국을 절대 이겨낼 수 없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이 논두렁시계 때문에 자살했다고 믿는다. 노회찬이 4천만 원 받은 게 부끄러워서 자살했다고 생각한다. 박원순은 여비서에게 한 자신의 행동이 성희롱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살했다고 얘기한다.

 

다 틀렸다. 노무현, 노회찬, 박원순은 우리가 죽였다. 시계든 뭐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고 진영 내에서 양분되어 싸우고 할퀴어서 진보진영을 지키려고 노무현이 죽었고, 정치후원금 받은 처리를 제대로 안 해서 도덕적 순결에 생채기를 냈다며 사죄하라고 성명을 발표하고 공격해서 노회찬이 죽었다. 그리고 유죄판결로 정치적, 도덕적 생명을 잃은 수십 년을 동고동락해 온 동지가 하늘이 무너지는 모친상을 당해 조문하고 조화를 보냈다고 벌떼같이 공격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기에 박원순이 죽은 것이다. 설령 후원자에게 1억짜리 시계를 받았다 한들, 가난한 당 살림을 꾸려나가느라 4천만 원 받았다 한들, 위력에 의한 성추행을 했다 한들 죄와 사람을 분리해서 보기만 했어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점점 더 교묘하게 프레임을 짜고 공격해오는데 우리는 똑같은 루틴에서 벗어날 줄 모르고 패배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제2, 제3의 노회찬과 박원순을 막을 수 없다.

 

대의명분과 오로지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삶의 모든 것을 바치던 시대는 지났다. 집도 샀으면 좋겠고 맛난 거 자식들에게 먹이고 싶고 예쁜 여자 보면 로맨틱한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돈 없이는 정치할 수 없고 아무리 뒤축이 닳도록 뛰어다녀도 돈 없이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잘못하면 잘못한 만큼 벌주고 욕하면 된다. 인간의 본능은 절제하는 것이지 거세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욕망에 취약한 존재다. 그 어떤 틈새도 용납하지 않는 도덕적 순결주의를 정치인들에게, 진보적 인사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합당한 일인가.

 

전국의 수많은 민주당 단체장들이 있고 정부산하기관에 임명된 인사들이 있다. 단체장과 정치인들은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셀카를 찍는다. 그 과정에서 더러 불미스러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부적절한 관계, 부적절한 돈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그것이 음해든 아니든 시민이나 비서와의 관계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생한다면, 저들이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교묘하게 덫을 놓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성인지감수성 운운하며 알아서 끌어내릴 것인가. 

 

박원순은 그 모든 것을 안고 죽었다. 메타포가 아니라 실존이 무너졌단 말이다. 그럼에도 지켜주지 못하고 부관참시해서 이리 찢고 저리 찢는다면 진보적인 리더들에게 죽어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알려지기 전에 알아서 죽으라는 신호를 주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도 사회적 타살이다.

 

소중한 사람들, 나는 죽었다 깨나도 억만금을 준다 해도 살지 못할 삶을 사는 사람들을 잃고 나서 지못미! 하며 눈물 흘리는 거 이제 나는 못하겠다. 그냥 그래 잘못했다, 책임질게, 좀 이렇게 뻔뻔함을 배우면 안 되나. 진보가 만들어놓은 사회적 규범이 과연 옳은 것이고 타당한 것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할복으로 책임을 대신하는 사무라이들도 아니고 죽음을 조장하는 방식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진보진영이 더 당당하게 처벌받을 건 받고 일할 건 일하는 방법을 강구해야지 도덕적 순결주의에 갇혀서는 정말 귀한 사회적 자산을 잃어버리는 것을 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떠나고 나자 SNS 타임라인에는 박원순 시장이 보궐선거로 나왔을 때 투표일 전날 유시민 이사장이 시민들에게 당부했던 연설이 돌아다녔다.

 

“박원순은 시장으로 당선되는 순간부터 저들은 박원순에게 칼끝을 겨누게 될 것입니다... 박원순은 훌륭한 사람이지만 그 역시 인간입니다. 때로 실수도 하고 본의 아니게 해코지하려는 그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는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실수했을 때 함께 돌을 던지시겠습니까? 그가 우리가 아는 그 박원순인 한, 한나라당원처럼 변하지 않는 한 어떤 실수나 판단착오, 긴장이 풀려 뭔가 잘못해도 돌 던지지 않고 버리지 않고 믿고 지켜나갈 수 있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홀로 견디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소름끼치지 않는가. 사람들은 유시민 이사장의 예언이 맞아떨어졌다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언이었다. 노무현을 보내고 지못미를 외쳤지만 노회찬도 그렇게 잃었다. 끝없는 반복이다. 수구 카르텔은 끝까지 민주진영을 음해하고 분열시키고자 아킬레스건을 노릴 것이고 범민주진영이 이에 도덕적 순결주의로 대응하는 한 제2, 제3의 박원순은 막을 수 없다. 장준하와 조봉암을 암살하고 김대중을 납치하여 현해탄에 수장시키려 하고 끝내 군사법정으로 끌고 가 사형시키려 했고 노무현을 부엉이 바위로 올라가게 만들고 곽노현 교육감을 감옥으로 보내고 한명숙 총리를 공작으로 거세하고 유시민에게 공작정치를 하려 했던 사람들의 공격 앞에 진보진영은 언제까지 도덕적 순결주의만 외칠 것인가. 답답하고 답답하다. 울화통이 터져서 미치겠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고 속옷 프레임에 갇혀서 시시비비를 가리려고만 한다.

 

과연 노무현과 노회찬, 박원순에 버금가는 인물이 있을까 모르겠다. 모든 소중한 것들은 잃고 나서야 깨닫는 법이다. 진보순결주의라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스틱스 강을 스스로 걸어 들어가게 만드는 루틴을 단절하지 않는 한, 완전무결함과 도덕적 순결주의라는 프레임 속에서 허우적댈 거라면 누구도 나서기 어렵다. 

 

두 분이나 허망하게 보내고도 학습효과도 없이 박원순에게 도덕적 잣대만을 들이대는 민주진영의 결벽증에, 180석을 몰아줘도 2차 가해 프레임에 갇혀 입을 닫은 정치인들에게, 자살은 최종적으로 가해라고 지껄여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난 오늘도 절망한다. 유시민 이사장에게 돌아오라고 손짓하고도 실수하면 또 가차 없이 버릴 게 뻔하다고 말하면 너무 과한가. 그래서 힘도 발언권도 없는 내가 절대로 돌아오지 마시라고, 쓰고 싶은 책 쓰고 가족과 나누는 소소한 행복을 포기하지 마시라고, 난 당신을 지켜줄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저들이 만들어놓은 미투 프레임 안에서 허우적대지 말고 진보도덕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프레임을 짜자”는 것인데 사안의 민감성으로 보아 2차 가해 혹은 반여성주의, 나아가 진영내 총질로 비판할 것이 예상됩니다.

 

한국사회는 맞아죽을 각오가 아니라면 이런 얘기 못하는 거 압니다.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매카시 열풍과 똑같고 진영을 막론하고 다 똑같습니다. 젠더 아젠다에 특히 남성들은 입에 재갈이 물려 발언권을 상실했고 진보를 자처하는 여성들은 사회적 약자 프레임에 갇혀 속옷사진이 성추행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분노하고 위력에 4년간 말하지 못한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성인지감수성을 말하면서 여성은 성적 자기결정권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이율배반이 넘쳐나도 중심적으로 일해 온 중견 여성운동가들의 균형 잡힌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돌 맞을 각오하며 쓴 글입니다. 여성으로 보지 말고 사람으로 보라고 남성들에게 요구해왔는데 현실은 자꾸 힘없는 여성으로 보지 않는다고 분노할 것을 강요합니다. 나는 여성이기 이전에 ‘사람’입니다. 하지만 여성이라 이런 얘기도 할 수 있겠구나 싶은 것이 53년 동안 한국사회에 살면서 생물학적인 여성이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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