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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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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
기사입력 2020-09-12

 

무소불위의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대표적인 반민주악법으로 꼽힌다.

 

국가보안법은 일제강점기의 치안유지법에서 유래한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이승만 정권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치안유지법을 변형해 국가보안법을 만든다. 국가보안법이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제1조)”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법이다. 꼭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예비, 음모, 반국가단체와 연락/찬양고무, 허위사실 유포, 관련 자료 취득·소지·운반·반포’ 등을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국민의 목소리를 ‘북한과 유사한 주장’이라거나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동으로 몰아가면 처벌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것도 ‘북한을 이롭게 한다’라고 끼워 맞출 수 있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꼬집으면 ‘사회주의’를 옹호한다고 억지를 부릴 수도 있다.

 

이렇게 국가보안법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법이기 때문에 적폐 세력의 무기가 돼왔다. 전두환이 5.18학살을 자행할 때 내세운 명분도 ‘북한의 지령을 받은 폭동’이라는 것이었다.

 

국가보안법 제21조의 3항에는 “이 법의 죄를 범한 자를 체포할 때 반항 또는 교전상태 하에서 부득이한 사유로 살해하거나 자살하게 한 경우에는 제1항에 준하여 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라고 되어있다.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용의자로 찍은 사람을 죽여도 되며, 죽이면 오히려 포상을 받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국가 폭력’의 종합체이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2020년에도 국가보안법은 남아있다.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되었나?

 

국가보안법 이야기하면 ‘이제는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됐다.’라는 이야기도 적지 않게 나온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서슬 퍼렇게 살아있다.

 

(1) 여전히 국가보안법으로 구속·처벌이 이루어진다

 

먼저, 국가보안법으로 실제 구속·처벌이 이뤄지고 있다.

 

사업가 김호 씨는 2007년부터 중국에서 북측 사람들과 함께 ‘인공지능을 활용한 얼굴 인식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김호 씨는 국내 최초로 미국표준기술연구소(NIST)의 인증도 획득했다. 2017년 NIST가 개최한 ‘1회 얼굴인식상챌린지’에서 6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김호 씨는 이 프로그램을 일본과 중국으로 수출했고 2016년부터는 국내에서도 판매했다. 그런데 이명박근혜 정권 때도 문제가 없었던 김호 씨는 2018년 문재인 정부 하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2020년 8월에는 6·15공동선언실천청년학생연대(청학연대) 간부가 국가보안법 유죄판결을 받았다. ‘민족자주는 민족의 생명’, ‘전쟁위협 반대한다’, ‘주한미군을 철수하자’라는 주장을 했다는 죄이다.

 

지금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관련 기사 등을 보면 ‘주한미군 나가라’는 댓글을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다. 8월 12일 연합뉴스 보도 <“백악관, ‘방위비 안 내면 주한미군 감축 암시하라’ 협상팀 지시”>에 달린 댓글에는 “나가라”, “환영해. 철수해~”라는 댓글들이 즐비하다. 그런데도 주한미군 철수를 외쳤다는 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물론,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모든 사람’이 처벌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을 마음먹으면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으로 ‘누구든’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은 적폐 세력의 강력한 무기이다. 굳이 ‘수많은 사람’을 처벌할 필요가 없다. 대표적인 사람을 콕 찍어 처벌하면, 진보개혁적인 목소리를 충분히 억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통합진보당은 창당 직전부터 정당 지지율 14.7%를 얻어 국민에게 진보 집권이 가능하리라는 기대까지 안겨주었다. 그러자 적폐세력은 통합진보당을 좌초시키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꺼내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을 터트렸다. 훗날 법원에서 내란음모는 없었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이미 통합진보당은 없어진 후였다.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진보정당은 현재까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만약, 적폐 세력이 재집권이라도 하는 날에는 다시 국가보안법을 휘둘러 진보민주 세력을 압살하려 들 것이다. 살펴본 것처럼 수많은 사람을 잡아넣지 않아도 된다. 조중동 언론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가짜뉴스를 퍼트려 국민의 정신을 빼놓은 뒤 대표적인 사람이나 집단을 처벌하면 진보민주 세력을 꺾을 수 있다.

 

적폐세력들이 조국 전 장관이나 윤미향 의원을 향해서 ‘종북’몰이를 시도했고 태극기모독부대들이 문재인 대통령 사퇴를 주장하는 근거도 바로 다름 아닌 ‘종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 국가보안법이 만든 ‘비정상’ 사회

 

국가보안법은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다. 국민들에겐 ‘해선 안 되는 생각’, ‘해선 안 되는 말과 행동’이 있다. 국가보안법을 어기면 감옥에 가고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사형까지 심심찮게 당했다. 이렇게 70년 넘게 살아오면서 국가보안법은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대한민국을 ‘국가보안법’의 나라로 만들었다.

 

1) ‘공포심’을 안고 사는 국민

 

태극기모독집회를 보자. 최근에도 태극기모독부대는 코로나19 사태가 진행 중이고 사랑제일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집회를 열어 전 국민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코로나는 거짓말’이라거나 심지어 ‘북한의 테러’라고 주장하는 등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작년에도 황교안을 필두로 국회에서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청와대로 진격하겠다며 경찰을 각목으로 공격하는 짓까지 벌였다. 태극기모독부대들에게서는 ‘이러다가 잡혀가는 거 아냐?’라고 걱정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진보집회는 다르다. 특히, 집회 경험이 적은 사람이라면 집회 참가하기 전에 ‘참여해도 되나?’, ‘신변에 위험이 생기면 어떡하지?’, ‘이거 나쁜 길로 빠지는 거 아냐?’라는 걱정이 앞서곤 한다.

 

이렇게 집회를 두고서도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국가보안법의 영향이 크다. 태극기모독부대들은 ‘국가보안법’으로 보호받으며 진보진영을 탄압해왔고 진보진영은 탄압받아 왔다. 그 결과 태극기모독부대들은 두려움이 없고 당당하지만 옳은 소리를 하는 국민은 오히려 공포심에 짓눌리게 된 것이다.

 

이런 국가보안법의 기제는 기사 댓글 등 온라인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예컨대,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유치원 3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댓글 공격을 받았다. 11월 17일 뉴시스 기사에는 “빨갱이 민주당 아줌마들”, “지령받고 움직이는 좌좀비들”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댓글 공격을 받으면 공포심을 느끼며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그런데 따져보면 이런 댓글들은 원색적이기만 할 뿐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는 무시해도 무방한 무의미한 내용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빨갱이’로 몰리면 사형까지 당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빨갱이’, ‘종북좌파’로 몰리면 공포심을 느끼며 위축되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이 사라지지 않아 이런 상태가 유지되면 국민은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노동조합을 보자. 노동자가 자기의 권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조에 가입하는 게 당연히 유리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하기를 꺼린다. 설사 기업이 굳이 노조를 탄압하지 않는 상황이더라도 국민은 노조에 가입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2) 국정에 영향

 

국가보안법은 국정운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부나 정당이 정책이나 입법을 추진할 때면 일단 ‘이념논쟁’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2010년 무상급식이 화두가 되었을 때, 김문수 당시 경기도지사는 “전면적 무상급식은 무조건 배급하자는 북한식 사회주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2019년 유치원 3법을 입법할 때도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은 ‘좌파 사회주의’라며 “사회주의형 인간 양성하려는 좌파 음모”라고까지 비난했다.

 

올해, 부동산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부가 각종 대책을 내놓자 중앙일보는 8월 21일 “사회주의 혁명이냐, 아파트 건축이냐”라는 시평을 내기도 했다. 부동산 규제는 사회주의라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어떤 법이나 정책이 제안되면 국민에게 도움이 되느냐를 논의하는 게 아니라 일단 색깔론에 가로막혀 버리고 만다. 불필요한 이념논쟁으로 대한민국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설사 좀 사회주의적이면 어떻고 자본주의적이면 어떤가.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국민이 지지하느냐 마느냐가 민주주의의 핵심이 아닌가? 이념논쟁이 사라져야 진정한 ‘정책토론’이 가능해지고 국민을 위한 국정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하루라도 빨리 사라져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하면 한국 사회에서 적폐·독재체제는 청산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했다는 의미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북한을 적으로 보며 반북반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라라는 의미와 같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 세력은 반공·반북 세력이며 분단을 끝내고 통일을 실현하려는 진보·개혁세력은 비주류일 수밖에 없다. 판문점선언을 합의한 민주당 문재인 정부보다 반북대결을 주창하는 국민의힘이 국가보안법이 규정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더 부합하는 정당이 되어버린다.

 

국민은 적폐청산과 통일번영이라는 대한민국의 전면적인 변화를 바라고 있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국민의 기대만큼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가 바로 국가보안법 폐지에 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 진짜 민주주의를 실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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