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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 빨치산의 증언] 5. 아이를 혼자 팽개쳐두고 부모를 감호소로 끌고 간 사회안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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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사입력 2020-09-14

평화이음이 월간 '민족과 통일' 9월호를 발간했다. 

우리사회와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 여성 비전향장기수 박선애 열사와 윤희보 북송 비전향 장기수 부부     

 

근현대사 구술

한 여성 빨치산의 증언

 

유일한 여성 비전향장기수였던 박선애 선생의 생전 구술 내용을 정리하여 몇 차례에 걸쳐 공개한다. 박선애 선생은 1927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해방 후 여성단체 활동을 하다 전쟁 시기 빨치산이 되어 1951년 1월 체포되었다. 광주포로수용소에서 10개월을 보낸 후 11월에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1965년 만기출소를 하였지만 1975년 다시 사회안전법에 따라 재수감되었다. 1979년 출소하여 통일운동과 여성운동에 전념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2010년 9월 25일 별세하였다. 

 

 

아이를 혼자 팽개쳐두고 부모를 감호소로 끌고 간 사회안전법

 

[박선애] 그러다 75년에 사회안전법이 나와서 다시 잡혀 들어갔어요. 애를 길거리에 내팽개쳐두고 애아버지도 데려가고 나까지 데려가 버렸죠. 그 때문에 내 동생(박순애 선생)이 고생을 엄청 했어요.

 

[박순애] 원래 박정희가 그 사회안전법이라는 것을 만들었을 때 학생들을 가둬놓는 감호소도 만들 작정이었대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학생은 안 된다 그랬어요. 왜냐하면 저희 자식들, 대학생들이니까. 그래서 그건 보류가 되고 잡범들 감호소하고 사상범 감호소만 만들었어요. 그런데 사상범 감호소가 국제적으로도 국내적으로도 너무 시끄러우니까 없애면서 잡범들 감호소는 놔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도 거긴 사각지대예요. 여하튼 사회안전법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려요. 그게 전향서 안 쓰면 감호소에 가두는 거거든요. 전향 안 하는 사상범들만 데려다가 죽을 때까지 가둬두는 데가 감호소예요. 

사회안전법이 나오고 나서 언니와 형부한테 탈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고 언니네가 하던 화원 근처에 가봤어요. 그전에는 내가 시골에서 가짜 호적을 하고 숨어 살고 있느라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서울을 안 왔거든요.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남은 형제라도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언니네 화원 근처에 갔더니 집에 불이 꺼져 있고 화원 문이 활짝 열려 있더라고요. 형사들이 조카는 내팽개쳐두고 형부를 감호소에 잡아가고 나중에 언니까지 데려간 거예요. 그러니 애를 찾아야겠는데 찾을 길이 없어요. 그래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사촌 오빠한테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조카를 경기도 성남에 있는 시골 친척 집에 맡겨 놓았대요. 

가보니 애는 온몸에 모기한테 물려서 몰골이 말이 아닌데 애를 데리고 가서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호적을 처리할 수가 없잖아요. 그때는 이 아이를 누가 데려가나 해가지고 내가 데려간 걸 알게 되면 나까지 이제 잡혀가게 되면 안 되니까. 그러니까 철저히 위장을 해야 하니까 애를 내 호적에 올렸어요. 그때는 가난한 사람들 호적을 다시 정리해주는 기간이 있었어요. 그래 이름을 지어야겠는데 감호소 들어간 사람은 다 죽어야 나온다는데 싶어서 엄마 아빠 이름을 한자씩 따서 지었어요. 일생을 엄마 아빠 이름을 기억하고 살라고...(눈물이 나와 잠시 말을 중단했다) 그때 이름을 지을 때만 해도 단 한 번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건 생각도 못 했어요. 

 

[박선애] 면회는 직계 가족이 아니면 안 되니까요.

 

[박순애] 그러니 면회를 못 보냈죠. 이름을 바꿔버렸으니까. 편지는 옛날 이름으로 왔다 갔다 했는데 면회는 안 돼요. 성이고 이름이고 완전히 달라져 버렸으니까. 그렇게 조카를 데리고 청평에 갔어요. 남편하고 살고 있었어도 아이가 없었는데 느닷없이 조카를 데려가면 주변 사람들이 의심할 것 아녜요? 그러니까 남편이 자기가 밖에서 낳은 아이라고 그러라는 거예요. 그런데 누가 그걸 믿어줘요? 동네 사람들이 다 그러는 거예요. 그럴 사람이 따로 있지, 당신 남편 같은 사람이 그럴 리가 있냐고. 여하튼 조카한테는 사람들한테 그냥 서울에서 살다가 왔다고 그러고 다른 말은 일절 하지 말라고 일렀죠. 학교에 가서 공부는 잘했지만 애가 기가 죽어 있는 것 같아서 태권도를 가르쳤어요. 

그렇게 거기 청평에서 살다가 춘천으로 이사를 갔는데 형사가 찾아온 거예요. 예전에 내가 빨치산 하다가 잡혀서 무기형 선고받고 대전 가서 형을 살았거든요. 그런데 한 달 있는 동안 배가 이만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복막염 때문에 4.19 때 형 집행정지로 나왔는데 아버지께서 한약을 먹여서 날 살려주셨어요. 그 약을 먹고 오줌으로 다 나가고 해서 배가 조금 꺼지니까 형사들이 또 도로 데려가려고 자꾸 오는 거예요. 보름이 지나도 자꾸 쫓아다니기에 한 달 만에 서울로 와버렸어요. 친구가 편지를 했기에 그걸 보고 왔죠. 

그러다가 춘천에서 16년 만에 다시 잡힌 건데 공소기간이 15년이라 구속은 안 시키데요. 가짜 호적을 한 게 공문서위조지만 춘천 지역의 형사가 그래도 도와줘서 구속은 안 된 거예요. 가끔 그렇게 괜찮은 형사들도 있어요. 

처음 서울로 와서 갈 곳도 없으니까 남의집살이를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어요. 얼굴도 누렇고 뼈만 앙상하니까 누가 일을 시키려고도 안 하는 거예요. 절에 가 있었던 적도 있어요. 그러다 언니 친구가 부잣집으로 시집간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보증을 서줘서 남의집살이를 하게 되었죠. 엄마가 평양 사람이었는데 시장에 일하러 다니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집에 여섯 살짜리 딸아이를 봐줬어요. 아이한테 옛날이야기도 들려주고 그랬죠. 

그러다 결혼도 하고 그렇게 청평에 살고 있다가 조카를 데려온 거였어요. 

 

[박선애] 나중에 내가 먼저 감호소에서 나오는데 갈 데도 없고 그랬어요. 그전에 하던 화원에 가봤더니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서초동이었는데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 있고 또 그 집주인도 못 찾겠고 그래서 그냥 포기했죠. 그랬는데 형사가 와서 동생이 춘천에 있다고 주소를 주데요. 그래서 알았어요. 

 

[박순애] 여하튼 춘천에서 다시 잡혔어도 거기 있는 형사가 도와줘서 구속은 안 되었지만, 주거제한 A급이어서 춘천에만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 주거제한 때문에 언니가 나왔어도 같이 합칠 수가 없었어요. 그랬는데 거기 형사가 힌트를 줘서 서울에 가서 집을 계약하고 춘천 법원에 이의신청하면 된다 그러기에 서울에 방 알아보러 다녔어요. 

그렇게 근 6개월을 서울하고 춘천을 왔다 갔다 하면서 드디어 서울로 가도 된다는 확정판결을 받았어요. 그때 얻은 집이 삼양동 산동네에 있는 70만 원짜리 전세방이었어요. 당시에 남편은 중병에 걸려 있는데다 이사는 해야 하니까 어디를 가도 늘 가슴이 쿵쾅거리고 뛰는데 미칠 지경이었어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죠. 

남편은 다리에 파편이 많이 박혀 있었는데 아마도 그 외에도 파편이 들어간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 남편은 결국 세상을 떴어요. 11월에 장사를 치르고 나서 먹고살기도 어렵고 해서 밀가루 배급을 타다가 수제비를 끓여 먹고 그랬어요.

 

형제가 같은 집에 못 살게 하는 주거제한법

 

[박순애] 서울에 왔어도 언니하고 같은 집에서 살 수는 없었어요. 언니는 나중에 동숭동에 적을 두고 저녁에 내가 사는 제기동 집에 와서 잠만 같이 자고 그랬어요. 그때 내가 제기동에서 식모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 주인집에서 밥을 먹는 조건으로 한 달에 월급 5만 원을 받고 있었어요. 처음에 삼양동 산동네에 살다가 나중에 경동시장 옆으로 방을 옮겼거든요. 

시장 터에 나가 길거리에서 채소를 떼다가 팔고 했는데 텃세도 심하고 해서 무척 어려웠어요. 그런데 우연히 청평 살던 때 이웃에 살던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이 하는 가게 앞에서 채소 장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러니 사람 일은 모르는 거예요. 그 사람이 날 도와줄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런데 채소 장사라는 게 그게 시들면 못 팔잖아요? 그래서 나중에는 생선도 떼다 팔고 했지만 그래도 워낙 몸이 힘들어서 장사를 그만두고 식모살이를 하게 된 거죠. 여하튼 주인집에서도 우리 사정을 알고 있어서 언니가 저녁에 와서 잠만 자고 가는 건 그나마 허락을 해줬어요.

 

*박선애 선생의 구술 기록은 여기서 끝났다. 다음호부터는 박선애 선생의 남편인 윤희보 선생의 구술 기록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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