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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대학생들이 왜 미2사단 캠프 케이시 앞에 분향소를 차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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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철 통신원
기사입력 2020-09-24

지난 8월 30일, 포천시 영로대교에서 SUV 차량이 미2사단 210포병여단 소속 미군 장갑차를 들이받아 50대 부부 4명(여성 2명, 남성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미군 측이 2003년 체결한 '안전조치 합의서'를 전면 위반하고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단(이하 '진상규명단')이 9월 8일부터 미2사단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농성을 하는 단원과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다. 인터뷰에 응해준 진상 규명 단원은 긴 농성으로 조금은 피곤해 보였지만, 웃음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 진상규명단이 차린 분향소     ©

▲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단이 미2사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 안녕하세요 진상규명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ㄱ’씨 입니다.

 

-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지난 9월 8일부터 9월 19일까지는 미2사단 캠프 케이시 앞과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미대사관 앞에서는 기자회견 등을 이어갔습니다. 즐겁고 뜨겁게 노래도 부르고, 시도 쓰고, 춤도 추면서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3일부터 미2사단 캠프 케이시 앞에서 다시 농성을 하고 있어요. 원래 미2사단 일대에 전반 집회 신고를 냈는데, 경찰이 제한 조치로 집회 장소를 축소해서 한군데에 밖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 아쉬운 상황입니다 .

 

-  어떻게 이 진상규명단 활동을 시작하게 됐나요?

A :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이후, 장갑차 도로 규정을 마련했는데 미군이 이를 지키지 않았어요. 주한미군이 합의서를 지키지 않은 사실을 무조건 알려야 하고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범죄가 이번만이 아니고 크고 작은 범죄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어요. 주한미군이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이걸 알리지 못하고 진상을 규명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  지난 농성 동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A : 지지∙연대방문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습니다. 저희가 이 농성을 시작하고 나서 원래 실외 99인이던 집회 인원 제한 수가 실외 4명으로 바뀌는 행정명령이 떨어졌어요. 동두천시가 미군 측의 편의를 봐주는 것 같아서 화난 것과는 별개로 4명씩 밖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회 장소에 계속 4명만 있고 교대하는 인원도 많지 않아 고립될 수 있겠다는 막막함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지 방문을 계속 와주셔서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분이 이렇게 많구나, 진상규명 될 때까지 계속해서 싸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 진상규명단이 농성장에서 몸짓을 추고 있다.     ©

 

 

-  언제 제일 분노했나요?

A : 저희가 매일 면담요청서를 전달하러 가는데, 미2사단 캠프 케이시 문이 열려있거나 틈이 보일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주한미군이 그 안쪽에서 비웃고 있는 모습에 너무나도 화가 났어요. 우리나라 국민이 죽었고, 진상규명을 위해 찾아온 건데 그걸 비웃고 있다는 게 ‘우리나라 국민 목숨을 정말 신경 쓰지 않는구나!’라고 느껴져서 너무나도 화가 났습니다.

또 보수 단체에서 저희에게 ‘너네도 몸에 불을 붙여서 분신 정도는 해야 그게 투쟁이지 않느냐’라고 말할 때도 있었어요. 우리의 투쟁을 조롱하는 것보다도 열사분의 삶을 비하하고 폄훼하는 게 너무나도 화가 났습니다.

 

-  이번 농성을 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A : 한반도에 미군이란 존재가 들어와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국민의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인근 상인이 계속 오셔서 너희가 이렇게 하면 미군이 기지에서 나오지 않아서 돈을 벌 수가 없다고 하는데, 결국 미군 때문에 계속 갈등이 초래되는 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미군은 우리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비웃고만 있고, 이 동네가 망가지는 건 결국 미군 때문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미군의 실체를 국민에게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미2사단 앞에 분향소를 차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A : 이번 사건의 주범이 미2사단이에요. 미2사단 210포병여단 소속 장갑차가 호위 차량도 동반하지 않았고, 72시간 전 주민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이 죽었는데도 미 2사단 측은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고 있고, 면담요청서 한 장 받지 않고 있어요.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책임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라도 먼저 그분들을 추모하자는 의미로 미2사단 앞에 분향소를 차리게 됐습니다.

 

-  분향소 마련과 관련해 현재는 어떤 상황인가요?

A : 앞서 말했듯이 경찰이 다른 단체와 집회 신고가 겹친다며, 집회 장소를 축소했어요. 또 집회 신고를 냈는데도 농성장에 텐트, 분향소 설치 등을 가로막고 있어요. 저희가 원래 집회 신고를 냈던 곳에 분향소를 설치하자, 경찰이 축소 시킨 집회 장소로 분향소를 강제로 옮겼어요. 그러면서 “축소된 장소에는 텐트를 설치하든, 분향소를 설치하든 건드리지 않겠다”라고 했는데 지금 와서는 또 “그때는 상황을 넘기려고 한 이야기였다”라면서 철거를 하려 하고 있습니다. 일단 경찰과 동두천시 측이 철거를 하겠다고 경고 한 상황이에요.

 

▲ 농성장에 차린 분향소, 경찰이 철거를 진행하려다 트러스 위쪽과 왼쪽이 찌그러진 것을 볼 수 있다.     ©

 

 

-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예정인가요?

A : 앞으로도 계속 농성을 이어가면서, 미2사단 측에 면담 요청을 할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최대한 가능한 문화제, 집회, 기자회견을 이어갈 거에요.

또 진상규명단이 포천 경찰서에 이번 사건을 잘 조사해달라고 연락을 드렸었는데, 포천서 측에서 ‘계속 그러시면 수사할 의지가 떨어진다’라며 말도 안 되는 말을 했거든요. 또 사건 책임자인 주한미군도 당시 운전병 한 명만 불러서 조사했다고 해요. 그래서 저 말고 다른 진상 규명 단원들이 포천서 앞에서 수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습니다.

 

▲ 진상규명단측이 포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미2사단측과 만난다면 어떤 말을 전하고 싶나요?

A : 일단 기본적으로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진상규명과 관련한 내용을 물어보고 싶어요. 호위 차량은 왜 없었는지, 왜 훈련을 했다는 장갑차가 2대만 움직인 건지, 진짜 훈련을 한 건 맞는지, 마을 주민에게 72시간 전 통보는 왜 안 한 건지 등등, 그 이전에 이런 적은 없었는지. 묻고 싶은게 매우 많네요.

그 외에도 미 2사단이 진짜 많은 범죄를 저질렀는데, 이에 대해 미2사단에 왜 그런 짓을 하고도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한 적이 없는 건지 묻고 싶어요. 

 

-  앞으로 결의를 밝혀주세요

A : 정해진 기간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가 되고, 주한미군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 날까지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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