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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읽기] 3. 19세기 러시아 문학과 예술로 본 민중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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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선 통신원
기사입력 2020-10-16

러시아 벌판, 광활한 대륙, 우리는 러시아를 부를 때 ‘대륙’이나 ‘벌판’이라는 단어를 끼워 넣는다. 러시아의 총면적은 1,707만 5,400km², 남북의 길이가 2,500~4,000km이고 동서가 9,000km에 달하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지구를 여덟 조각으로 나눈 빈대떡이라고 생각했을 때 한 조각이 러시아가 차지하는 몫이다. 그래서 러시아 땅으로만 지구를 거의 한 바퀴를 돌고 러시아를 횡단하면 열 한 개의 시간대를 경험할 수 있다.

 

러시아라고 하면 또 어떠한 것들이 생각날까? 

 

모스크바, 마트료쉬카, 소련, 톨스토이, 볼쇼이 발레, 시베리아 벌판 등 갖가지 단어들이 떠오른다. 그렇다, 우린 아직 러시아에 대해 잘 모른다. 러시아에 대해 얘기를 하면 소련을 기억하시는 분들로부터 “러시아? 거기 소련 아니야? 빨갱이 나라.”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 2000년대 들어와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시베리아 가스를 끌어오는 사업을 추진하면서도, 우리에게는 러시아가 가깝고도 ‘먼 나라’인 것이 사실이다. 이에 러시아라는 숲을 다 보여드릴 수 없지만 적어도 러시아를 정확히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 8편에 걸쳐 [러시아 읽기]를 연재한다.

 


 

 

3. 19세기 러시아 문학과 예술로 본 민중의 삶

 

  © 이인선 통신원

 

많은 사람이 러시아의 19세기를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라는 가장 중요한 두 사조가 걸쳐 있는 러시아 문학과 예술의 위대한 시대라고 얘기한다. 

 

이 시기에 러시아에서는 푸시킨, 레르몬토프, 튜체프, 고골, 곤차로프,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홉 등의 우리가 흔히 들어봤을 만한 위대한 작가들이 탄생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예술은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의 서구 문학 수준을 넘어 가장 위대한 세계 문학예술의 하나가 되었다.

 

18세기 러시아는 맹렬한 서구화를 추진하면서 기존의 방어적 성향을 탈피하고 적극적으로 외부 세계와 교류에 뛰어들었다. 러시아는 그 교류의 일체를 ‘학습’이라 하면서 문학예술에 있어 18세기를 통상 ‘학습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러한 세기에 걸친 학습을 토대로 러시아는 19세기에 서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문화를 이뤄낼 수 있는 형식적 틀로서의 ‘거푸집’을 스스로 만들 수 있었다. 다시 말해 17세기 말까지 이어 내려오던 중세 러시아 문학예술의 전통이 일종의 ‘흙’으로서의 토양 그 자체라고 한다면, 18세기 절대주의 시대, 서구화를 학습하며 이 흙을 담아낼 멋진 ‘화분’을 스스로 만들었고 이후 19세기, 비옥한 흙을 담은 화분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것으로 비유적으로 이해하면 된다.

 

◆ 민중의 삶을 보는 창을 만든 푸시킨

 

러시아 낭만주의 시기는 무엇보다도 서정시와 운문이 꽃피웠던 시대였다.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문학사조의 주도자는 주콥스키(1783-1852)는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문학사조를 주도했다. 주콥스키는 1812년 조국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송가들로 명성을 얻었다. 죽음에 의해 단절된 우정, 희망 없는 사랑의 비극, 현실적인 삶에서 분리된 것을 재결합시킬 수 있는 죽음에 대한 기대를 부드럽고 감미롭게 노래함으로써 개인적 서정시의 영역을 개척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로 익히 들어봤을 푸시킨의 감미로운 시행들은 시어와 시 형식 탐구에 몰두했던 주콥스키의 영향을 받았다.

 

낭만주의는 거의 20년 동안 러시아 문학을 선도했던 푸시킨(1799-1837)의 작품을 통해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다. 푸시킨은 러시아의 위대한 국민 시인이다. 푸시킨은 작품에서 유럽과 러시아의 문화적 전통들을 융합했다. 특히 푸시킨은 시, 희곡, 산문을 통해 동시대의 현실적, 사회적, 철학적, 역사적 갈등을 표현했다.

 

푸시킨은 낭만주의 주 장르인 서정시에서 출발했으나, 곧 장편서사시(「루슬란과 류드밀라」, 「카프카스의 포로」, 「집시」 등), 운문소설(「예브게니 오네긴」), 단편소설(「벨킨 이야기」), 민담(「어부와 물고기 이야기」, 「황금 수탉 이야기」), 드라마(「보리스 고두노프」, 소비극), 역사소설(「대위의 딸」)에 이르기까지 그 당시까지 러시아 문학에서 부재했던 형식의 글쓰기 혹은 기존의 글쓰기에 대한 비판적 재고를 통한 새로운 형태, 내용을 제시하는 데 앞장섰다. 

 

낭만주의의 시대는 개인과 민족의 개성과 독자성을 중시하는 시대였다. 푸시킨은 낭만주의의 시대에 함께 고양된 러시아 민족주의적 정서에 걸맞게 러시아 민속적, 전통적 이야기들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또한 그러한 전통의 민담 세계를 그려내기도 했다. 특히 ‘자유’, ‘차다예프에게’, ‘시골’ 등 저항시와 농노제를 고발하는 시를 썼다.

 

푸시킨은 1830년 가을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의 이야기」를 썼다. 벨킨은 누구이며, 푸시킨은 왜 그에게 이야기꾼의 역할을 맡기기로 결심했는가? 벨킨은 물론 허구의 인물이다. 벨킨은 시적인 아름다움에 연연하지 않고, 여러 인물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격」에서는 육군 중령 I.L.P. 「역참지기」에서는 9등 문관 A.G.N. 「장의사」에서는 점원 B.V. 「눈보라」와 「귀족 처녀-농사꾼 처녀」에서는 처녀 K.I.T. 등으로 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분명하고 정확하게 산문을 쓰는 푸시킨의 ‘꾸밈없는 솔직성’은 당시의 사회를 반영했다. 러시아 비평가 체르니솁스키는 “푸시킨은 영민함과 믿음으로써 러시아 민중의 다양한 생활과 러시아 관습들을 서술하기 시작했다”라며 푸시킨의 글에 찬사를 보냈다.

 

◆ 민중의 삶과 사회현실을 투시한 고골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를 거치며 또 다른 종류의 낭만주의, 진정한 낭만주의로 뛰어난 문학가들은 어느덧 서서히 낭만주의 이후의 진로를 잡아가고 있었다. 당시 뛰어난 작품으로는 「예브게니 오네긴」, 「우리 시대의 영웅」, 그리고 「죽은 혼」의 30~40년대의 작품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낭만주의의 심화, 이동기에 배치된 이 세 ‘징검다리’는 1840년대 이후 본격적인 러시아 산문 문학과 19세기 중후반 러시아 사실주의 소설의 걸작이 탄생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훌륭한 표지석이자 방향타였다.

 

러시아 문학사에서 고골(1809-1852)의 문학이 가지는 의미는 중요하다. 첫째로 고골에서부터 러시아 문학의 비판적 사실주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푸시킨의 위대한 문학적 전통, 즉 러시아 현실에서 혁명적 운동의 경향성을 문학 내에 구현시켜 전통을 계승했다는 점이다. 러시아 비평가 벨린스키는 1840년대 이후를 ‘고골의 시대’라고 평가하고 있다. 

 

고골의 문학을 탄생시킨 러시아의 현실은 푸시킨의 시대와는 차이가 있다. 고골이 작품을 쓰던 시기는 니콜라이 1세 치하의 반동적이 시기였다. 또한 데카브리스트 봉기 실패 이후 1840년대 초까지는 더욱 암담하고 절망적인 시기였다. 그래서일까, 고골은 대체로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서 글을 쓰지 못했고 소재를 전체적으로 보기 위해 물러서 있었다.

 

고골의 「외투」의 출발점에 대해 작가 안넨코프는 이렇게 회상했다. 안네코프는 어느 날 고골에게 가난한 어느 관리 이야기를 했다. 그 관리는 놀라운 절약과 격심한 노동의 대가로 오랜 염원이었던 사냥총을 샀다. 그러나 그 관리는 첫 번째 사냥에서 그 총을 잃어버리고 비탄에 잠긴 채 중병을 앓기 시작했다. 고골은 이 이야기를 다 들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고 안네코프는 회상했다. 고골은 러시아의 ‘가난한 관리’의 유형에 관심을 가지고 「외투」를 통해 형상화한 것이다.  

 

고골의 「외투」는 푸시킨의 「역참지기」에 나타나는 문학적 전통을 발전시켰다. 소심하고 의기소침하며 가난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바시마치킨을 동료 관리들은 짓궂게 놀려댄다.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그는 슬픈 듯이 이렇게 부탁한다. “좀 내버려 둬. 왜 당신들은 나를 못살게 굴지?” 이 말속에는 “나는 너희 형제야”라는 다른 속말이 울려 나오고 있다. 이것은 세련되고 교양 있는 생활 속에 얼마나 잔인하고 무례한 언동이 감춰져 있는지, 인간 내부에 얼마나 많은 무자비함이 있는지를 목격하고서 한없이 전율했던 서기 출신의 젊은이의 영혼에 새겨져 있던 마음의 소리이다. 「코」는 8등 문관 코발료프가 자신의 '코'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는다는 내용의 작품으로 고골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환상적이고 기괴하게 다룬다. 고골의 환상과 현실이 교차되는 작품 세계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러시아 현실을 부각시켰다.

 

고골은 희곡 「검찰관」을 통해 러시아 관료 체제를 비판했다. 흘레스타코프라는 젊은 환락가는 도박으로 무일푼이 되자 하숙비가 밀린 채 지방 도시 여관에서 묵게 된다. 이 도시 관료들은 그가 암행 감찰관이라고 오해를 하고 그에게 온갖 뇌물을 바치고 아부를 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그가 감찰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모두가 악이고 부정으로 등장하고 있다. 고골은 지방 도시의 추악함과 러시아 관료 체제의 부패상을 풍자하면서 러시아가 더 나은 세계로 나가길 기대했다.

 

고골의 가장 독창적인 창작품은 스스로 ‘서사시(поэма)’라고 부른 「죽은 혼」이다. 고골은 악하고 비천한 것들을 풍자적으로 폭로하며 사실주의자로서 예술가 본연의 임무이자 작가·시인의 의무를 다했다. 「죽은 혼」의 주인공, 치치코프는 러시아 지방도시 N시에서 마닐로프, 코르보치카, 소바케비치 등의 지주들에게서 죽은 농노를 사 모으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현지사와 경시 총감 같은 지방 관료들이 개입을 하고 사기꾼이자 협잡꾼인 치치코프(매력적인 언어구사, 민첩한 처세술과 행동, 옷매무새 등이 사교계를 사로잡는다)를 부자로 착각하고 교양인으로 대해주며 환대하면서 그가 사는 농노들이 죽은 자들인지도 모르고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치치코프가 죽은 농노들을 사들이는 이유는 제정 러시아에서는 7~10년 간격으로 인두세를 시행했는데 정부는 죽은 농노들에게도 인두세를 부과한다는 것을 알고 호적에 아직 남아있는 죽은 농노들을 싸게 많이 구입해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거액을 인출받아 한몫 잡으려는 것이었다. 방만하고 방탕한 생활과 카드로 진 빚을 갚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지주들의 곤혹스러운 인두세와 관료들의 부패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철저히 추구하는 치치코프다. 「죽은 혼」은 죽은 농노들이며 동시에 정신적으로 죽은 러시아 사람들을 의미한다. 즉 고골은 농노 체제를 기반으로 한 19세기 제정 러시아 지주 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관료체계의 모순과 부정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 민중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홉

 

푸시킨과 고골의 뒤를 이은 작가들은 사회적 계급 구조에서 하층에 대해 연민을 담아 묘사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이다. 또한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수기」, 그리고로비치의 「마을」은 민중의 이미지를 창조했고 네크라소프의 시와 수필 등으로 관리들과 도시 생활의 부정적인 면을 비판했다. 투르게네프의 「잉여 인간의 일기」, 게르첸의 「누구의 죄인가?」,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 등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잉여 인간’의 형상을 창조했다. 이러한 작품에 등장하는 ‘시대의 주인공’은 주로 귀족이 아닌 잡계급 지식인이었다.

 

러시아의 1860년대는 문학과 회화, 음악 예술의 발전기이며 중흥기였다. 이 시기에 오스트롭스키, 투르게네프, 곤차로프, 네크라소프,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살티코프-셰드린이 문학적 재능이 꽃을 피웠다. 당시 문학과 시사평론의 관심사는 러시아의 생활에서 민중의 지위 문제와 귀족계급의 역할, 민주적인 지식인의 역할에 있었다. 농노제와 농노제의 잔재에 대한 투쟁은 러시아 내에서 발전되고 있던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비판의식과 결합했다.

 

1870년대 이르러 러시아의 해방 운동은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인민주의 지식인들이 이 운동의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 인민주의자는 러시아만의 발전과정이 있다고 주장하며 전제정치에 대항했다. 이와 동시에 이들은 국내 부르주아 세력들이 확대되어 가는 것에 반대했고  자본주의를 퇴보라 여겼으며, 농촌공동체를 통해 러시아가 사회주의에 도달하리라 생각했다. 이 시기 가장 빼어난 작품들(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셰드린의 「골로블료프가의 사람들」,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네크라소프, 우스펜스키, 오스트롭스키의 작품들)에서는 러시아가 자본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투르게네프(1818-1883)는 「사냥꾼의 수기」에서 잔인하고 부당한 농노제도와 러시아 현실에 대한 비난과 고발을 담았다. 또한 농노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1847년부터 53년 사이에 쓰인 「사냥꾼의 수기」는 단편연작 형식으로 구성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일관된 하나의 주제, 즉 전근대적인 농노제도에 대한 도덕적 항의, 그리고 긍정적인 민중정서를 표현했다. 「사냥꾼의 수기」는 농노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충격이었다. 당시 러시아 농민은 무지몽매하고 거의 짐승처럼 취급되었던 상황에서 지혜롭고 재능을 갖춘, 때로는 주인보다 뛰어난 지적 도덕적 자질을 지닌 투르게네프의 그린 농노는 충격을 주었다. 벨린스키는 이 작품에 대해 “이제까지 누구도 하지 못했던 그런 측에서 민중에게 접근”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투르게네프는 작품에서 농민을 상류계급보다 도덕적으로 더욱 우월하게 표현했고 지주는 저속하고 잔인하며 무능력하게 표현했다. 투르게네프는 농민들 속에 있는 그들의 인간성, 섬세한 상상력, 시적이고 예술적인 능력 등을 보여주었다. 「사냥꾼의 수기」에서 보여준 투르게네프의 대사회적 관심은 이후 그의 6대 소설로 불리는 「루진」, 「귀족의 둥지」, 「전날 밤」, 「아버지들과 아들들」, 「연기」, 「처녀지」 등에서 현실에 대한 더욱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발전한다.

 

러시아 문학사의 측면에서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사실주의, 특히 서구의 비판적 사실주의에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만이 독특한 사실주의 영역을 개척했다. 누구보다도 그는 철저한 심리주의와 인간의식의 분석, 그리고 인물 성격과 상황묘사에서 탁월했다. 그의 이러한 특징이 최초로 성공적으로 드러난 작품은 「가난한 사람들」, 「백야」, 「네토치카 네즈바노바」이다. 창작 초기에 그는 도시의 뒷골목과 지하실의 사람들, 가난한 학생, 하급관리들, 학대받고 고통받는 사람들, 그들의 고뇌에 대해 자신의 작품의 지면을 할애한다.

 

 「가난한 사람들」에서 마흔 살 먹은 하급관리인 주인공 마카르는 “나를 파멸시키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삶의 모든 불안, 이 모든 쑥덕거림, 냉소, 농지거리”라고 고백한다. 제정 러시아의 하급관리는 ‘관리’라는 직책과 달리 최하층 계급의 하나였다. 그를 정말 힘들게 한 것은 극빈이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이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혹시 누군가 자기에게 가난뱅이라고 손가락질할까 봐 신경을 곤두세웠다. 말투는 늘 변명조이고, 방어적이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다만 “그들도 인간”임을 전해주고 있다.

 

우리는 보통 러시아 작가라고 하면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1828-1910)를 많이 비교한다. 그 이유는 동시대에 살았던 작가인데도 뚜렷이 반대되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도스토옙스키의 경우는 인간은 그 본질에 있어서 비논리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톨스토이의 경우에 인간은 신과 같은 아름다운 존재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상처를 들춰냈으며 톨스토이는 건강한 정열을 보여주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경우에 인간은 고문을 가하는 자이거나 고통을 당하는 자라고 한다면 톨스토이의 경우에 인간은 아름다움과 선의 근원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에게는 하나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나 인간을 그가 속한 사회적 계급에 의하지 않고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본성에 의해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1805년부터 데카브리스트 봉기 전야까지의 약 20년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톨스토이는 볼콘스키와 로스토프 양가를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슬픔, 기쁨, 갈등 등 각자의 생활을 그려 가정 소설적인 성격도 가미하고 있다. 이 작품 속에서 톨스토이는 무엇보다도 러시아 민중을 주도적이고 근원적인 존재로 그려내고 있다. 진정으로 작품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은 민중들이다. 톨스토이는 역사를 움직이는 주요 힘은 절대 권력자가 아니라, 민중임을 말하고 있다.

 

「안나 카레리나」는 가정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브론스키를 사랑하게 된 여주인공 안나 카레니나는 남편과 이혼한 후 브론스키와 살게 된다.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는 브론스키에 대한 사랑의 불신과 자신의 도덕적 죄책감, 사람들의 비난의 눈초리 등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을 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을 험담하는 세상 사람들을 경멸하면서도 그 사회와 단절하고 살 만큼 용감하고 대담하지 못했다. 작품의 기저에는 안나를 단죄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교계 사람들은 실상 그럴 권리가 없다는 암시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여기에서 톨스토이는, 브론스키와 안나와의 대립 구도로 설정된 레빈과 키티의 시골에서의 결혼 생활을 통해 선을 보여주려고 했다. 톨스토이는 도시와 농촌, 문명과 자연이라는 이중구조 속에서 문명과 결부된 것은 위선이고 거짓이고, 자연과 결합한 것이 선이고 진실이라고 표현했다. 

 

가벼운 유머 단편들을 유머 잡지에 투고하면서 문필 활동을 체홉은 그 특유의 재치와 익살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체홉의 4대 희곡으로 꼽히는 「갈매기」, 「바냐 외숙」, 「세 자매」, 「벚꽃동산」은 그에게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었다. 그의 희곡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단조롭고 정적이다. 체홉은 실제로 살아있는 현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하찮은 것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체홉은 자신의 희곡 작품을 통해 세기말의 혼란한 분위기와 귀족들의 정신적 위기를 드러내었다. 체홉의 등장인물들은 당대 러시아 현실의 암울함을 느끼면서도 그 어딘가에 그들이 꿈꾸는 의미 있는 세계가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체홉은 인간의 비극적 현실뿐만 아니라, 인간의 잠재력과 발전을 객관적이고 절제된 표현 속에서 그려냈다.

 

다음 편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다.

 

[러시아 읽기] 2. 봉건의 역사 속에서 꽃 피운 혁명의 불길-> http://www.jajusibo.com/5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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