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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 조국분단] 10. 우토로 마을을 지켜낸 강경남 할머니와 동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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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기사입력 2021-01-07

평화이음이 월간 '민족과 통일' 1월호를 발간했습니다. 

 

우리사회와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일본 속 조국분단_우토로 마을을 지켜낸 강경남 할머니와 동포들

 

1. ‘무한도전’이 만난 강경남 할머니의 삶

 

지난 11월 21일, 재일 동포 1세대 강경남 할머니가 95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는 9살(1934년)이던 일제강점기 때, 고향 경상남도 사천에서 어머니와 일본으로 건너갔다. 어린 시절은 아버지가 있던 오사카(大阪)에서 보냈고, 결혼 뒤 1944년에는 우토로 마을로 옮겨가 돌아가실 때까지 쭉 살았다. 우토로에서 강경남 할머니가 살아온 세월은 무려 76년. 한마디로 우토로는 할머니가 일군 삶의 터전이다.

 

강경남 할머니의 사연은 지난 2015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편’을 통해 한국에 널리 알려졌다. 유재석 씨와 하하 씨가 우토로 마을을 찾아 강경남 할머니와 만났다. 유재석 씨는 할머니 앞에서 울먹이며 “너무 늦게 왔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방송을 통해 고향과 민족을 잊지 않고 살아온 할머니를 만난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하하 씨는 강경남 할머니와 내내 눈을 마주치고 마치 친손자처럼 재롱을 부렸다. 하하 씨가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을 정성스레 차리는 장면이 참 인상 깊었다. 할머니는 하하 씨가 마련한 ‘고향 음식’ 호박전을 집어 참 맛나게도 드셨다. 유재석 씨와 하하 씨가 우토로 마을을 찾은 뒤 한국에서 우토로 마을을 찾는 발걸음이 부쩍 많아졌다.

 

우토로 마을은 일본 교토(京都)부 우지(宇治)시 우토로 51번지에 있다. 우토로는 일제가 조선인 1,300여 명을 동원해 군용비행장을 짓다 중단된 터다. 일제가 패망한 뒤 갈 곳 없던 조선인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었다. 동포들은 집단합숙소(이른바 ‘함바’)를 지었다. 강경남 할머니 같은 조선인으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일본 정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고 조선인들은 가진 재산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동포들이 우토로에 줄곧 머물게 된 것.

 

그런데 지난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우토로 마을을 강제철거하라”라는 판결을 내놨다. 돌아보면 일본 정부는 이미 1950년대부터 마을의 민족학교를 강제로 철거했다. 이것도 모자라 집을 짓고 사는 동포들을 못 본 척하고 민영기업에 땅의 권리를 통째로 넘겼다. 그러더니 최고재판소마저 동포 마을 강제철거를 ‘공식 승인’한 것이다.

 

우토로는 일본 곳곳에 지어진 다른 동포 마을과 비교해 봐도 훨씬 허름하고 열악하다. 우토로 마을 바로 옆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이 건설한 자위대 기지가 있다. 우토로 마을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자위대 기지보다 땅 높이가 한참 낮고 하수 시설마저 없다. 동포들이 일본 정부에 “하수 시설을 설치해 달라”라고 줄곧 호소했지만, 일본 정부는 “우토로 땅을 소유한 민간기업이 거부해서 안 된다”라고 답했다. 마을에는 비가 쏟아지면 물웅덩이가 곳곳에 생긴다. 심지어 오물과 폐수가 뒤섞여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물이 집안으로 들이닥칠 정도다.

 

그래도 한 마을에 똘똘 뭉쳐 함께 살던 동포들의 정과 사랑만큼은 넘쳐났다. 강경남 할머니는 우토로 마을을 새로운 고향으로 삼았다. 그런데 일본이 고향을 없애겠다며 달려드니 분통이 터지고 기가 찰 노릇이었다. 동포들은 우토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일본과 싸워 이겨내야만 했다. 이 싸움에 ‘마을 최고참’인 강경남 할머니가 앞장섰다.

 

그러나 일본 극우 세력은 이런 우토로를 “조선인이 불법 점거한 장소”,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선전한다. 유튜브에서 우토로(ウトロ)로 검색해 보면 우토로를 조롱하고 혐오하는 영상들이 즐비하다. 이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애초 조선인들이 우토로 마을에 살게 된 건, 조선인들에게 주거권조차 내주지 않은 일본 정부의 탓이 아닌가. 일본 정부가 ‘일제 식민침탈의 피해자’인 동포들에게 사죄하고, 일본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땅과 집을 보장해줬다면 극우 세력의 우토로 조롱은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토로에는 동포들이 고난을 뚫고 일군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강경남 할머니는 우토로 마을로 이사 오고 젊은 시절 고철 모으기, 찻잎 따기, 청소 같은 고된 노동으로 힘들게 생활했다. 할머니는 이런 생활 속에서 살림을 꾸렸고 자식들 시집과 장가도 보냈다. 한 마디로 우토로 마을은 ‘강경남 할머니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하다.

 

2. 우토로를 함께 지키는 사람들

 

“우토로는 자이니치(在日)의 고향”, “우토로는 반전(反戰)의 기념비”, “우토로를 없애는 것은 자이니치를 없애는 것”, “우토로를 없애는 것은 일본의 전후(戰後)를 없애는 것”, “우토로를 없애는 것은 일본의 양심을 없애는 것”

 

-우토로 마을 강제철거를 경고한 일본 정부에 맞서 동포들이 마을 곳곳에 남긴 안내문 내용 중에서.

 

우토로 마을 여기저기에는 동포들의 글귀와 우토로 지킴이들의 글귀가 함께 있다. 배우 송혜교 씨는 올해 광복 75주년을 맞아 “재일동포 역사와 미래가 깃든 우토로마을”이라고 적힌 대형 안내판을 마을에 기증했다. 이처럼 우토로를 함께 지키는 사람들을 통해 동포들은 큰 힘을 받고 있다.

 

송혜교 씨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우토로 지킴이’로서 강경남 할머니와 함께 나섰다. 그런 점에서 우토로 지키기는 동포들만의 운동이 아니다. 우토로라는 터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삶들에 공감한다면 누구나 언제 어느 때라도 우토로 지킴이 운동에 함께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 ‘한글’로 우토로를 검색하면 일본말로 검색할 때와는 사뭇 다른 영상이 쏟아진다. 사람들을 만나 웃음 짓는 강경남 할머니를 비롯해 우토로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하는 일본인들이 참 반갑다. 얼굴이 잘 알려진 연예인, 방송인들도 뜻을 함께해 더욱 정겹다.

 

방송인 김미화 씨는 “나는 수도조차 없던 우토로 마을의 우물을 기억합니다”라고 손팻말을 들었다. 배우 김혜수 씨도 “나는 우토로의 1,300명 조선인의 집, ‘함바’를 기억합니다”라며 우토로 지킴이로 동참했다.

 

2016년, KBS1 프로그램 ‘6시 내고향’ 25주년 특집 방송으로 우토로를 직접 찾은 배우 윤유선 씨도 “우토로는 정말 인정이 넘치는 곳 같아요.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라고 말했다. 우토로 2세대 강도자 할머니는 윤유선 씨를 보자마자 너무도 반가워 와락 끌어안았다. 

 

우토로 마을의 일본인 며느리 다나카 하루카 씨는 윤유선 씨를 알아보며 무척 기뻐했다. 다나카 씨는 “굉장히 살기 좋고 모두 엄청 친절해서 (우토로 마을에) 오길 잘했어요”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우토로가 정과 사랑이 흘러넘치는 마을이라는 사실이 여기서도 돋보인다.

 

3. 그래, 함께 하는 세상이니까

 

“우토로 마을 마지막 1세대셨던 강경남 할머니. 우리가 기억하겠습니다. 이제 고향인 사천땅을 자유롭게 오가시길.”

 

-오랫동안 우토로 마을 지킴이로 함께한 지구촌동포연대(KIN)에서 강경남 할머니를 추모하며 꺼낸 말.

 

강경남 할머니가 잠든 빈소에는 수많은 조화가 모여들었다.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비서실장으로서, 우토로 마을을 지키기 위해 나선 문재인 대통령도 유가족 앞으로 인사말을 전했다. 역시 할머니와 인연이 있는 유재석, 하하 씨도 조화를 보냈다. 

 

동포들은 우토로 마을을 ‘함께 하는 연대의 힘’으로 지켜냈다. 강경남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우토로를 지키자”라는 의지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 바닷길을 넘나들며 굳센 연대를 낳으리라.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많은 분이 직접 빈소를 찾았을 텐데 참 아쉬운 일이다.

 

앞서 2008년,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 모금과 한국 국회의 도움으로 우토로를 지키기 위한 30억 원이 모였다. 동포들은 이 돈으로 우지시와 협상을 벌여 우토로 마을 터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땅에 시영주택을 짓기로 했다. 

 

우토로 마을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동포들과 한일 시민연대는 ‘승리’를 거뒀다. 비록 이전에 살던 집은 헐리게 됐지만, 하수-상수 시설이 갖춰진 시영주택에서 삶을 일구게 된 것. 생활과 풍경이 예전과는 다소 바뀌겠지만, 우토로의 토박이 동포들은 끊임없이 웃음과 희망과 고마움을 찾는다.

 

우토로 평화기념박물관 설립을 위해 모금을 진행하고 있는 아름다운재단은 “낡은 우토로는 이제 사라지지만 우토로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도록 함께 해주세요”라고 밝혔다. 우토로 마을에는 오는 2022년 5월까지 우토로 평화기념관이 새로이 설립될 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코로나 사태가 한풀 꺾이고 나면 많은 사람이 우토로 마을을 찾으리라. 그러면 우리 동포들이 일본 정부의 차별을 뚫고 일궈낸 삶의 역사도 자연스레 느끼고 배우게 되리라. 그러면 ‘우토로 정신’은 우토로 마을이라는 단 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게 된다.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동포들이 싸워온 생생한 숨결을 느낀다면, 바로 그곳이야말로 우토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우토로 마을에서는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49재가 진행되고 있다. “우토로에서 살아왔고 우토로에서 죽으리라”라고 강조하신 강경남 할머니, 할머니의 넋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함께하는 힘’으로 우토로 마을을 지켜낸 강경남 할머니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할머니가 살아온 삶과 싸움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큰 울림을 줬다. 앞으로는 살아생전 할머니께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떠올리며 울컥하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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