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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정혜 “대진연과 모든 것을 일치시키니 성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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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21-07-23

▲ 길정혜 대경대진연 간부  © 김영란 기자

 

‘길동무’, ‘길맘’, ‘호수’

 

“먼 길을 함께 가는 동무야/ 그대는 나의 길동무/ 그대와 함께 걷는 이 길은/ 멀어도 즐겁기만 해”

 

노래패 우리나라의 ‘길동무’라는 노래 가사 중의 일부이다. 

 

길정혜 대구경북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경대진연) 간부를 한 마디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 남준현 대경대진연 대표는 ‘길동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경대진연 회원들은 길정혜 간부를 ‘길맘’, ‘호수’라고 표현했다.

 

어머니처럼 일꾼들의 생활부터 활동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챙겨주며 이끌어 주고 무한한 믿음을 주고 있다는 의미로 ‘길맘’, 폭이 넓고 깊으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조급해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동지들에게 준다는 의미로 ‘호수’라고 말했다. 

 

실제로 2박 3일 같이 생활하면서 본 길정혜 간부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설 때마다 손에 무엇인가 들고 나섰다. 대진연 일꾼들과 같이 먹기 위한 점심이었다. 또한 회의에서 길정혜 간부는 동아리별 회원 한 명, 한 명의 특성에 맞는 실천을 제안하고 점검했다. 대경대진연에는 3개의 동아리가 있다. 그리고 대경대진연 일꾼들의 아르바이트부터 생활에서 나서는 문제는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대책을 세웠다.   

 

많은 사람이 대구경북지역을 이른바 보수의 텃밭이라 부른다. 보수성향의 지역세가 다른 지역보다 강해 진보적인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리라 추정한다. 

 

실제로 대경대진연 활동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동아리를 홍보하기 위해 각 대학의 인터넷 등 온라인 게시판에 선전물을 올리면 보수성향의 학생들이 신고하거나 악의적인 댓글을 달며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길정혜 간부를 비롯해 대경대진연 회원들은 홍보물을 붙이며 회원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경대진연과 함께 성장하는 길정혜

 

대경대진연은 2020년 11월 본조직을 결성했다. 이에 앞서 2019년 2월경에 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대경대진연의 활동이 많아지면서 대구지역에는 신선한 바람이 불었다.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이나 대구 캠프워커 미군기지 앞 투쟁에서 대학생들이 율동 공연을 하면서 집회 현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 2020년 7월 1일 '한미워킹그룹해체! 내정간섭중단! 주둔비 징수! 평화군축! 미국규탄 공동행동'에서 율동을 하는 대경대진연 회원들. 가운데가 길정혜 간부이다.   © 김영란 기자

 

특히 올해 4월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 결정을 규탄하면서 대진연 회원 34명의 삭발이 있었고, 대경대진연은 4명이 삭발을 했다. 

 

이를 본 대구경북의 시민단체들은 대경대진연에 격려와 응원을 그리고 연대 의사를 밝혔다. 

 

대구경북지역에서 투쟁이 벌어지는 곳에 늘 대경대진연이 있다. 

 

대경대진연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의 다른 지역조직보다 뒤늦게 결성했는데 성과가 많다.

 

실제로 초기엔 활동 회원이 5~6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20여 명에 가깝다. 

 

회원들의 숫자도 증가했지만 무엇보다 일꾼들의 단결력이 강하고, 요구되는 투쟁에 주저 없이 나서고 있다. 

 

▲ 2021년 5월 15일 대경주권연대와 대경대진연이 국힘당 해체 투쟁을 벌였다. 현수막을 들고 있는 대경대진연 회원들.     ©김영란 기자

 

이렇게 된 데에는 길정혜 간부의 변화와 혁신이 있었다. 

 

대경대진연이 결성된 이후에 서울로 상경하는 투쟁이 종종 있었다. 

 

2019년 반일 투쟁, 미 대사관저 월담투쟁 등에 대경대진연 회원들도 참여했다. 

 

그때마다 길정혜 간부는 자신의 차에 회원들을 태우고 대구에서 서울로, 다시 서울에서 대구로 왔다 갔다 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회원이 연행된 경우는 나올 때까지 서울에서 기다렸다가 대구로 함께 갔다.

 

대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임이 끝나면 회원들을 꼬박꼬박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신은진 대경대진연 회원은 “장거리 운전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을 때 언니는 ‘힘들지 않다,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진다’라고 말했는데, 회원들이 무사히 조심히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전의 길정혜 간부는 이렇게 활동하지 못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대학생들은 여름이면 통일대행진단을 꾸려 전국을 순회하며 자주, 민주, 통일 투쟁을 한다. 

 

당시 대구에서는 2명의 학생이 통일대행진단에 합류했다.

 

중앙의 간부가 길정혜 간부에게 “왜 후배들만 보냈나? 언니는 왜 안 왔는가”라고 물었다. 

 

길정혜 간부는 “후배들이 어린애도 아니고 다 잘 할 수 있다”라고 대답했다.

 

당시 중앙 간부는 후배들과 함께 투쟁하는 선배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전화했을 것이다. 특히 그 후배들은 통일대행진단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길정혜 간부는 ‘내가 할 일은 후배들을 조직해서 보내는 것’까지로 제한을 두었던 것이다. 

 

통일대행진단은 기간도 길어, 활동하다 보면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들도 있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격려해주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길정혜 간부는 처음 통일대행진단을 가는 후배들 배려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를 떠올리며 길정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돌아보면 아찔해요. 나이도 있는데 통일대행진단 가서 내가 할 것이 뭐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동지와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몰랐던 거죠. 처음 가는 후배들에게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고, 긴 시간 같이 대행진단 활동하면서 서로를 더 이해할 수도 있는데, 이런 부분을 몰랐어요. 대진연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이 부분을 많이 깨달았어요.”

 

장미란 회원은 “예전에는 후배들에게 투쟁을 맡기고, 선배는 실무만 챙겼어요. 그래서 섭섭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있어요”라며 길정혜 간부의 변한 모습을 전했다.  

 

▲ 2021년 4월 27일 주호영 국힘당 원내대표(당시) 지역구 사무실을 항의방문한 대경대진연.  © 김영란 기자

 

길정혜 간부는 제법 나이가 많다. 대구경북지역에서 학생운동을 꽤 오랫동안 해왔다. 사실 길정혜 간부는 ‘대구지역의 상황에 맞게 내가 다 잘 알아서 한다’, ‘이 정도로 활동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실무적인 실력은 자신이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자신이 운동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대진연 활동을 하면서 자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길정혜 간부가 사람과 동지에 대한 소중한 마음을 갖게 되니 대경대진연도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회원들 문제가 되었다. 동아리 회원 한 명, 한 명의 생활부터 활동 문제를 꼼꼼히 점검하고 대책을 세운다. ‘ㄱ’ 회원이 집안 사정으로 차비도 없어 투쟁이나 모임에 나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까지 세웠다.

 

길정혜 간부는 사업을 꼼꼼히 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주위 일꾼들이 이 부분에 대해 비판하자, 이를 받아들이고 혁신했다고 한다. 늘 길정혜 간부의 수첩에는 회원들, 그리고 사업까지 빼곡하게 무엇인가 적혀 있다. 

 

핵심간부의 변화와 혁신은 대경대진연의 분위기를 바꿔내고 있다. 

 

▲ 길정혜 간부의 수첩.  © 김영란 기자

 

대진연의 방향대로 하니까 성과가 나온다 

 

길정혜 간부가 변화와 혁신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하는 질문에 길정혜 간부나 주위 회원들은 하나같이 ‘대진연’이라고 답한다. 

 

먼저 대경대진연을 결성하면서 더 조직력 있고 단단해졌다고 한다. 

 

그전에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함께 해왔지만 대진연을 만들면서 정치투쟁이나 동아리 활동에서 일치성이 확보되었으며 회원들에 대한 교양에서도 통일성을 갖추게 돼 조직력이 배가되었다고 한다. 

 

길정혜 간부는 대진연을 결성한 뒤에 ‘굳이’에서 ‘반드시’로 태도가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대구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었는데, 대진연 결성 이후에는 ‘대구에서 반드시 이런 방법으로 해보자’라고 바뀌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길정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 길정혜 간부     ©남준현 통신원

 

“대진연의 방침대로 그리고 동지들의 조언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니 성과가 생기더라고요. 예를 들면 군대 간 후배를 어떻게 챙겨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후배를 세심히 챙기는 문제에 대해 조언을 받아 그대로 했더니 그 후배와 계속 관계를 이어갈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사업에서 나서는 문제도 조언대로 하니까 길이 보이더라고요. 생활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대진연의 방침대로 하니 사업의 성과가 나고 길이 열리더라는 것이다.

 

조직과 일치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알았다면 대진연 활동을 하면서는 이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한 것이다. 

 

길정혜 간부는 “예전에도 똑같이 활동했던 거 같은데 왜 잘 안 되었나 생각해보니까 내가 자족하는 운동을 해왔어요. 대학생들이 무엇을 바라고 어디를 바라보는 것보다 ‘내가 이만큼 했으면 됐지’하는 마음이 컸던 거 같아요. 모든 것을 다 바쳐 활동하는 대진연 동지들의 모습을 보니 저도 변화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동지들이 모여 있는 조직의 방침을 반드시 해내야겠다는 생각은 더 커졌죠”라고 말했다. 

 

길정혜 간부는 대경대진연이 대구를 뒤흔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생들에게 더 거침없이 다가가 자신감 있게 사업하는 것, 회원 혹은 투쟁 조직화가 안될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줏대를 세우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성리 투쟁 현장이든, 노동자 투쟁 현장이든 그 어디든 대경대진연이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랐다. 

 

▲ 2021 대구지역 통일선봉대에 결합한 대경대진연 회원들. 뒤에서 왼쪽 세 번째가 길정혜 간부이다.   © 남준현 통신원

 

마지막으로 길정혜 간부는 “나이에 상관없이 학생운동에 복무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대 청춘들의 깨끗한 마음과 늘 함께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학생운동이 활발했을 때 한국 사회의 진보적 발전도 이루어졌다. 

 

최근 몇 년간 자주, 민주, 통일 투쟁을 완강하게 벌이는 대진연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기뻐하면서 다시금 학생운동이 활발해지길 기대하고 있다. 

 

대진연이 완강하게 투쟁을 벌일 수 있는 데에는 길정혜 간부처럼 대진연의 지침대로 투쟁하며 살아가는 회원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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