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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으로 날아가는 꿈을 꾸다 볼기짝 맞고 깨어난 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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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노 재미동포
기사입력 2024-03-31

기시다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은 그의 정치 인생을 마지막으로 장식하는 최후의 꿈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22년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평양 방문 의지를 밝힌 그는 줄기차게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백방으로 온갖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을 외치다가 불쑥 납치 문제를 들고나오곤 한다. 북한은 ‘북일평양선언’에 따라 이미 납치 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관성 없는 일본의 태도가 대화의 전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는 게 분명하다. 

 

▲ 2022년 NPT 회의에서 발언하는 기시다 총리.  © 일본 총리관저


왜 기시다가 방북 꿈을 버리지 못할까? 북일 관계 정상화는 일본 정치, 경제, 외교, 안보 측면에서 거대한 업적이 분명하다. 이는 기시다를 일약 위대한 세계 지도자 반열에 올라서게 할 결정적 기회라는 점에서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이미 약삭빠른 일본은 미중 관계 개선 징조가 보이자 미국보다 먼저 관계 정상화를 했다.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에 이어 남북과 북미관계에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되자 뒤질세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전격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고이즈미 평양공동선언’(2002)을 발표했다.

 

모질고 잔인한 대북 제재도, 북핵 폐기도 모두 실패했다는 게 공통된 세계적 인식이라고 판단한 일본은 조속히 북한과 적대 관계를 청산, 관계 정상화로 안보 위기를 해소하고 시대의 조류에 합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하지만 일본 내부의 반북 및 대북 강경파들이 기시다의 대북 접근에 훼방 놓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 일본이 러시아인들에 가한 제재로 러일관계가 급속 냉각되는 와중에 노즈드레프 도쿄 주재 러 대사와 AP통신이 미국에 수출된 일제 패트리엇 미사일이 우크라이나에서 사용된다고 주장했다. 

 

러일관계가 험악해지는 가운데 지난 3월 25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일본 기시다 총리에게 정치적 용단을 촉구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주권적 권리행사’인 핵미사일 개발과 이미 해결된 ‘납치 문제’를 걸고 든다는 것은 관계 정상화에 나서는 자세가 아니고 다른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밖에 달리 볼 도리가 없다고 질타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일본이 우리의 주권적 권리 행사와 안전 이익을 존중하면 북한의 자위력 강화는 절대로 일본의 안보 위협으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 정부의 하야시 관방장관이 3월 25일 기자회견에서 “아직도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라고 하면서 핵미사일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즉각 다음날인 3월 26일, 김여정 부부장은 “일본과는 어떤 접촉, 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대화 거부에도 불구하고 기시다는 지난 3월 27일 어떤 난관도 극복하고 대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이어 3월 29일 최선희 북한 외무상도 납치 문제는 이미 끝난 문제로 더는 해결할 것이 없다면서 일본과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맞받아쳤다.  

 

아마 북한은 북일평양선언(2002)과 싱가포르 북미정상선언(2008)의 와해 과정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아베 총리는 납치 문제를, 트럼프는 완전한 비핵화를 구실로 약속 위반을 정당화했다. 돌이켜 보면 “화염과 분노”를 외치며 북한을 초토화하겠다던 트럼프가 화성포-15형 발사 성공(2017)으로 미 본토가 북한의 사정권에 들어가자 기절초풍하고 황급히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을 평양에 급파해서 북미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기시다는 2022년부터 연속 두 번이나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전제 조건 없는 북일정상회담”을 외치며 먼저 대화의 문을 두드렸다. 트럼프는 북미대화를 자신의 재선 운동을 위한 ‘버라이어티 쇼’ 연출에 이용했다. 일본은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에 올라타서 북한의 무기 개발은 일본의 안보를 매우 위태롭게 한다는 구실로 북일평양선언을 집어던지고 미국의 후원을 업고 군국주의 부활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이제 자주시대에 걸맞게 미국 일변도 외교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가장 최근 미 허드슨 연구소를 비롯해 여러 북한 전문가가 북일대화에 북한이 소극적 자세를 취하는 배경을 발표했다. 북·중·러의 공고한 연대로 다방면에 걸쳐 자신감이 넘쳐나서 일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서울의 일부 논평가들이 북일대화를 한-쿠바 국교 정상화에 맞대응 차원으로 한다는 주장과 전후 배상을 노린 경제적 이유로 북한이 북일대화에 나섰다는 주장들과 비교돼서 흥미롭다. 또, 일각에서는 북일대화의 근본적 의도는 한미,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내려는 술책이라는 주장도 한다.

 

서울 정부는 최근 대화가 단절된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한일 대북 공조를 자랑하는 윤 정권이 북일 대화가 막후에서 진행되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매우 불쾌했을 뿐 아니라 배신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긴 뼛속까지 친미 친일 윤석열이 그렇게 느낄 정도의 자주적 사고 판단을 하리라고 보는 건 무리다. 북일관계 정상화는 윤 정권으로선 상상 초월의 최대 비보다. 하지만 이 회담을 미국이 지지한다고 하자 아무도 감히 입도 벙긋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북일 대화를 언급하려면 적어도 북한의 대외정책 기조에 대한 이해 선행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과거와 달리 핵무력을 완성한 2017년 화성포-15형 발사 성공 이후 북한의 대외 정책은 초지일관 국익에 기초한 적극 외교 추구라고 말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자주-평화-친선, 내정불간섭 원칙을 준수한다면 어떤 나라와도 외교 관계 수립을 적극적으로 펼친다는 것이다. 북일대화를 먼저 제의한 것도 일본이고, 다급한 쪽은 평양보다 일본이다. 대화에 목을 매는 것도 일본이라는 사실을 몰라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최근 연이어 김여정 부부장과 최선희 외무상이 일본과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의 외교 원칙을 일본이 준수하지 않아서다. 또, 일본은 한반도 식민지 35년에 수십만 우리 처녀들과 청년들을 성노예와 강제노동에 동원한 악질적 범죄를 범했다는 걸 뉘우치는 자세에서 북일대화에 임해야 옳다. 요즈음 11월 미 대선 결과로 나타날 한반도의 변화를 논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장기적 안목에서 누가 당선돼도 대한반도 정책에 커다란 변화는 없을 것 같다. 허나 단기적 차원에선 차이가 있을 것이다.

 

지구촌뿐 아니라 일본도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 것 같다. 기시다가 북일대화를 시도한 배경에는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집단적 안보보다 각자도생, 즉 스스로 안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정책이 재연될 것이라는 점이 고려됐을 걸로 보인다. 트럼프는 미군 철수 카드를 뽑아 들고 주한·주일미군 주둔비 전액을 책임지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면 미군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윤석열은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코쟁이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 “제발 우리를 버리고 떠나지 마옵소서”라고 울며불며 엎드려 싹싹 빌 것이다. 애걸복걸하는 이런 모습을 보고 희열을 만끽하는 게 트럼프다. 그는 절대 이것으로 끝내지 않고 ‘호구’ 명단에 올려놓고 최후 순간까지 최대의 이익을 뽑아낼 것이다. 지난 3월 28일,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 이행 감시기구의 전문가 활동을 4월 말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시대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민생 보건과 관련된 대북 제재 일부라도 해제돼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의 거부로 매번 무위로 끝나곤 하지만 대북 제재 감시기구 활동 중단은 멀지 않아 대북 제재 해제에도 청신호가 될 것이라고 보인다. 오는 9월에 있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전에 기시다는 평양을 가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오죽하면 “평양으로 날아가는 꿈을 꾸다가 돌연 볼기짝을 얻어맞고 깨어난 기시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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